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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많은김자까 Aug 08. 2019

너는 되고, 나는 안되는 '휴가'

방송작가에게 '휴가'란?

작년 말, 저녁프로그램의 단출한 쫑파티를 하던 날.

진행자는 내게 답답하단 듯 물었다.

"김작가님은 왜 쉬질 않아요? 나랑 방송하면서 한번도 쉬는 걸 못봤어. 휴가 안가요?"


순간.

그랬나? 안쉈나? 내가?


그러고 보니, 난 어쩌다가 아니라, 작정하고 쉬지 않았다.

(2006년인가 몇달 쉬겠다며 일을 그만두고, 엄마의 환갑 가족여행을 예약했었는데,

급작히 며칠 대타를 하기로 한 프로그램에 눌러앉게 되면서 그땐 부득이 예약된 여행을 갔었던 적은 있다.)


방송을 하면서, 휴가를 간 적은 없다.

프리랜서 작가들에게 애초 유급휴가란 없다.

주급으로 입금되는 원고료는

내가 일하지 않고, 방송하지 않은 날은 정확히 계산하고 제한 뒤 입금된다.

그렇다고 그게 불합리하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원고료 몇푼 때문에, 휴가를 가지 않았다??


라디오에서 일을 시작한 건 2002년 심야방송으로부터였다.

몇차례의 개편을 거쳐 방송시간이 왔다갔다 했지만, 일찍 끝나야 0시 30분, 늦게 끝나면 새벽 1시였다.

심야생방송 4년 반동안, 서브작가없이

메인작가 혼자뿐이었다.


2003년 3월, 2호를 출산했지만.

출산하는 날까지 생방송을 했고 (누가 그러라고 시킨 건 절대 아녔다.)

출산 3주만에 현장에 복귀했다.

(프리랜서 작가에게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은 없다. 출산과 산욕기를 담당 피디가 기다려준다면, 몇달 대타작가를 세워 쉬는 것이고, 그게 아니면 프로그램에서 하차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작가는 자리 걱정에 출산 일주일만에 복귀하는 경우도 봤다. 결국 함께 일하는 피디의 이해와 배려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렇다고 이걸 뭐랄 수 없는 건, 프리랜서 작가의 빈자리는 조직이 채워주지 않는다. 피디와 작가가 만드는 프로그램에서, 작가의 긴 공백을 피디 홀로 메울수는 없다.)


아마도 둘째를 출산하고 몇년 뒤에 있었던 일인 것 같다.

남편, 애많은이피디는 우리도 휴가를 가야되지 않겠냐며, 며칠만 가면 안되겠냐고 물었다.

당시 우리팀은 피디 서너명, 작가는 그때도

나 혼자였다.

휴가를 가기 위해선, 작가인 나로선 성가신 일이 한두가지가 아녔다.

나를 대신해 휴가 몇일을 떼워 줄 대타작가도 구해야 했고,

대타작가가 있다 한들, 휴가 며칠 동안 할 수 있는 섭외는 미리하고, 원고도 미리 써야했다.

휴가 이틀보다 곱절은 피곤한 일들이 즐비했지만,

나 때문에 몇년 휴가 없이 지낸 가족들을 위해,

성가셔도 다녀와야겠단 생각을 했다.


그래서, 우리팀 피디들이 휴가 일정을 다 짠 뒤, 그 일정들을 피해.

차장이라는 피디에게 말했다.

"저 주말껴서 이틀만 휴가를 가겠습니다. 대타 작가 구해놨고, 기본적인 원고 준비해놓고, 급한 일은 휴가지에서 제가 처리할거고요"


그런데, 그 차장 피디 반응은 당혹스러웠다. 왠지 무안하기까지 했다.

"아...김작가도 휴가를 가고 싶겠지. 그런데, 김작가가 휴가가면...(내가) 불편해서...(휴가는 무슨 휴가야 작가가)"


앞서 차장피디가 팀원들에게 휴가 일정들을 잡으라고 했을 때,

나는 그 휴가 일정들 속에, 나의 몫도 있는 줄 알았다.


난 방송현장에서의 작가들의 처우를 고발하려는 게 아니다.

유독 방송국이라는 데가 그런 곳도 아니고, 그 사람이 피디여서도 아녔다.

그는 그냥 그런 인간성의 소유자였던 거다.

어떤 조직 어떤 사회에 가도, 꼭 한명씩 껴있는 그런 사람.


작가의 부재가 불편을 준다고 했던 그가,

평소 열일을 하던 사람이었다면.

그 어떤 일이든

후배피디들이나 작가를 대신해

솔선수범했던 사람이었다면.

난 그의 '나로 부재로 인한 불편함'을

'운운'이 아니라

'호소'로 이해했을 것이다.


난 그의 "아...김작가도 휴가를 가고 싶겠지. 그런데, 김작가가 휴가가면, 불편해서..."

이 말에 한마디 대꾸만으로 돌아섰다. "네"


그 후로 휴가 일정을 잡지 않았다. 거절? 거부?당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남이 다 가는 내 휴가가 누구에겐가 허락받고, 배려받아야 하는 일이었다면,

난 애초, 그에게 휴가를 가겠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후로 원칙이 생겼다. 프리랜서임을 잊지 말자. 내가 선택했다.


방송작가들에겐 직원들과 같은 신분증은 아니지만,

신청하고 몇달을 기다리면,

목에 거는 출입증이라는 게 부여된다. 그러나, 난 십년 넘게 만들지 않았다.

매일 신분증을 맡기고, 일일 출입증을 받아 방송국에 출입한다.

내 책상 위엔 칫솔과 치약, 그리고 한줌 정도의 소지품 밖에 없었다.

누구는 조직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난 그 조직도 없는 '프리랜서'임을 곱씹고 곱씹는다.

오늘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 있는

퇴직금 정산도 필요없이 맡겨둔 신분증과 출입증을 되바꿔 나가면 그만인게다.


집안에 숙모가 돌아가시고, 가까운 친인척의 부고가 저 멀리 남쪽지방에서 날라오더라도

난 방송시간, 방송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을 쪼개 움직이지 않았다.

내 잠을 쪼개서 새벽에 움직이고, 슬퍼하고 분주했지...

남의 껄 쪼개야 하는 일을 만들진 않는다.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정규직이 누릴 수 있는 것에 소외됐다면,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도 있다.

함께 일하던 후배작가 아버님이 오랜 투병끝에 돌아가셨다. 정규직들에게 허락되는 부모사망시 휴가는 일주일 정도겠지만, 난 피디와 상의해서 후배에게 두달 가까운 시간의 휴가를 줬다. 물론 유급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 임종을 지켜야 하는 시간과 더불어, 긴 병간호 끝에 혼자 남을 시골의 어머님과 한달을 보내고 오라고 했다. 돌아온 후에도 한달동안 주 4회만 출근하도록 했다. 후배가 할일은 내가 조금 더 하면 됐고, 후배 역시 출근없이 재택으로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이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정말 괜찮은 선배작가였냐면, 메인작가였냐면? 그건 아니다. 절대.

후배의 실수나 잘못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는 괴물같은 선배였다.

(프리랜서. 원하고 가능하면 겸직도 가능하고, 능력이 된다면 프로그램 몇개를 동시에 할 수도 있다. 장점도 있다.)


프리랜서. 난 지금도 역시, 정규직을 원하지 않는다.

정규직과의 차별적 요소가 있다면, 그마저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선택했으니.

정규직이 아니기 때문에 받아야 하는 차별이 있다면, 오케이.

그러나, 감정의 차별은 없어야 하지 않는가?


아...김작가도 휴가를 가고 싶겠지.
그런데, 김작가가 휴가가면, 불편해서...


여기서 그는 적어도 '불편하다'란 형용사는 생략했어야 했다.

난 후회한다. 당시 휴가 얘기를 꺼내고

저런 얘기를 들었을 때,

무안해하지 말았어야 했다. '무안'은 나의 몫이 아니었다. 그의 몫이어야 했다.


***나는 정규직을 원하지 않지만, 많은 후배들이 방송작가의 처우 개선을 위해 열심히 투쟁하고 있다. 그 역시 지지한다. 방송작가의 정규직화와 처우개선. 이런 문서빨의 단어가 아니더라도, 개편 때만 되면 뒤숭숭해지고 심란해지는 우리 후배들에게 자긍심만으로 방송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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