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잃어버렸다.
말기 위암 선고를 받은 지 5년만에 아빠는 완치 판정을 받았고,
그 후 2년 후에 재발. 또 3년 후엔 거스를 수 없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아빠가 그토록 가보고 싶어했던 생애 마지막 여행지였던 백령도 대신
마지막 지푸라기로 선택했던
민간요법, 단식원은
아빠를 죽음의 문턱 바로 앞까지 끌고 왔다.
아빠와 우리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슴아팠던 건, 아빠 몸속에 퍼져있다던 보이지 않는 암세포가
고스란히 아빠에게서 목격되고 있었다는 거다.
지적이고 깐깐하고 꼼꼼하고 빈틈없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던 아빠는
단식원에 다녀온 후로,
첫단추를 두번째 단추구멍에 꿰고,
종종 지퍼도 잘 여미지 못했다.
카리스마 있고 엄한 눈빛은 간데 없고, 멍한 눈으로 어딘지 모를 곳을 자꾸 바라봤다.
가슴이 아팠다. 아빠도 모르게 아빠를 좀 먹는 암세포들이 야속했다.
한편으론, 다행스럽기도 했다. 지금의 모습을 아빠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이기에....
엄마는 마지막까지 아빠에게 최선을 다했다.
눈시울을 붉히지 않고 아빠를 바라봤고,
아빠가 좋아하던 일상을 기꺼이 되풀이 했다.
그 중 하나, 매일 새벽 동네 목욕탕 가기.
그날도 목욕탕에 갔고, 평소보다 좀 늦게 돌아온다 싶었는데,
가쁜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아빠가 없어졌어
"무슨 소리야?!!!"
엄마가 먼저 여탕에서 나와 아무리 기다려도 아빠가 안나오더라는 거다.
기다리다 못해, 목욕탕 주인에게 기별을 넣어달랬더니,
아빠가 없다는 거다.
평소의 아빠라면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지만,
암세포들은 이미 아빠의 뇌를 사악하게 짓니겨 놓은 상태였다.
인지 장애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던 상황이다.
전화를 끊고, 오빠와 나는 미친듯이 동네를 뛰어다녔다.
아빠는,
목욕탕에서 혼자 어떤 모습으로 길거리로 나왔을까?
신발은 신었을까?
단추는 다 채웠을까?
깎듯하고 반듯하고 자존심 강한 우리 아빠를 사람들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곁눈질 하고 혀를 차며 정신나간 사람으로 보지는 않을까?
무서웠다.
이대로 아빠를 찾지 못한다면.
아빠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단 생각에
다리에 힘이 풀리고, 온몸이 쪼그라 들었다.
남의 출근길에, 나는 풀썩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아빠, 돌아와. 돌아와서 내 눈 앞에서 죽어. 응? 아빠!
이대로 아빠를 잃어버린다면, 난 살지 않을 거야. 아빠.
돌아와야 해. 돌아오지 않으면....아빠! 난 죽을꺼야.
아빠는 돌아왔다.
아빠는 그날 목욕탕에서 나가지 않았고
구석에서 잠든 아빠를 목욕탕 주인을 발견하지 못한 거였다.
아빠를 보고 "아빠" 외마디를 토해내니,
눈물범벅이 된 나의 얼굴과
맨발인 내 발을 보고도
아빠는 아무렇지 않게 "왜?"라며 웃어보였다. 무슨일이 있었냐는 듯이.....
또 한번 가슴은 무너져 내렸다.
20년도 넘은 일이지만,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아빠를 잃어버린 줄 알았던 그 몇시간의 고통이
지금도 칼에 베인듯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며칠 후 아빠는 화장실에서 쓰러졌고.
일반병동에서 한달, 호스피스병동에서 열흘.
가쁜 숨을 몰아쉬다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갔다. 나의 우주가 떠났다.
1호 5살에 명동 롯데백화점엘 갔는데,
가뜩이나 사람들로 붐비는 백화점은 매장 공사중이라 북새통이었다.
아장아장 앞서 걸어가는 아이를 바라보며, 이름을 불렀는데.
순식간에 아이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백화점의 모든 문은 열려 있었고, 아이가 인파에 휩쓸려 그대로 밖으로 나간 거라면,
잃어버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무서웠다.
하지만, 아이는 우리와 헤어졌던 그 자리로 돌아가 안내데스크로 찾아갔다.
우리는 다시 만났다.
누군가의 칠순잔치로 강남 호텔을 갔는데,
이제막 돌지난 2호가 사라졌다.
미친 듯이 찾았다.
무서웠다.
한참을 헤매다가 다른집 칠순 잔치서 놀고 있는 아이를 찾곤
풀썩 주저앉았다.
백화점에서 잃어버렸던 날, 시야에서 사라지던 순간의 1호의 뒷모습과
남의집 칠순잔치에서 찾았던 2호의 당시 모습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자식을 잃어버린다는 것.
부모를 잃어버린다는 것.
나의 보살핌없이 살아가는 그들의 삶과 죽음을 무수히 추측하며 살아간다는 건,
어느날 들이닥친 부고보다 끔찍한 일이다. 그때, 나에겐 그랬다.
그날 그날 그날
1호를 잃어버린 날
2호를 잃어버린 날
그리고 아빠를 잃어버린 날
20년 전 잃어버린 딸을 찾는 "제발 제딸 송OO을 찾아주세요"
어떤 아버지가 걸어놓은 간절한 현수막을 볼때마다,
그때들이 떠올라 가슴이 미어진다.
사랑하는 사람의 '끝'을 모른 채 산다는 건,
그건
헤어릴 수 없는 고통, 그 이상의 고통일 것이다.
구독자님들 코로나19 시국에 잘 지내고 계시나요?
제 안부를 궁금해하실 몇몇 구독자님들을 생각하며,
몇글자라도 소식을 전해야지 싶었지만,
코로나19로
확대 편성에, 특별대담에
조금조금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또, 언젠간 말씀드리겠지만...브런치를 통해 시작하게 된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라
조금은 분주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개학연기로 2녀3남 녀석들로 꽉 찬 우리집엔
저의 고성과 녀석들의 희희낙락으로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녀석들의 이야기도 조만간 들려드려야 할텐데.
조만간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