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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본격적인 시작은, 좋은 생각을 하기 위해서 좋은 책을 잘 가려서 또 추천받아서 잘 읽는 거야. (‘잘 읽기’가 ‘잘 쓰기’니까 읽기만 잘해도 좋겠네.) 아빠 기타 실력이 날이 갈수록 줄잖아. 그게 음악을 안 들어서 그런 거야. 읽어야 잘 쓰고, 들어야 잘 연주하는 거야.
시는 좀 읽어 보냐들?
이시영 선생의 짧은 시들은, 이미지적이야. 이미지가 스토리를 품는 잘 읽는 방법 중 하나는 소리를 내서 읽기야. 아빠가 지금 책장에 있는 시집들 모조리 뒤져봤는데 아빠가 찾는 이시영 선생의 ‘무늬’라는 시집을 못 찾겠다. 이 시인의 시 중에 외우고 있는 시가 딱 한 편 있는데 ‘무늬’에 들어있는 ‘봄’이야. 정확한지 모르겠다. 아빠는 이 시를 소리 내서 읽고선 ‘바흐’의 피아노곡 ‘평균율’ 1권의 첫 프렐류드를 떠올렸어.
충남 연기군 남면 상공을
아기 갈매기 네 마리가 일직선으로 난다.
아, 비상이다.
- 이시영, 봄(전문)
시든 시가 아니든 소리를 내서 읽게 되면 어떻게든 리듬감이 생겨. 또 글의 구조가 구체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해. 읽는 효과가 배가 되는 거지. (뇌 새김? 몸에 베임? 뭐 그런 건가?) 긴 글을 소리 내기는 힘들 수 있으니까 시는 소리를 내 읽어보자고. 본래 시의 본성이 ‘노래’야. 시는 짧아도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천천히 소리 내서 읽어볼 만하다고.
이 세상의 향기란 향기 중 라일락 향기가 그중 진하기로는
자정 지난 밤 깊은 골목 끝에서
애인을 오래오래 끌어안아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
- 이시영, 라일락 향(전문)
소리 내서 읽어보면 ‘그중 진하기로는’과 ‘깊은 골목’, ‘오래오래 끌어안아본’ 같은 구절들에서 감정이 점층하는 걸 느낄 수 있어. 아빠 세대 말고, 요즘 세대 시도 좀 읽어볼까?
심야 산책중 주운 나뭇잎들과 너의 깨진 안경알 잡동사니 불길한 애정 모든 게 따분해졌는지 몰라 선풍기가 고장난 빈 교실에서 있었던 일 기억해? 그날의 일기에는 귀여운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여두었잖아 너의 펜촉은 유창한 주삿바늘이었어 알록달록한 감정들을 주입했지 통통하게 부푼 마음을 찔릴 때마다 나는 향기로워졌어
- 고선경, 유통기한이 지난 약은 약국에 버려주시면 됩니다(부분)
시는 대게 비유적이잖아. 그래서 소리 내서 읽어보면 어휘와 조사의 활용을 통한 억양들을 ‘주입’하기가 좋아. 그러는 사이에 시적인 표현도 하게 되는 거고.
모든 책을 다 소리 내서 읽을 수 없다는 게 참 아쉽다. 작은 소리라도 내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