이제 와서야 맹하다 어떻다 해도
한 때 내겐
그 애가 태어난 마을 전체가 성지였는데
지금의 그 딱한 처지를 전해 듣자니
안쓰러움을 말로 다 못한다.
단 한 번 마음을 사로 잡힌 후
내내 곁눈질로 지켜보느라고
길지 않은 내 젊음도 다 가고 있다.
많이 함께 하지 못한 날들,
지금도 떠올릴 것이 적은데
먼 훗날 무엇이 추억으로 남을까.
썼다가 찢어 버린 편지라도 간직했으면 모를까
지금은 그런 시절이 아닌데...
백스페이스로 다 지워낸
내 마음의 빈자리들만 남았는데...
꽤 잡다하게 산다고 남들이 내게 말하지만
그 애를 연모하며 지내는 나의 제일 긴 조각은
분명 애처로우리만치 단순한 편이다.
그렇지 않지 않다.
내가 정상이냐고 묻는다면
내가 미쳐가고 있나 한번 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애를 향한 열정이 아직도 남았냐고 묻는다면
뭐.. 나이를 먹었어도 많은 곳에 열정을 쏟을 수 있다고...
언젠가 나도 죽겠지만.
언제나
말없이 응시하고
조심히 천천히 걷고
타인과 어울리지 않고
두 손 모아 다소곳이 앉는 습관을 가진 그 애를 보면
언제 어디에서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것 같아
또 그 신경쓰임이야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다.
꽃 같던 시절에서 살짝 내려 선 여자야....
지금에서야 남들이
맹하다 어떻다 해도
내 눈엔 아직 곱고 고와
나와 혼인서약을 하지 못한 사실이
화만 날 뿐인 것을.
오래전, 잠들지 않는 외로운 나의 밤들.
꽃잎 같은 입술 떠올려
타오르고 또 무너질 때면
그 밤 꿈속
연모해도 됨을 허락을 받고도
매번 홀로 깨어나는 몹쓸 아침들
함께 일어났다면 두 잔을 내렸을 모닝커피.
혼자서는 맛없고 재미없어.
세상에 여자가 이 여자 한 명일까 싶어
딴짓을 해보다가도
가끔 만나면
항상 말 잘 듣는 착한 심성에
또 마음 다 뺏기고 말았던...
이 애가 없으면 다른 여자도 없는 것처럼.
걱정이 많은 삶에도
너가 불 끄지 않고 기다리는 집에는
야근이고 뭐고 빨리 퇴근할 텐데.
그러지 못하게 한 세상을 감히 저주한다.
지금에서야 남들이 맹하다니 어쩌다니 해도
한 때는 성스러운 내 사랑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