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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많은김자까 Jul 02. 2019

다산(多産)은 '죄'다!! (1편)

처녀가 임신을 했어도 이보다 욕 먹었을까


애많은김자까 애많은이피디의 다섯번째 임신, 다섯번째 출산 이야기 1.


2013년 8월.

설마. 심상치 않다.

'설마'가 '역시나'가 되고,

'심상치'가 '현실치'가 되면,

...망한거다. ㅠㅜ.


일단 날짜가 지났다. 있어야 할 소식이 없다. ㅠㅜ

하루 너댓사발 커피를 마셔야 머리가 돌아갈까 말까 하는 '나'이거들,

커피 '향'...아니아니 '냄새'가 딱 싫어졌다.

(지난 네번의 초기증상이 다 이랬다)

일용할 양식, 라면(조미료 많이든 인스턴트 음식들)조차도 입에 댈 수 없을 정도로 역해졌으니,

역시나 이건.................

하아~~

 


감히 테스트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 이틀, 표나게 뒤척이고 심난해 하니,

평소 눈치를 갈치마냥 씹어 잡숫는 앵감(애많은이피디)도

이번엔 뭔가 눈치를 깠는지.


"고민있어?"

'그램마(그래 임마)'

"혹시"

'혹시 모? 모? 모!!!!!!!!!!!!!!!!!!!!'

"고민하는 게..............임신............................................"

"그래, 너랑 나랑 죽자. 그냥"


(그리고, 다음 날 남편은 약국엘 갔는데, 사실 49세 남자가 임신테스터 사러가는 것도 민망한 일. 처제꺼랄겨? 젊은 세컨드꺼랄겨?)

세상 이치는 오차나 빗겨감이 없다.

어째서, 왜 망할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테스트 결과는 선명한 두 줄.................

출처 https://blog.naver.com/miz-talktalk/221092111627

('간 두줄'은 지금도 공포스럽다)

넷째 임신 때만해도, 우리 부부는 걱정과 근심이 한짐이었지만,

그럼에도 둘이 잘 헤쳐나가 보자고 다짐하고 서로를 위로했었다.

그러나, 다섯째 임식 소식에 남편의 태도는 4년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한숨만 폭폭 쉬더니, 급기야.

"을꺼야?"

"그게 말이니? 방구니? 뱃속에 니새끼도 걸어 돌아다니는 지금 니새끼들하고 똑같은 생명이야. 그러니까 진작 묶으랬지. 이 '조카18색크레용'같은 '그레이색'이야~~~~~~~~~!!"

그러나, 남편의 이런 반응도 아주 조금 이해가 되는 것이,

넷째 임신 때, 정말 6.25때 난리는 난리도 아닌, 그야말로 그런 난리가 없었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임신 5개월 즈음,

우리 김여사(친정엄마)께 이실직고 했는데,

엄마의 반응은 심플 그 자체였다.


1. 문을 걸어 잠근다.

2. 곡끼를 끊는다.

3. 종종 대성통곡한다.


그렇게 2주가 지나갔고,

매일 빌고 빌다, 남편은 급기야 눈물 흘리며 무릎까지 꿇었다.

"어머님 죄송합니다."

 


(그치 죄송하지. 근데 뭐가? 죄송한 거지?

분명히 죄송한 일이긴 한데, 이게 또 뭐가 죄송하냐고 따져 물으면

답하기가 무척 애매하고 민망하단 말이지)


그래도 새생명을 두고 장모이자 친정엄마가 이렇게 나왔다고 하면,

너무 매정한 거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한말씀 드리자면,

난 결혼해서 늘 험한 시간대의 데일리 생방송을 했던 방송작가 워킹맘이었고,

육아와 살림은 모두 온전히, 우리 김여사의 몫이었다

맏딸로 태어나 동생보란 말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

46년생 그 나이에 달랑 남매만 둔 울 엄마 김여사이거늘

딸년 잘못 둔 탓에, 세상에서 제일 싫은 애보기를 지끔까지 하고 계신게다. ㅠㅜ


반대는 친정엄마 뿐 아녔다.

울 김여사보다 조금 먼저 넷째 임신 사실은 안 시어머니, 박여사께선

먼 영남지방에서 굳이굳이 전화를 해서는


"당장 떼라."

"어무니, 5개월이거든요"

"그래도 더 늦기 전에 떼라"


내친 김에, 하나 더 꼰지르자면

넷째를 낳고 자궁근종이 생겨 근종 절제시술을 받아야 했을 someday에

박여사께선 반색하며(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아주 이참에 자궁을 들어내라"고 해서, 나는 기겁하고, 남편은 식겁 했음.


다만, 시어머니의 변이라면, 당시 낙태 종용은

손주 네명이나 키운 사돈=김여사께 면목이 없어서였지

다른 악의는 없으셨지만서도....(며느리는 잊지 않으리ㅎ)


여하튼, 양가 부모님이 반기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역정, 대노할 게 明若觀火(불보듯 뻔)한 상황에서,

남편은 장모님 앞에 무릎 꿇었던 4년 전을 떠올리며 발발 떨고 있었고.

우린 둘다 정말 딱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말 죽고 싶었다.

다섯째도 식겁할 일이었지만, 우리는 이미 생물학적으로도 신생아의 부모 되기엔 넘 늙어 있었다.

애많은이피디=49세, 애많은김자까=43세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말이다 ㅠㅜ 도대체 어떻게?


(애많은이피디 애많은김자까의 다섯째 임신출산기 2편 3편도 쭈욱 이어집니다. 커밍 쑤운~~~)


https://brunch.co.kr/@olee0907/8


https://brunch.co.kr/@olee0907/9


https://brunch.co.kr/@olee09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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