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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한 Apr 27. 2023

중국 출장 그리고 그 호텔 - 1

만약 직접 겪지 않은 경험을 이렇게 쓸 수 있다면 나는 그야말로 보기 드문 천부적 재능을 가진 이야기꾼인 셈이다. 그동안 살아오며 몇몇에게는 들려주었는데, 그저 지어낸 별난 이야기로만 치부할 뿐 그들의 이야기 레퍼토리 상자 어디에도 깊숙이 착지하지 못하고 바로 다시 이륙하는 듯했다.      


밤에 쓴 연애편지와 같이 농밀함만 넘치는 서툰 이야기, 아니 이야기 비슷한 것에 지나지 않았음을 당시에도 스스로 알아 그들이 그런 반응을 보였던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렇게 이 이야기를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진진하게 들려줄 기회를 가지고 싶었다. 대낮의 밝은 빛 아래서 고쳐 쓴 글로.  이 이야기를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이쪽 애호가들에 대한 사려 깊은 배려가 아니라 생각한다.  



 

첫 회사를 다닐 때 겪었던 일이다.

          

경영상황이 많이 나빠진 회사는 해외 출장자들의 숙소에 제한을 걸었다.     

같은 나라 같은 지역으로 비슷한 시기에 출장을 가는 직원들은 가급적 숙소를 공유하라는 지시.          

나의 출장지는 중국 광둥성 판유. 거기로 출장을 가면 늘 묵던 호텔이 있었다. 

하룻밤 9만 원 정도의 무척 아름다운 판유 호텔.     

체크인을 하고 배정된 방으로 갈 때면 지나쳐야 하는 길고 아름다운 연못 길. 

준수한 아침 뷔페. 침대 위에 둔 팁에 절대 손을 대지 않던 친절하고 잘 훈련된 직원들. 

무엇보다 다운타운 중심에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미리  판유로 출장을 가 있던 한 직원이 이미 다른 호텔에 묵고 있어 회사의 지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그 호텔을 이용해야 했다.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변두리의 조그만 언덕 위에 세워진 호텔이라고 했다.

            

나는 일단 행동규범을 세우고 나면 할 수 있는 한 깨지 않고 충실히 따르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한 지상과제로 삼는다. 규범이 되었다는 것은 반복을 통해 거기에 위험이나 거슬리는 것이 적고, 정신적 육체적 죄책감이 비교적 덜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의미다.  

엘리베이터 두 개가 있다면 왼쪽의 것을 탈 것, 선풍기는 1시간 30분 이상 작동하지 않기, 가위나 칼은 방바닥에 두지 않고 눈에 안 보이게끔  서랍 속에 가지런히 보관하기, 하늘이 두 쪽이 나도 하루에 2만 보 걷기와 같은. 당연히 출장지에서 숙소 바꾸지 않기도 포함되어 있다. 

그것이 외국에서 일지라도. 아니 심지어 지옥에서라도 말이다.

단 내게 자유행동권이 주어진다는 전제하에서.   

  

어떤 면에서는 하찮고 시시해 보일 수 있지만,  아직 내가 살아 있는 이유가 어쩌면 내가 만든 행동규범에 기대어 살아온 덕분일 수 있으니까. 아주 낮지 않은 정도의 확률로.  


    



공항을 벗어나자마자 예전에 갔던 길과 아예 다른 방향으로 핸들을 트는 운전기사를 보며 패턴에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음을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달리기 경기 중 운동화 속으로 작은 돌멩이 하나가 날아든 것처럼. 돌멩이를 털어내려 달리기를 멈추는 것은 즉각적인 경기포기를 선언하는 것이라 어쩔 수 없이 계속 뛴다. 

이 작은 돌멩이 하나는 내 신경을 조금씩 갉아먹다가 결국엔 발바닥을 다 짓이겨 놓을 것이고 처참한 패배자의 얼굴로 경기를 포기하는 경험을 내게 선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따라붙었다.  

고개를 두 번 젓는 것으로 그 생각에 대한 회피기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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