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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Hyun Oct 24. 2023

그 사람을 생각하는 시간 1

91학번 이 선배 

3악장 스물다섯 번째 마디 세 번째 음이 반음 정도 낮았어.



   그런 기분 아시는지... 내가 굉장히 존중받았다는 느낌. 10년도 더 지난 일인데 최근에 문득 그 일이 떠올랐다. 아니 그 사람을 생각했더니 그 일이 떠올랐다. 

   지금은 고인이 된 원로소설가 이호철 선생이 주관하는 '단편소설페스티벌'이란 행사가 있어서 내 신작 단편을 그 행사에서 발표한 적이 있었다. 당시 첫회였던 이 행사에는 현길언 선생이라든가 이순원 윤영수 윤흥길 등의 유명 작가가 참가했고 나는 신진작가로 참석했다. 원로작가들이 다수 참여하다 보니 신진작가들이 선뜻 원로들 틈에 끼기를 꺼리는 사정이 있었는데 이 선생의 문하생들과 친분이 있던 이 선배는 "자네도 작가 아닌가? 현 선생"라고 얘기하면서 그 행사에 참여를 권했다. 

   그 행사가 있고서도 계절이 두 번 바뀐 다음 어느 술자리에서야 이 선배는 행사가 있고 난 후 이 선생이 내가 부분적으로 발표한 단편 전체를 읽고 맹렬한 비판을 했다는 이야기를 아주 완곡하고 조심스럽게 전해주었다. 그 소설은 이른바 '불륜'을 소재로 한 소설이어서 625를 겪은 전후 문학의 대표작가인 이 선생의 작품 경향과는 사뭇 달랐다. (수준도 사뭇 달랐지요) 그런 내용을 감안하더라도 그 시절의 나는 비평적 언사를 감수하지 못할 만큼 스스로의 잠재성을 맹신하는 미친놈인 동시에 '내가 소설을 계속 써도 될까?'라는 수치심 어린 자문을 하는 좀 바보였다. 아무튼 최근의 나는 (오래전 일을 지금까지 쥐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만) 사안의 내용보다 이 선배가 내가 상처받지 않도록 배려했다는 사실을 곱씹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여러 이유들로 소설가로서의 활동은 전혀 하지 못했지만. 아무튼 이 선배는 어떻게든 내가 상처받지 않도록 애썼다. (여담이지만 '러브수프림'이라는 그 불륜소설은 지금에 와서 보면 좋아하는 사람이 꽤 있다.) 이 선배라면, 내게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때 얘길 왜 하냐고 물어오면 뭐 대답할 거리가 별로 없긴 한데 아무튼 그때는, 어떻게 보면 이유 없이 술을 많이 마셨다. 중고교를 거치면서 제법 억제되어 왔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당시 대학의 분위기는 본의는 아니되 술을 권장했다. 대학 내에서 운동권 시대가 저물고 시들어 어쩌면 회고의 술들일지도 몰랐다. '술의 전설'들을 입에 올리면서 우리가 새로운 전설이 되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91학번인 NL 이 선배와 93학번인 나, 그리고 86학번인 PD 석 선배는 (NL PD 같은 구분이 지금에서는 좀 촌스럽다) 학교 뒤에 있는 자취촌에서 대략 오후 서너 시에 시작해서 새벽까지 혹은 '올나잇'으로 곯아떨어질 때까지 마셨다. 한 번은 석 선배가 좁은 자취방안에 내 동기들을 '욱여넣고' 바깥에서 자물쇠로 문을 잠가버렸다. 방에는 큰 병들이 소주가 몇 병 있었다. 밤새 우리는 그 소주를 마셔가며 갇혀있었는데 싱크대도 없는 그 구식 자취방에서 어떻게 병이라도 수습해서 볼일을 봤다. 그렇게 우리는 술을 마셨다. 

   나중에, 2009년쯤에 이 선배를 서울에서 다시 만났는데 (같은 해 여름에 단편소설페스티벌에 참가했다) 이 선배는 음... 물을 마시면서(즉, 간을 좀 희석해 가면서) 소주를 마셨다. 대구에서 나는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대를 했고 이 선배는 내가 군대에 간 사이 졸업을 해버렸다. 그런 다음 선배는 서울의 한 대학교에 편입을 했고 두 번이나 졸업한 선배는 은행원이 되었다. (석 선배는 교도관이 되었다.) 

   이 선배는 지금 건실한 은행원이지만 고교시절 동성로(대구)에서 시위에 참가했다고 했다.(건실한 고교생ㅋ) 대학시절 대단한 좌파 이론가였고 중장년기엔 열렬한 우파 선동가였다. 요즘은 이념 얘기를 잘하지 않으니까 선배의 이념이 어떤지 잘 모르겠다. (요즘 들어 나는, 이념 따위!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서울생활 중 언젠가부터 선배는 트럼펫에 빠져들었는데 신림역에 있던 '클럽올드파'란 주점에서 콤보밴드의 일원으로 트럼펫을 불기도 했다. (금요일밤에 출연했는데 선후배 몇과 함께 종종 갔었더랬다) 그러면서 긴 시간 대학에서 화성학 같은 어려운 음악이론을 공부해 예술학교의 교수로 임용이 되었는데 그 학교가 폐교해 버렸다. 뮤지션이 되어버린 은행원은 트럼펫 다음에는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했고, 지금은 거기에 더해 기타에 빠져있는 것 같다. 선배는 요즘 언젠가 팔아버린 깁슨의 풀할로우 기타를 다시 구하려고 중고악기장터의 게시판을 훑고 있다. 재즈뿐 아니라 록음악에도 쓰는 얇은 두께의 세미할로우(깁슨의 335 같은)는 기피하고 어디까지나 '간지'를 위한 내추럴 컬러의 풀할로우를 찾아 헤매고 있다. 

   아, 중요한 기억들이 있다. 2009년쯤이었던 거 같은데 지금 같은 가을이었다. 차가운 바람이 쓱 불어오는 중에 담배를 피웠던 기억이 어찌 남아있는 걸 보면. 어느 날 선배는, 단호하게 말했다. "영화를 찍고 싶다." 나는 알고 지내던 조감독 출신 영화인 한 사람을 소개해주었다. 그렇게 우리 셋에 다른 선배 한 사람을 더해 넷이 영화를 위해 종종 만났던 것 같다. 나중에는 조감독(성도 '조'였다)이 친구 한 사람을 더 데리고 나와서 다섯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서로의 시나리오를 주장하던 사이 선배는 어느 쾌청한 주말에 우리에게 알리지 않고서 혼자 영화를 찍어버렸다. (알고 보니 스텝들은 또 동문들이었다) 그 작품이 단편영화 '개인교습'이었다. 이 선배가 감독과 주연을 겸한 그 작품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주인공인 트럼페터는 공원에서 트럼펫을 개인교습한다. 한데 수강생은 주인공의 교습에 자꾸만 피식 웃기만 한다. 교습 내용을 비웃을 것일까? 선생은 화를 낸다. 급기야 수강생은 울면서 공원을 떠난다. 사실 20대 어린 여자 수강생은, 선생의 구멍 난 양말을 보고 웃었던 것이다. 이게 영화 내용의 전부인데 BGM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와중에 이 선배에게 물어보았더니 쳇 베이커의 트럼펫이 결말과 엔딩크레디트에 깔렸다고 한다.) 

   언젠가는 부부동반해서 고전음악 연주회에 갔었다. '사라 장'의 리사이틀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닐 수도 있다. 오늘 연주 어땠나요?라고 내가 물었을 때 선배가 답했다. "3악장 스물다섯 번째 마디 세 번째 음이 반음 정도 낮았어." - 나는 이 농담이 좋아서 그 후에 곧잘 써먹었다. 


   이번 주말 내내 이 선배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선배가 좋아할 음악은 내가 잘 알지만 선배가 잘 모르는 의외의 음악이되 선배가 좋아할 음악을 찾는 것은 상당히 난해한 숙제다. 음... 


   말 그대로 신록이 푸르던 그날,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내 소설을 함께 읽었다. 선배 덕분이었고. 그 여름날을 기억하기 위해 'Summertime'. 

   Chet Baker, The Last Great Conccert 중에서

   (사실은 이 곡을 고르기 위해 거의 일주일을 보냈다. 쳇 베이커의 말년이라고는 하지만 악기소리가 훈풍이 불어오는 여름의 나무그늘처럼 달콤하고 흥겹다. 그가 청년으로 죽은 것만 같다. 그러고 보면 선배도 청년의 품격을 지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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