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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목나무와 매미 Jul 09. 2023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

《인생의 역사》(난다, 2023)을 읽고

 대한민국에서 90년대 이후에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시 한 편을 접했을 때 이런 생각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이 시의 화자는 누구인가?', '화자는 왜 이런 표현을 사용했는가?' 혹은 '이 시의 시대적 배경은 어떤가?' 물론 이런 질문들은 시를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시가 가진 이미지, 시의 표현을 감상하고 음미하기 전에 시를 분해하고 분석하다 보면 시가 가진 아름다움을 오롯이 느낄 수 없다. 그렇다 보니 이 시절 학교에서 시를 접한 사람들은 시를 마주하게 되면 시의 아름다움보다 시에 대한 거부감을 먼저 느낀다. 윤동주의 시를 접했을 때처럼 말이다.

우리는 인생의 어느 한 시점에 스스로 윤동주를  발견하고 대화하고 감동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럴 기회를 박탈당했다.

신형철, 《인생의 역사》, 난다, 173쪽

 신형철 문학 평론가의 시화(诗话)인 《인생의 역사》(난다, 2023)는 학창 시절에 쌓아 올린 시와의 거리를 좁혀준다. 평론가인 저자가 시의 의미를 찾는 과정을 통해 독자들은 시의 참된 아름다움이 어디에 있는지, 시가 우리의 인생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함께 고민한다. 덕분에 책을 읽고 나면 시의 진입 장벽이 낮아지며, 직접 시를 나만의 생각으로 이해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과정의 첫 번째로 독자는 문학 전문가인 저자가 엄선한 좋은 시들을 만난다. 유명한 시를 새로운 시각에서 접하거나, 유명한 작가의 덜 알려진 시를 알게 되거나, 전혀 생소한 시인의 시를 만날 수 있다.

 <공무도하가>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시다. 광인 남편을 잃은 아내의 애달픈 마음을 노래한 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저자는 이보다 더 넓은 시야에서 시를 조망한다. 시에 등장하는 부부뿐만 아니라 시를 전수한 곽리자고와 여옥의 입장 역시 상상해 본다. 독자는 저자의 사유를 따라가며 그동안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고, 시를 새롭게 읽는 기쁨을 느끼게 된다.

 <채식주의자>로 유명한 소설가 한강은 사실 시인으로 먼저 문학계에 등단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의 시보다는 소설에 더 익숙하다. 한강의 <서시>는 시인으로서의 한강을 마주하게 한다. 한강의 소설 속 세계가 시의 세계와 연결되는 것을 보며 한강의 작품을 다각도에서 감상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이스크림의 황제>는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월리스 스티븐슨의 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생경한 외국의 시를 읽어봄으로써 외국의 문화와 그들의 감성을 이해해 보는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

 시에 다가가는 두 번째는 우리가 왜 시를 읽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일이다. 시는 인생과 공통점이 있다. 행과 연이 쌓이면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그런데 나는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 걸어가면서 쌓여가는 건 인생이기도 하니까.

신형철, 《인생의 역사》, 난다, 7쪽

시를 이해하고 시에 대한 감각을 쌓아 올리는 일은 결국 인생을 되돌아보고 깊이 생각해 보게 하는 일이다.

 시는 인생에 영향을 준다. 이는 크게 보면 문학의 역할과도 같다. 나의 감정, 상태를 적확한 언어로 표현하게 함으로써 내가 느끼는 바를 명확하게 알게 해준다.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문장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어느 날 어떤 문장을 읽고 내가 기다려온 문장이 바로 이것임을 깨닫는다.

신형철, 《인생의 역사》, 난다, 112쪽

나를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시작으로 우리는 계속해서 나를 수용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시에게 다가가는 이 여정을 반복하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나름의 방식으로 시를 즐기고 있을 것이다. "시를 읽는 일에는 이론의 넓이보다 경험의 깊이가 중요하다."(8쪽)라는 말처럼, 시를 읽는 것에 두려움을 갖지 않고 시를 읽어나가다 보면 우리도 언젠가 우리 인생의 역사를 설명하는 시를 마주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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