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인 Jan 04. 2022

어서 와 노화는 처음이지? 02

수면보조제 사러 갑니다.

처음에는 내가 무슨 악몽을 이렇게 자주 꾸나

꿈 탓 인줄 알았다.      

자다가 자꾸 깼다.

마치 누가 옆에서 흔들어 깨운 것처럼 꿈 때문인지 무슨 소리를 들은 건지

설핏 들었던 잠이 자꾸 깼다.  

    

12시 무렵에 잠들어서 두어 시간이나 잤나.

새벽 2-3시 무렵에 한번 깨서 뒤척이고 다시 두어 시간 후에 또 깬다.

화장실도 가보고 물도 마셔보고 이왕 깼으니 다시 새로 자는 기분이 되려고

이리저리 움직여도 보았다.

다시 누웠지만 잠이 안온다.

쉽게 다시 들 잠이었으면 깨지도 않았겠지

  

다시 잠들기도 어렵지만 잠에 질도 문제였다.

잠이 들었던 것 같지 않은데 어쨌든 눈은 감고 있고 생각보다 시간도 두어 시간 지나가 있어서

내가 자긴 잤구나... 싶었지만 개운하게 잤다기보다 눈감고 버티기 훈련을 받은 것 같은 고통스런 잠이었다.  

    

당연히 아침의 컨디션도 상쾌하지 않고

방에서 나오자마자

에구구구... 소리를 내며 소파에 다시 벌러덩 누워 버리기 일쑤다.      

자는 내내 마라톤이라도 뛰고 이제 막 바닥에 꼬꾸라진 사람처럼 어떻게 몸을 일으킬지를 몰라서

그렇게 먼동이 틀 때까지 티비 리모컨만 만지작거린다.      


갱년기에 수면의 질이 안 좋아진다더니 진짜 그렇구나...

밤에 잠들어서 아침까지 푹 자는 날도 더러 있지만 전에는 줄창이더니 이제는 가끔이다.

숙면이 감질나니 그렇게 잔 날은 마치 큰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계속 그러고 싶어서 그날 내가 어떻게 하루를 보냈나 일부러 더 움직이고 식사도 조절해보지만

그날 밤은 또 메뚜기 잠을 잔다.      

잠을 방해하는 것이 자꾸 깨는 의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 언젠가 나보다 서너 살 많은 선배 언니가

한겨울에 반팔 입고 부채질하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그렇게 더워? 했더니

말 마라 얘  잘 때는 더 더워

하길래 아... 저건 진짜 불편하겠다... 했었다.      

바로 그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언젠지는 모르지만 꼭 나타나고야 마는 저승사자처럼

나는 피해 갔으면... 은근 기대했던 그 불편한 증상은 어느 날 불쑥 시작되었다.

     

처음 느낀 것이 초가을 무렵이었는데

나는 침대 밑에 상시로 깔아 둔 두꺼운 온열매트 때문인 줄 알았다.

겨울에 뜨끈하게 켜고 자지만 봄부터 가을까지는 걷고 깔고 귀찮아서 그냥  그대로 두고 산다

그날은 자는데 등이 뜨끈해서 깜짝 놀라며 깼다.


어머. 내가 매트 온도 조절기를 건드려서 켜졌나 보다.

서둘러 확인해보았다.

어라? 조절기는 어디에 처박혔는지 잘 보이지도 않았다.


이불 밑에 얌전히 들어앉은 불 꺼진 조절기를 세상 처음 보는 물건처럼 곰곰이 살펴본다.

플러그와 전선도 동그랗게 말려있다

한 번도 전기 같은 것은 들어와 본 적 없는 물건처럼 깜깜하다.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바닥을 만져본다.

누웠던 자리가 식으니 서늘하고 차갑다.

이럴 리가.

분명히 후끈했는데.....

불같이 뜨겁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는데
귀신에 홀렸나?

등을 뜨겁게 만드는 귀신도 있나?

아직 초가을이니 낮의 열이 안 식어서 그럴 거야....

나는 기분 나쁜 예감을 애써 외면하려 했던 것 같다.      



그 뒤로도 그 열감은 종종 찾아왔다.

더우니 당연히 땀도 났다.

기분 나쁘고 축축한 땀이다.

더웠다 추웠다 하니 이불을 덮기도 안 덥기도 애매하다.


누가 옆에서 볼까  두려운 나의 밤 모습은 이렇다.

자다가 갑자기 더워져서 잠이 깬다. 이불을 통째로 걷어찬다. 설핏 잠이 다시 든다.

이번엔 또 갑자기 추워진다.

급하게 덜덜 떨며 아까 야멸차게 밀어냈던

이불을 허겁지겁 끌어와 덥는다.  

이별과 재회를 반복하는 연인처럼 밤새 이불이랑 붙었다 떨어졌다 정신없는 연애사를 찍는다.      

자면서 이 과정을 서너 번은 반복하면 부옇게 아침이 온다.

나는 밤새 구박을 받은 이불을 안쓰럽게 부둥켜안고 아침을 맞는다.

아... 이게 무슨 해괴한 일이냐. 잠인지 사투인지.


피곤하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잠이 깨서 안 그래도 메뚜기 잠인데 그 간격이 더 짧아진다.      



언젠가 어디선가 얼핏 들은 것 같은 수면 보조제 생각이 난다.

이름은 기억 안 나지만 검색해보면 그 비슷한 게 우수수 쏟아지리라.

수면제까지는 아니고 뭐 잠자는데 좋다는 성분들을 이것저것 섞어 놓았겠지.

흥 칫 그런 게  뭐 도움이 되겠어... 하고 지나쳤었는데 갑자기 그 생각이 났다.

그거라도 먹어볼까.

갑자기 생각이 긍정적이 된다. 궁하면 착해진다.      


수면보조제이건 달나라 특효약이건 도움이 된다면 먹어보리라.

잠이 보약이라지 않나.

숙면이 없으면 행복도 없다.

적극적 자세가 필요하다.      


갱년기가 내 일상의 평안함을 야금야금 갉아먹더니 이제 내 쌈짓돈까지 훑어갈 요량인가 보다.

흐믈흐믈해진 마음으로 수면 보조제 검색하러 컴퓨터 앞에 앉는다.      

늙음은 슬프진 않지만 불편하고 돈이 든다. 그뿐이다.

안경을 맞추듯 키높이 신발을 신 듯.

일상의 불편이 늘어 나고 그걸 해결할 뿐이다.

가볍게 생각하자.

잘 안 되겠지만 해보자. 까짓껏 갱년기.     


이글을 쓰는 지금도 졸립다.

오늘은 숙면을 취하고 싶다.

정말로.               

이전 14화 어서 와 노화는 처음이지? 0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