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레미 (2/2)

by 현진현

공업학교 시절 그는 교내 밴드가 연주하는 음악을 듣고 ‘음악’의 매력에 빠졌다. 특히 ‘햇님’이라는 곳에 푹 빠졌다. 그 곡은 중현이 만들고 김정미라는 여대생이 부른 곡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라이온스’라는 교내 밴드의 기타리스트는 중현의 둘째 아들이었다. 라이온스의 보컬리스트는 지금도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데 누구나 알 법한 유명한 트로트 가수가 되었다.

그는 기어코 김정미의 ‘햇님’이 들어있는 레코드를 구해서 들었다. 듣고 또 들었다. 그러다 따라 불렀다. 자신의 목소리가 들을 만하다고 느꼈고 노래도 부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마는 듯했지만 어렵사리 또 다른 레코드들을 구해 듣고 또 들었다. 그 십여 장의 레코드 리스트에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있었고 밥 딜런도 있었으며 비틀스도 있었다. 또 특이하게도 프랑스의 성악가 제라르 수제(Gerard Souzay)도 있었는데 수제는 슈베르트의 가곡을 부르고 있었다. 당시 인기가 많아서 제법 수량을 찍은 레코드들을 그는 입수할 수 있었고 들어 볼 수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그는 가수가 될 것을 다짐했다. 그저 다짐한 정도가 아니었다. ‘완전한 노래, 완전한 예술’이라는 목표를 설정하면서 가수가 될 것임을 굳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완전한 예술이 어떤 것인지 그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우거진 숲길을 차례차례 걷다 보면 결국 도달하는 언덕 끝의 장대하고도 고풍스러운 성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말이다.


2010년 봄이 되었을 무렵, 중현의 새로운 밴드는 대여섯 번의 오디션을 거쳐 드러머와 베이시스트를 고정 멤버로 확정했다. 오디션 과정의 며칠을 일본의 한 방송사에서 취재해 가기도 했다. 50세의 베이시스트와 30대 중반의 드러머, 그 둘과 함께 70대의 중현은 몇 번의 합주를 했다. 오디션을 진행하면서 중현은 다섯 곡을 새롭게 썼다. 그리고 두 곡의 노랫말을 더 만들어 두었다. 중현은 또, 전체적인 편곡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새 앨범에 하나의 방향성을 추가시켰다. 후렴 끝에 넘실대는 오케스트레이션을 시도해보는 아이디어였다. 둔중한 블루스의 마무리를 눈처럼 날리는 깃털로 표현해내고 싶었다. 모든 것이 좋았고 순조로웠다. 다만 보컬리스트를 찾지 못했다.

여름에 들어서기 전에 중현은 보컬리스트를 결정하고 싶었다. 악기들의 합주로 어느 정도 호흡을 맞췄고 곡도 스케치가 돼 있어서 얼른 앨범을 위한 세션을 진행하고 싶었다. 중현은 결성된 멤버들과 함께 다시 보컬 오디션을 시작했다. 몇 차례 오디션에 참가했던 보컬리스트도 있었고 처음 본 보컬리스트도 있었다. 중현은 사실상 이 나라의 록음악을 대표하는 기타리스트이자 프로듀서였고, 이 나라의 모든 음악을 대표하는 뮤지션이었기 때문에 한때 큰 인기를 누렸던 보컬리스트들도 찾아와 오디션에 참가했다.

참가자에게는 스스로 선택한 곡 외에 중현이 최근에 작곡한 곡 또한 부르도록 했다. 물론 누구나 초견에 부를 수는 없었기 때문에 몇 시간이고 악보를 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오디션에 참가한 여자 보컬리스트도 몇 있었는데 그녀들을 직접 반주하면서 중현은 김정미를 떠올렸다. 여자 보컬리스트들은 과거의 김정미나 김추자의 스타일로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었다. 신곡들은 보다 거칠지만 직선적이고 간단했기 때문에 중현은 보컬리스트들의 목소리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점치기 위해 보컬의 기교라든가 감정의 발산보다는 발성의 색깔과 힘에 귀를 기울였다.

대부분 노래는 잘 불렀다. 목소리도 좋았고 성량도 풍부했다. 테크닉도 좋았다. 그렇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중현의 마음까지 들어가지 못했다. 열정이 흘러넘치는 노래들이었지만 중현의 마음 밖에서 열심히 부르고 있을 뿐이었다.

중현이 바라는 노래는, 자신이 헌정받은 기타처럼 마음이 그대로 물리적으로 표현되는 그런 노래였다. 그런 의미에서 중현의 오디션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오디션일지도 몰랐다. 드러머는 이 오디션이야말로 보컬리스트를 뽑는 오디션이 아니라 중현의 두 번째 악기를 뽑는 오디션이라고 생각하면서 지쳐갔고 베이시스트는 오디션에 뽑힌 자신의 연주가 어떻게 중현의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지 추적해보고 싶은 심정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만큼 오디션은 점점 지리멸렬해지고 있었다.


그는 연이틀 집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출장 수리를 나와 있었다. 여름의 끝에서 가을로 들어서는 환절기부터 일이 많아졌다. 그날은 서울 서초동의 한 주택으로 출장 수리를 갔다. 전날은 동두천으로 퇴근하지 못한 채 보일러 수리 점포의 창고에서 잠을 잤다. 덕분에 수련을 하지 못했다. 그는 오늘 저녁에는 반드시 공들여 수련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좁은 길을 들어가자 대문이 있고 대문을 열자 하숙집처럼 디귿자로 방이 많은 단층 건물이 있었다. 디귿자는 정원을 둘러싸고 있었다. 굉장히 오래전에 지어진 집이었다. 이 정도의 집이면 나무를 떼는 화목 보일러부터 시작했을 거라고 그는 미루어 짐작했다. 정원의 가운데로 들어서자 젊은 청년이 뛰쳐나와 그를 보일러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뒤꼍으로 가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가는 그는 머리칼이 허연 사람이 앉은 채 방 창문을 열고 기타를 만지작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거문고가 어울릴 법한 그림이었지만 분명코 일렉트릭 기타였다.

그는 한 시간째 보일러를 수리하는 중이었다. 만만치 않았다. 그날만 해도 네 군데나 수리를 해야 했는데 첫 일부터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같이 수리를 하고 일당을 주는 보일러 대리점 주인이 암 진단을 받고 그 충격에 드러눕는 바람에 혼자서 일을 해야만 했다. 주인의 아내가 애원하듯 부탁하지 않았다면 노래 연습을 하기 위해 동두천의 집으로 돌아가버렸지 몰랐다.

그는 보일러실에 쭈그리고 앉아 젊은 새댁이 점심을 준비하는 모습을 건너다보며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그때 바람결에 기타 소리가 묻어왔다. 아까 그 노인이 치는 기타 소리가 틀림없었다. 앰프의 게인을 반 정도 올리고 시끄럽지 않게 볼륨을 높인 소리가 그가 있는 곳으로 살포시 넘어왔다. 굉장히 좋은 기타 소리였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가락을 흥얼거렸다. 기타는 E 마이너 음계를 연주하고 있었고 그는 그 반주에 맞춰 스캣 하듯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청명했다. 목소리가 내는 음의 끝이 담백하게 마무리되고 다음의 음이 시작되기까지의 시간은 마치 육면체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 공간이 세상의 여백 인지도 몰랐다. 조선의 정악처럼 단아했고 쿠프랭의 성가처럼 또렷했다. 단 한 번도 누군가로부터 레슨을 받지 않은 노래솜씨라면, 스스로 수련한 솜씨라면 누가 믿을까 싶었다. 기타 소리는 잦아들고 그의 목소리도 멈췄다. 그는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어느 순간, 흰머리의 노인이 그의 앞에 다가와 있었다. 키가 작고 몸집도 작은 그 노인은 중현이었다.

그는 중현을 올려다봤다. 하지만 그가 기타리스트 중현인 줄을 몰랐다. 순간, 저렇게 기타를 맛깔스럽게 친다면 그 유명한 기타리스트 중현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퍼뜩 들었다.

“좋은 목소리를 가지셨네요.” 중현이 따뜻한 목소리로 말해왔다.

그는 그렇게 중현과 만났다.


며칠 후, 그는 중현의 용인 작업실에서 오디션에 임했다. 그가 등장하자 중현을 포함한 모두가 놀랐다. 그의 행색은 넝마와도 같았다. 벙거지를 벗자 그의 장발의 숱이 허옇게 드러났다. 숱이 적은 데다 새치는 가득했다. 갈색의 코트는 낡았고 당장이라도 먼지들이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무르팍은 튀어나오다 못해 돌출했다. 그 바지가 본래 검은색인지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그렇지만 오랜 수련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눈빛은 총총했다.

중현과 중현의 밴드는 그런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말하자면, 그의 얼굴은 누가 봐도 가수처럼 생겼다. 도드라진 목울대의 정도를 보고 그의 음역대를 가늠했다. 또 행색이야 지저분하지만 그의 덩치는 그가 좋은 소리통임을 말하고 있었다.

중현은 그와 함께 자유로운 잼 세션을 하길 기대하고 있었지만 그는 밴드 없이 목소리로만 오디션을 보길 원했다. 중현이 허락했고 드디어 그가 목을 풀었다. 아니 목을 푸는 줄 알았다. 목을 풀었건 노래를 불렀건 그의 몸에서 나오는 음향은, 아름다웠다.

역시 맑고 담백했다. 소리의 시작이 소리의 연결로 이어지고 마침내 소리의 마무리가 되기를 반복했다. 끝나지 않을 듯 긴 음은 유장미가 무엇인지 들려주었다. 중현과 밴드는 점차 소스라쳤다.

이상하리만치 경건한 이 감동은 사역하던 목사가 멀리서 들리는 비구니들의 예불소리를 듣고 개종하기로 결심하는 역설과도 닮아 있었다. 세상을 꿰뚫는 전복적인 목소리가 중현의 용인 작업실에 흘러넘쳤다.

그의 음향이 열두 마디를 넘어서자 드러머가 하이햇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멈칫하던 드러머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하이햇의 박자가 너무도 정확했기 때문이었다. 명 베이시스트가 플랫리스 베이스로 짧게 짧게 탭핑하며 리듬을 만들었다. 역시 그의 표정은 알겠다는 듯이 웃음을 머금었다. 어린아이의 표정과 닮아갔다. 그는 서너 살 아이의 눈으로 중현을 쳐다보았다.

다시 열두 마디를 지나자 그는 옥타브를 넘나들기 시작했다. ‘도’와 ‘도’ 사이 11개의 음을 넘어 다른 세상에 가 있는 듯한 리듬을 만들었다. 하이햇과 탭핑이 자세를 바꿨다. 드디어 중현의 기타가 오블리가토를 덧붙이기 시작했다. 영감 어린 톤으로 뱉어지듯 튀어나왔다. 중현은 눈을 감기 시작했고 그도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는 다시 눈을 떴다. 그의 표정은 악마처럼도 보였다. 그는 이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표정 같은 것을 짓고 있었다.

살짝 시선을 내리며 그가 노래를 멈췄다. 목을 푸는 것이라고 오해한 것은, 그가 반음도 없이 도부터 미까지 단 세 개의 음만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서였다. 물론 그 음들은 변조가 되면 다른 음가를 가지는 음들이었다. 그러니 어찌 보면 그의 노래는 우직했다. 하지만 이런 표현들에게 갇히기엔 너무나도 뜨거운 순간이었다. 오디션은 그것으로 완성되었고 완결되었다. 연주가 끝나도 중현은 눈을 뜨지 않고 여운을 만끽했고, 몇 분이 흐른 뒤 겨우 눈을 뜨고 그를 끌어안았다.


타인의 시선에서 보자면, 노래를 선택한 순간부터 그의 삶은 망가지기 시작했다. 그가 벌었던 돈 중 식재료 외의 모든 돈은 피아노를 사는 데에 소진했다. 털털한 성격이었던 탓에 주변에서 그를 좋아하는 여자가 몇 있었다. 그렇지만 그의 집요함에, 그가 노래에 너무 심하게 매달려서, 특히 그의 수련을 알고 나서는 그로부터 멀어져 갔다. 그의 수련은 여러 가지 특별한 점이 많았지만 특히 하나의 음, 그 음역을 완전히 마스터해야만 다른 음을 수련하는 점이 가장 특별했다. 그러나 저러나 그 하나의 음을 무려 5년 가까이 수련한다는 것은 주변의 그 누구에게도 이해되기 힘들었고 오직 그 자신에게만 옳았다.

반면 중현은 만들고 싶은 음악을 원 없이 만드는 세월을 살아왔지만 주변을 넘어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세 명의 아들을 두었고, 셋 중 누구도 중현을 넘어서진 못했지만 셋 모두 나름의 일가를 이루어 자존감이 넘쳤다. 중현과 그의 이러한 차이는, 이제 와서 둘을 가까스로 만나게 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스스로가 마스터했다고 판단한 음만으로 노래 부르길 고집했다. 이런 상황을 중현은 진지하게 받아들였지만 그의 목소리를 담은 새로운 앨범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중현에게 그의 이런 불가사의한 고집은 그가 쏟아내는 아름다운 서너 가지 음으로 충분히 감쇄되고도 남았기 때문이었다. 나아가 중현은 드디어 불멸의 레코드를 남기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했다. 그의 음악 인생 전반을 보더라도 특별한 기대였다.

중현은 때때로 몇 번이고 산으로 들어갔다. 헌정 기타 한 대와 휴대용 녹음기를 들고 깨끗한 암자로 들어갔다. 항상 기타를 안고 있긴 했지만 연주보다는 작곡을 위해 기타를 쳤다.

중현은 날마다의 긴 명상을 통해 세 음으로만 된 노래를 구상하고, 그것을 완전한 곡으로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세 개의 음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 수는 있었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는 그 자신조차도 납득하기 어려운 세계였다.

“음이 몇 개인지 중요하지 않소. 다만 김형!” 중현은 목소리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중현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노래하지 말고 세상을 노래하시오,라고 중현은 말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그의 노래는 영원히 그의 것이라는 것, 그의 노래는 그의 내부로부터 나온다는 것, 아니라면 그의 노래는 순수한 음 그 자체일 뿐이라는 것을 그만큼이나 중현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 개의 음으로만 된, 도레미로만 된 노래가 아니라면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는 그의 신념 아닌 신념은 그렇게 관철되어갔고 중현은 결심했다. 그가 음계 모두를 마스터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 것이었다. 그의 신념은 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의 예술적 신념처럼 처절하지만 ‘예술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기다려주세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열심히 수련해서 11개 음을 모두 마스터하겠습니다.” 그가 중현에게 말했다.

“기다리겠소. 김형!” 중현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반응했다.


그의 수련이 궁금했던 중현은 언젠가 동두천의 들판으로 가서 그를 만나기도 했다. 들판 한가운데 작은 집 허름한 방 안에서 무즙을 먹고 있던 그는 중현의 손가락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선생님, 점점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요. 이제 솔입니다. 또 기쁜 소식이 하나 더 있어요. 도와 레의 반음도 마스터했답니다.”

“나도 곡을 제법 많이 다듬었어요.” 중현이 화답했다.

“선생님께서 기다려주시니 자신이 생기네요. 기어코 모든 음을 마스터할게요.”

중현은 마음이 급해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초조해지곤 했다. 외신에서는 자신보다 나이 어린 에릭 클랩튼이 손가락이 마비되어 더 이상 기타를 치지 못하게 되었다는 소식도 전해져 왔다. 그를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의 멤버와 미리 녹음을 할 계획도 세웠지만 밴드 구성원 상호 간의 인터플레이가 주는 텐션 없는 음악은 생동감이 없을 것임을 중현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렇게 또 한 해가 지났다. 그는 마지막 음 ‘시’를 수련하고 있었다. 그때,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는 음악적 사건이 일어났다. 그의 죽음이었다. 지미 헨드릭스처럼,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처럼, 존 레넌(John Lennon)처럼, 커트 코베인(Kurt Cobain)처럼 그는, 갑자기 죽었다.

오랜만에 보일러 수리를 나갔다가 수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십 대 후반의 어린 래퍼가 몰던 차에 받혀 숨을 거두고 말았다. 래퍼는 술에 취해 고성을 지르며 뺑소니를 쳤다. 도로 한가운데 덩그러니 남겨진 그의 음악인생에는 불빛 한점 비치지 않았다. 동이 트자 운행을 시작한 마을버스의 헤드라이트가 그를 비추었다.

그의 죽음을 전해 들은 중현은, 빈 손으로 드나들던 암자로 가 며칠을 울었다.


언젠가 휘갈겨 써 둔 그의 유서 아닌 유서에는 몇 가지 중현에게 전하는 말들이 적혀 있었다. 그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구절이 있었다.


선생님, 노래가 삶을 만들거나 삶이 노래를 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살아있는 것이 곧 노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린 노래 한 곡 부르고 가는 거예요. 요즘 들어 노래를 다 불러버린 생각이 들어요. ▨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도레미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