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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Hyun Nov 10. 2022

일상의 문장들 1 ~ 8



1

문장이 아닌 것도 있다. 그냥 ‘말’인 것도 있고 그저 ‘글’일 뿐인 것도 있다.  文 章 - 한자가 멋스럽고 포괄적인 맛이 있다. 일상이라는 것도 그렇다. 일상의 가치가 부상하면서 ‘일상성’은 여러 방면으로 의미심장해졌다.

같은 제목으로 대략 한 권 분량의 글을 썼었다. 모두 잊어버리고 (잊어버린다고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다시 쓴다. - 나는 쓰고, 그래서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다.



2

이 책의 군데군데 문장들을 써 넣을 것 같다. 내가 쓴 문장들이 있다. 그리고 어디선가 들은 문장들도 들어간다. 또 책을 읽다 인상 깊어서 채록한 것도 넣어볼 작정이다.

‘일상의 문장들’은, 코로나19 초기에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어떤 시기에 특정한 내용들로 가득 차버렸다. 이번에 다시 쓰면서, ‘문장들’은 언제 곱씹어도 좋은 것들로 선별해보려고 한다. 그 선별이란, ‘문장을 앞에 놓고 한껏 고민하는 일’이 된다. 그래도 그렇지, 시대를 넘나드는 건 아주 어렵다.



3

“내 몸은 춤으로 버티고 있죠.”


페이지는 메모해두지 않았다. 두 권으로 된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설]의 1권에 나오는 특정 춤(춤이름도 메모하지 않았던 듯)의 명인 ‘오사쿠 선생’의 말이다. 만년에 들어선 오사쿠 선생은 주인공 사치코의 집으로 힘든 몸을 이끌고 춤 강습을 오간다. 그 ‘가르침’의 행위는 어쩌면, 거대하다. 춤과 몸, 그리고 가르침이 등가로 이해되는 오사쿠 선생의 아름다운 문장이다.

내 몸은 무엇으로 버티고 있는 건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맛집으로 버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PC게임으로 버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사랑으로 버티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먼저, ‘버티다’는 저 동사에 대해 선입견을 없앤다. 저번 회사에서 오국장이 내게 얘기했던 “버티셔야죠.”는 살짝이지만 빈정을 상하게 했다. 버틴다는 것은, 내가 자존감없이 기생한다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정도 존재야? 하면서 나는 버티기를 거부했다. 여기에서는 저 ‘버티다’를 우아하면서도 독립적이고 건실하게 받아들인다.

자, 나는 무엇으로 버티고 있는가?

참고로, ‘세설’ 속 셋째 유키코는 이런 멘트를 뱉는다.

“나는 나대로 행복한 날이 올 거라는 예감이 있다.”


4

아침 라디오 방송에 시인 정호승 씨가 나왔다. 시구들이 아름다웠다. 중력에 반하는 깊이야말로 시어에 있을 것이지만 시구 아닌 일상어들에는 예기치 않은 깊이가 또 있다. 나는 그런 깊이를 즐긴다.

정호승이 직접 읊었다. “사랑을 잃고 두 눈이 멀어 겨우 밥이나 먹고 사는 나에게” - 아, 이건 일상어다, 하며 기분이 좋아졌다. 그럼 시어는 무엇인가 하면, “슬픔이 택배로 왔다”는 의미심장한 말들이다.



6

“시간에서 무언가를 구해내는 일”


그녀,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니 에르노(Anni Ernaux)가 자신의 일을 규정한 말이어서 내 노트에 옮겨 놓았던 것 같다. 소설쓰기가 아니라도, 시간에서 무언가를 구해낸다는 표현은 그대로 매력적이다. 일단 그 목적어의 행위가 시간 속에 갇혀있다. 구속되어 있는 것을 해방시킨다는 이 겸손은 또 대체 어디에서 왔다는 말인가.

하여간 나는 이 멋들어진 소설가의 이 표현을 빌어서 나의 업에 대해 몇 가지 규정을 하고 나섰다. 카피라이터란,

“무엇인가를 앞에 놓고 한껏 고민하는 일”

“기다리는 것, 잘 기다리는 것, 생각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상품을 사람으로 치환하는 일”



7

“네가 읽는 책이 곧 너다.”


포이어바흐가 그랬단다. ‘네가 먹는 것이 곧 너‘라고. 그래서 내가 써 보았다. 본래는 ‘그 선택’으로부터 나온 말이었다고. 그리고 포이어바흐가 먼저 한 말도 아니란다. 선택들을 보면 선택의 주체에 대해 알 수 있다는, 순리라고 이해된다.



8

“가끔은 마음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말들이 횡행한다. 말로 싸운다. 말로 달랜다. 그런 말들이 횡행한다. 이케아 매장의 교환 환불 부스에 갔는데 이런 말이 크게 붙어있었다. 물론 마음이 바뀌는 것도 순리일 테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렇지만 이케아의 가구들이면 괜찮지, 너에 대한 내 마음이 바뀐다면 참 무서운 일이다 싶다.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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