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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많은김자까 Feb 21. 2020

예끼!! 태명없는 아기가 어딨어?

난임부부를 위한 의사

병원도착 30분만에, 분만대기실에서 분만실로 옮겨졌다.

남편은 해외출장,

친정엄마에겐 말할 수 없었던 다섯째 출산.

그때 우린 둘 뿐이었다. 나와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올 다섯째, 이렇게 둘 뿐이었다.

출산이 임박하단 연락을 받고 교수님이 부리나케 뛰어들어왔다.


아빠 어딨어 아빠!! 탯줄 잘라야지

출장갔다 아직 안왔어요. 교수님.

아 맞다. 출장갔댔지. 아프리카로 갔댔나? 고새를 못참고 나오는 거야. 요녀석

(별걸 다...기억...하시는...)저 교수님, 제가 많이 아픕니다요.

저기, 간호사. 여기 동영상 좀 찍어봐. 탄생의 순간은 있어야지. 아빠도 봐야하고.

(세심한 배려 감사합니다만, 교수님, 아파 죽겠다고요오~~~~~~)

태명 뭐야 태명?

없는데요??

예끼!! 태명없는 아기가 어딨어? 요즘 세상에!!

(주위를 둘러보며) 애기 이름 좀 지어봐. 태어날 때 이름이라도 불러줘야지. 씩씩이 어때 씩씩이.

씩씩아 이제 나오자~~~

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응애~~소리와 함께 나의 다섯째가 태어났다.

씩씩이는 교수님의 검지손가락을 꼬옥 잡고 있었다.


https://brunch.co.kr/@olee0907/7


교수님과의 인연은 1호때부터였다.

우리 아이들 다섯중 네명을 교수님이 받았다.

셋째때는 교수님이 미국연수 중이었다.


넷째 다섯째때 임신사실은 실로 심란했지만,

교수님을 다시 만날 수 있단 사실만은 방가웠다.


밀레니엄베이비 1호를 임신했을때,

한창 그네분만이니, 수중분만이 유행할 때였다.


나에겐 분만방식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천주신자이므로,

출산은 가톨릭병원에서 하고 싶었고,

마포대교 다리만 건너면 되는, 여의도성모병원으로 정했다.

여자 교수님을 찾다가 이름만 보고 진료 예약을 했는데, 아뿔싸.

'이영'이 남자일 줄이야.

30대 젊은 남자 교수님이었다.


다섯녀석 중에 1,2호가 토요일 일요일에 태어났다.

각각 낮과 이른 아침이었는데,

주말에도 교수님이 직접 아이들을 받아주셨다.


2호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임신 3개월즈음 첫 진료를 받았다(첫째때는 5개월때. 일찍가면 뭐하나 싶어서)

첫째때는 아마도 개월수가 늦어 하지 않았었던지...2호때 처음 기형아 검사를 했고,

이상소견이 나왔다. 양수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난 말했다.

"교수님, 양수검사 꼭 해야 하나요? 전 태아한테 문제가 있더라도 낳을 건데요"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물론 낳으셔야죠. 하지만, 기형아 검사에서 이상소견이 나왔다고 해서, 태아가 기형일 확률은

아주 낮습니다. 그런데, 기형 여부를 양수검사로 확인하지 않으면,

출산할 때까지 산모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요. 물론 양수검사에 대해 저역시 부정적이지만,

산모와 태아가 스트레스 받는 것보단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닐 확률이 더 높으니까요.

기형이라도 낳기로 결심했다면,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하고요."

나는 남편과 상의 끝에, 교수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했다.

양수 검사를 하는날, 누워서 검사를 기다리는 내게 간호사 선생님은 내 손을 꼭 잡고. 괜찮다고

교수님도 거듭거듭 괜찮다고. 위로했다.

저 정말 괜찮아요.

하지만, 그 과정이 감사하고 따뜻했다.

양수검사를 하고 몇주 뒤, 나보다 더 기쁜 표정으로

"봐요. 건강하잖아요"

교수님은 아이처럼 기뻐했다.


다섯째 임신은 마흔셋. 대개는 그 나이면, 고령임신으로 양수검사가 필수였지만, 교수님은

"지금까지 네명 아이 다 건강하게 출산했고, 비싼데 뭐하러 양수검사를 해. 초음파로 꼼꼼하게 체크하고 맙시다"


넷째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2010년, 11월 출산을 앞두고, 2-3주 전 추석이었다.

"교수님, 출산이 3주도 안남았는데, 차타고 장거리이동해도 돼요? 제가 진행도 빠르잖아요. 차에서 진통오면"

"걱정말고 다녀오셔. 해외여행가도 돼"(참내, 실망스러웠다ㅠㅜ)

시무룩한 내 표정을 보고,

"근데, 어디 가는데?"

"합천시댁에, 명절이잖아요"

"무슨 소리야. 임산부가 무슨 명절에 시댁이야 시댁은. (옆에 있던 애많은이피디를 보고)아빠 알았죠? 이번엔 한번 쉬어. 시댁이 아파트 옆동이라도 가는거 아냐. 임산부는"

이런 위트 ㅎㅎㅎ(그러나 갔었습니다. 시댁은)


다섯째 출산 후 마지막 진료를 받으러 갔더니, 몸이 허할 땐 한약을 먹으라는

양의답지 않은 조언과

애를 많이 나서, 골다공증이 올 확률이 높으니 칼슘제를 빼먹지 말고 먹어야 한다는 잔소리를

삼십분을 들었다.

"교수님, 뒤에 다른 산모들 기다려요. 알았으니 그만하셔요오~~"


여의도 성모병원 산부인과 나프로임신센터장 이영교수님이다.

지난 연말부터 K본부 방송과 함께,

평화방송 토크콘서트를 구성하고 있는데,

이날은 난임부부를 '나프로임신법'이 주제였다.

마침내 이영교수님을 방송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녹화날,

"교수님, 저 기억하세요?"

처음엔 갸우뚱 하더니

"자꾸 보니 기억나네. 참 밝고 씩씩한 산모였어."


녹화가 진행됐고,

인공수정과 시험관시술을 여러차례 실패하고

10년만에 교수님의 나프로센터에서 임신에 성공한 사례자가 출연해서,

본인의 경험을 얘기했다.

사례자에 이어,

교수님께 마이크가 건너갔다.

 

"교수님. 이 분이 처음 나프로임신센터에 왔을 때, 기억하고 계세요?"

교수님은 카메라를 보지 않았다.

큼큼 헛기침을 하더니,

말을 잇지 못했다.

몸이 불편하신가 싶었다.

여러번 말을 이으려고 하다,

"죄송합니다."라고 하는데, 교수님은 목이 메였고, 울고 계셨다.


"저를 찾아오시는 대부분의 부부들...그 고통과 아픔은......이루 말로......

상처주지 마십시오. 누구보다 아기를 갖고 싶어하고,

엄마아빠가 되고 싶은 분들입니다, 더이상 말로 눈치로 상처주지 마십시오"


난 그때,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행복하고 운이 좋은 아이들인지, 다시한번 깨달았다.

저런 분의 손에서 세상을 만난 아이들이다.


미국연수가서 배워온 나프로임신법을 도입할때, 고민이 많았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프로임신센터 2년째.

현재 성공률 26퍼센트 정도로

인공수정보다 성공률이 높고, 시험관시술 성공률에 맞먹는 수치다.

중요한 건, 자연임신법이라는 사실이다.

여성의 몸을 괴롭히지 않고, 자연주기를 통해 임신을 유도하는 방법이다.  


임신 가능성은 있으나,

그 어떤 방법으로도 임신이 되지 않았다면,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산모와 아이를 사랑하고,

난임부부들을 위해 뜨겁게 눈물 흘릴 수 있는,

인술을 펼치는 의사의 열정과 진심을,

진심으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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