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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많은김자까 Sep 14. 2019

'이'아니면 '잇몸'아니라, 그래도 '이'여야 한다

생방송 '펑크'를 대하는 자세

지난 주 였다.

명절을 앞두고 여기저기 안막히는 곳이 없다.

1부 두번째 꼭지에 출연할 연사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왔다.

"작가님 어쩌죠? 차가 너무 막혀요. 시간내 도착하지 못할꺼 같아요"

막히는 길 감안해서 출발하셨어야죠? 라고 하기엔,

연사는 충분히 일찍 나섰고,

도로 사정이 예기치 않게 심술을 부린 상황이었다.

자차로 움직이는 연사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늦는 연사에게도 공포스런 시간이리라.

나는 여러 계산을 해야했다.

함께 당황해서 팔짝 뛸 일이 아니었다.

일단 안전운전을 하시라며,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안심시킨뒤 전화를 끊었다.

정작 나는 안심되지 않았지만.


어쩌지?

일단 2부에 출연하기로 한, 연사 두분께 전화를 드렸다.

사정을 얘기했고, 두분다 서둘러 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한분은 지하철로 이동 중이라

지하철에서 뛴다한들 도착시간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고,

자차로 움직이는 두번째 연사에게

희망을 걸어볼 밖에.


어떻게든 방송국까지 안전하고도 빠르게 도착하는 건 연사의 몫.

연사가 도착해 생방송 스튜디오로 올라오는 시간을 줄이는 게 내 몫이다.

먼 주차장이 아니라, 건물앞에 주차하게끔하고,

출연자의 신분증과 출입증을 교환하는 절차를

생략해야 했다.

최소7분은 줄일수 있는 절차다. 그렇게 줄인 덕에

결국 2부 연사는 방송 5분전에 도착했고,

순서의 뒤바뀜은 있었으나

무난하게 1부 방송은 마무리됐다.


한창 시간을 조절하고 있을때,

애초 출연했어야 할 연사가 전화를 했다.

"어쩌죠 작가님. 도저히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겠어요. 이미 제차는 두고, 택시를 타고 이동중입니다만. 헉헉"

연사는 낭패감과 긴장감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대표님, 숨쉬세요. 괜찮아요. 아무일도 없을 거에요. 1부에 출연하기로 하셨던 거, 2부로 돌리는 중이에요. 잘될거에요. 제가 해결할게요. 걱정마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안전하게 오세요"


그렇게, 펑크 아닌 펑크를 낸 연사는 도착하자마자,

나를 꼭 안아주셨다.

"작가님 때문에 살았어요. 작가님이 괜찮다고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실제로 괜찮았다. 어쩔수 없는 상황이었고, 연사는 최선을 다했고, 그와 별도로 최선의 방법을 찾는건 제작진의 몫이다. 방송작가는 방송글을 쓸 뿐 아니라, 무사하게 방송이 나가도록 하는 사람이다. 그건 내 일이었다.


방송 23년차,

라디오시사만 17년차다.

새벽부터 밤까지 안해본 시간대가 없고,

생방송에서 뭔들 안겪어본 상황이 있었으랴.


새벽 5시 생방송을 하고 있었을때였다.

새벽 5시 45분 마지막 꼭지를 연결하기로 했던

연사가 연락두절.

새벽 4시부터 발을 동동 굴려봤지만,

방법이 없었다.

전화출연키로  모교수의 사모님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었던 내용은

'D도시에서 후배와 술을 마신다고 했다.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백방으로 연락한 끝에,

그 교수의 행방을 알아냈지만,

그는 이미 인사불성. 깨워도 일어날수 없는 상황이었다.


낮이라면 일과중이라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새벽 5시 45분 방송 연결을 위해.

새벽 4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생방송 마지막 꼭지의 펑크는 대참사다.

메인아이템이자 마지막순서의 아이템.

머릿속이 하얘졌지만, 뭐라도 해야했다.

분하고 눈물이 났다.

그러나 통곡을 하더라도 방송은 틀어막

통곡을 하든지 접싯물에 빠져 죽든지...


결국 난 당시 방송 출연을 하지 않기로 유명했던

모 신문사 전문기자에게 밑도끝도 없이 전화를 걸었다.

새벽4시 반. 상대기자는 다행히 전화를 받았다.


"아 기자님. 안녕하세요. 제가 얼마나 결례고, 무례하고 경우가 없는지 압니다. 하지만, 저 좀 살려주세요"

"네?"

이러저러 해서 연사가 과음으로 연락이 되지 않고 있고,

마지막 코너인데 펑크나게 생겼다. 방송 사고다. 저 좀 살려주세요. ㅠㅜ

"대체 누구에요? 그 교수? 그런 무책임한 사람이 어딨답니까? 알겠어요. 제가 해드릴게요"

어흑.

그리하야, 관록있는 그 전문기자는 즉석이라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역시 베테랑답게 잘 정리해줬다.

펑크낸 교수는 사과는 커녕 연락조차 없었다.


방송은 청취자들과의 약속이다.

피디나 작가와의 약속이 아니다.

물론 앞에서 언급한 연사처럼

불가항력의 상황도 있다.


그러나 불성실함 때문에

혹은 겹치기 출연약속해놓고,

이쪽 저쪽 저운질하다 펑크내는 연사들.

진정성의 부재는 언젠가

청취자의 귀에

시청자의 눈에 들키기 마련이다.


방송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는 게 아니라,

반드시 이로 씹어야 한다.


모아나운서가 얼마전 내게

작가계의 송해라고 했다.

우스갯소리였지만,

내게 작가생활은 다시 시작하거나

유지하기 위해 기를 쓸 시기가 아니다.

아름답게 마무리할 때다.


그때까지 어떤 펑크, 어떤 난감한 상황에도

청취자들에게

'이' 대신 '잇몸'으로 씹는 방송을 듣도록 하진 않겠다.


당시 새벽 4시 황당한 전화를 받고도

흔쾌히 방송출연해주신 한겨레신문 조홍섭기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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