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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많은김자까 Jul 18. 2019

에에엥~~국민여러분 국민여러분

설명에 인색한 어른들

어른들은 다 괴물같아 보였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



음력 생일은 12월, 양력 생일은 1월.

이래서 난, 양력나이 7살에 국민학교에 입학했으니,

유치원은 6살에 다닌 거다.


지금은 유치원 어린이집을 삼사년 다니는 게 보통이지만,

우리때만 하더라도, 유치원을 다닌 친구들과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반반이었다.


나는 당시, 경기도 모처의 유치원을 다니다,

공무원이었던 아빠의 인사이동으로 조금 더 작은 동네로 이사를 가야하는 상황이 됐다

행정구역이 아예 달라지는 동네였다.


문제는 유치원. 이사갈 동네엔 유치원이 없었고,

내가 다니던 유치원에선 나 하나를 위해 그 동네까지, 셔틀을 운행할 수는 없었다.


선택의 기로에서 엄마는 과감하고, 용감했다. 그야말로 민주주의에 입각한.

여섯살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할래? 유치원 그만둘래? 다닐래?"

"다닐래"

"그래 다녀"

이런 (망할) 민주주의!!


대책은? 심플했다.

버스정류장에서 시외버스를 탄다.

정류장에 내려 기다리다 유치원 버스를 타고 등원한다.

누구랑? 혼자서. (단 버스정류장까지 엄마가 마중과 배웅을 나온다)


버스를 타는 시간만 짧아야 15분. 족히 20분은 걸리는 거리였다.

하원은 좀 더 난해했다.

유치원 버스가 큰 길가에 내려주면,

혼자서 두 정거장 쯤을 걸어,

집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탄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엄마빠야말로 용감하기가 용가리통뼈다.

여섯살. 우리 막내 여섯살 5호를 혼자 버스에 태워 어린이집으로 보낸다니. 상상이 되는가?


그 시절 출퇴근시간 시외버스는 그야말로 예외없는 콩나물시루였다.

버스에 타면, 만원 버스 속 어른들의 덩치에 끼어, 내 발은 예외없이 허공에 동동 뜬 채로,

유치원이 있는 동네까지 가야했다.

그래도, 정류장 한번을 놓치지 않고 제때 내렸으니, 지금 생각해도 기특지고 기특지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하원. 여느날과 다름없이 나를 큰 길가에 내려주고, 유치원 버스는 다른 친구들을 태우고 떠났다.

나 역시 여느날과 다름없이, 나를 집에 데려다 줄 시외버스를 타기 위해,

초록색 원복에 모자를 쓰고, 노랑 유치원 가방을 가로 멘채,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가는 데, 얼마쯤 걸었을까?

거리가 보통때와는 달리 한갓지단 생각을 할 찰라.

어라~~

어떤 아저씨가 를 무섭게 쳐다보더니.

꼬마야!! 이렇게 돌아다니면 어떻게 해?!

라며,

막무가내로 내 손을 잡고, 끌다시피 어디론가 데려가 집어 넣어버리는 게 아닌가? 감옥인가?

너무 무서워서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이미 어른 대여섯명이 나보다 먼저 감옥(?)에 먼저 와 있었다.

어른들이어서그런지, 나만큼 두려워하는 표정들은 아녔다.

그때, 여섯살 나는

저 집에 가야해요. 엄마아빠가 기다려요.


눈물을 글썽이는 꼬맹이에게 어른들은

표나게 불친절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친절하지도 않았다.

"기다려. 쫌 있음 갈 수 있어."

난 믿을 수 없었다. 갑자기 무서운 군인트럭이 와서, 우리 모두를 싣고 어디론가 가버릴 것 같았다.


'안돼. 탈출해야겠어'


난 어른들의 눈치를 살피다가, 문을 열고 잽싸게 감옥을 탈출해 앞만 보고 뛰었다.

그때, 어디선가 호르라기 소리가 울리더니

아까 그 아저씨와 얼굴만 다른, 똑같은 베이지색 옷과 똑같은 모자를 쓴 아저씨가


"어이~!! 거기 그 꼬마 잡아!!"

난 그대로, 또다른 베이지색 아저씨에게 잡혀,

그 팔뚝과 허리춤 사이에, 밀가루 포대처럼 들린 채, 또 다른 감옥에 감금됐다.


"꼬마야. 조금 이따 보내줄게"

거짓말. 싫어요 지금 갈래요


"안돼"

함께 서있던 어른들도 날 도와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난 다시 탈출을 감행했고,

또다시 잡혔고, 또다시 갇혔다.

그러기를 두어번.

갑자기 "에에엥~~~~~~" 소리와 함께 감옥의 문이 열렸다.

무표정한 아저씨 아줌마들도 감옥에서 제발로 나왔다.

난 그 새를 비집고 나와, 죽어라고 뛰었다.

"엄마~~~~~~아빠~~~~~~~"

눈물에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죽어라 뛰고 뛰어서, 버스정류장까지 왔고.

무사히 버스에 올라 탔지만,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버스 기사님과 차장 언니가, 왜 우냐고 물었지만.

난 그 어떤 어른들과도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어른들은 다 괴물같아 보였다.


버스에서 내리자,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난 그 품에 폭 쓰러져 안겼다.

꼬장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게 우는 내게, 엄마는.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늦었어?"

어떤 아저씨들이 날 막 잡아서, 감옥에 집어넣었어.

"?"

나를 붙잡아 가뒀던 완장 찬 베이지색 아저씨들의 인상착의를 설명했더니,

그제서야 엄마는


"아~~오늘 민방위훈련이었지"

"그게 뭔데?"


어른들은 왜 나에게 민방위훈련에 대해서 얘기해주지 않았을까?

엄마든 아빠든

유치원 선생님들이든

베이지색 아저씨들이든

함께 감옥(아마 동네 구멍가게나 복덕방이었을게다)에 있었던 어른들은

두려움에 죽을 것만 같았던 여섯살 꼬마에게

지금은 훈련 중이고, 조금만 기다리면, 집에 갈 수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왜 설명해주지 않았을까?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가슴이 뛰고, 심장 주변 혈관들이 미친듯이 팔딱거린다.

눈을 감으면, 40년도 더 된 당시 상황이 떠오르고, 다시 포르르 떨린다.

베이지색 아저씨들이 호르라기를 불며

"저 꼬마 잡아라."


40년이 지난 그때의 일을 얘기하면, 모두 까르르 넘어가게 웃지만.

난, 지금도 눈물이 난다.

내가 아닌, 나의 여섯살 5호가 그때 그 장소에 있었다면? 생각만 해도 심장이 멎을 것 같다.



민.방.위.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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