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수 / 고무신
한대수
고무신
술이 취한 한밤중에 왔다가 갔다.
가버렸다.
보고 싶어서 왔고 가고 싶어서 갔다.
안고 싶어서 안았고… 그랬으니 되었다 하면서
가버렸다.
다음날 아침 내게, 인간이 내뱉는 모든 말은
개소리다, 라고도 했다.
'슈퍼밴드'라는TV 프로그램이 너무 좋다.
공들인 연주가 좋다.
옛날에 옛날에 신해철과 넥스트가
KBS에서 공연했는데
방송국이 소리를 이상하게 만들어버려서
이상한 음악이 전파를 탔다.
슈퍼밴드는 좋았다.
언젠가 한대수 선생이 KBS에 나와서
부인인 옥사나 씨와 함께
‘행복의 나라로’를 불렀다.
한때는 금지곡이었다고 한다.
이 곡이 금지곡이 되었던 이유는,
행복한 나라로 간다는 건 여기가 행복한 나라가 아니라서.
내 미래에게 전화를 한 통 넣었다.
나 좀 천천히 갈 건데 그리 알아요.
보다시피 나는 나 자신에게 존대를 했다.
괜히 그러고 싶었다.
미래의 나라면 내가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과거의 나와도 통화하고 싶었다.
그랬지만 어디로 전화를 해야 할지 몰랐다.
과연 내가 바로 전화를 받을지 확신할 수도 없었다.
어느 순간, 내가 신던 고무신이 생각났다.
인간은 대단한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