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많은김자까 Nov 03. 2019

누나가 가출했다!!

2녀 3남. 우리집 맏이 1호는

말그대로 범생이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치마 허릿단 한번 접어 입어본 적 없고.

입술에 틴트 한번 발라보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성을 내는 일도,

또래끼리 말다툼 한번 해본 일이 없는 아이다.

학부모 상담을 가면, 담임선생님들이 어김없이 되묻거나

되묻고 싶어하는 게 "정말, 1호 어머니 맞으세요?" (저기....선생님들....무슨 의미신지들.....ㅋ)

그러나, 그런 1호에게도 못말리는 오기가 있었으니...


재수생 1호는

초등학교부터 지금껏 밥먹고 잠자는 일 외에는,

책상 앞에만 붙어사는 아이다. 늘 그래왔다.

엉덩이가 무겁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럽지만,

제 어미, 애많은김자까를 닮아

콧바람 쐬는 드라이브는 참 좋아한다.


그리고, 지가 좋아하는 드라이브 코스가 있었으니,

00스카이웨이, 광화문, 마포대교 아래 한강둔치다.


착하고 순하다고만 알려진 1호의 오기와 똥고집은

누구도 못말린다.


1호가 고2 쯤이었을까?

저녁 밥을 먹다, 내게 한소리를 들은 1호는

밥을 먹다 말고 삐쳐선,

제 방문을 '탕' 닫고 들어갔다.

그런 걸 봐 줄 애많은김자까가 아니므로.

1호를 불러 푸닥꺼리 한판을 했다.

1호는 울고,

애많은피디는 그런 1호를 위로하고

뭐 그런 흔하디 흔한 상황??


나역시 약이 오를대로 올라,

"어이 영감"(애많은김자까가 애많은이피디를 즐겨 부르는 호칭은 '앵감'또는 '영감'이다)

-응?

"나가자. 짜증나"

그리하여, 1호를 쥐잡듯 잡고 뿔이 난 애많은김자까와,

괜시리 눈치만 보던 애많은이피디는

드라이브마실을 나갔다.

시간은 밤 10시 즈음.

그런데 얼마 후 2호에게서 전화가 왔다.


"왜?"

- 엄마, 누나랑 같이 나가셨어요?

"미쳤어? 내가 왜? 뭐가 이쁘다고?!!!!"

2호는 금방이라도 울 것 처럼

- 누나가 없어졌어요. 휴대폰도 안가져 나갔고. 지갑도 그대로 있어요. 작은 책가방 하나만 가져간 거 같아요


사색이 된 남편이, 전화를 가로챘다.

"2호야. 3호랑 얼른 나가서 누나 좀 찾아봐"

- 네


나는 애많은이피디가 그렇게 당황한 모습은 처음봤다.

딸의 가출이 처음이기도 하거니와, 1호가 어떤 아인가?

쑥맥에 범생이가 밤 열시에 가출이라니.

놀랄만도 했고,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녔지만, 오버는!!!

난 상대적으로 덤덤했다. 애많은김자까는 내새끼 1호가 어떤 앤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안절부절하던 남편에게 나는

"호떡 집에 불났어?"

남편은 울먹이며

"아까 1호가 뭐랬는지 알아? 자기가 살아서 뭐하냐고 그랬다구"

"장난해? 나도 그맘때, 그런 소리 입에 달고 살았거든."

"아니야. 우리 1호는 그럴 애가 아니잖아"

"ㅉㅉㅉㅉㅉㅉㅉ 지 새끼를 그렇게 모르세요오?"


2호는 온동네를 쥐잡듯 뒤져가며, 누나를 찾아 헤맸다.

꼭대기에 있는 우리 집에서, 저 아래 성당까지.

당시는 삼복더위가 한창이었던 8월이었다.

30분쯤 지났을까 2호가 다시 전화를 했다

"엄마, 누나가 없어요. 아무리 찾아도"

남편은 "그래도 더 찾아봐"


차로 먼 마실을 나갔던 우리도 이내 동네로 돌아왔다.

남편은 여전히 안절부절했고, 난 역시나 덤덤했다.

남편은 꼭대기의 우리집 방향으로 가기 위해 오른쪽 깜박이를 켰다.


"좌회전 해!"

"우리도 가서 찾아봐야지"

"2,3호가 집 앞은 다 뒤져봤고, 지금도 뒤지고 있다며?

근데 그쪽으로 뭐하러 가? 니 딸을 그렇게 모르냐고?"


1호는 겁이 많은 아이다.

내가 판단하기론, 1호는 4차선 대로변을 벗어나

홀로 밤길을 거닐 아이가 아녔다.

그리고, 가출이라기 보다 가출을 가장한 마실.

바람을 쐬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1호의 가출동선은

00스카이웨이, 광화문, 마포대교 아래 한강둔치다.

그러나 이 오밤중에 00스카이웨이를 혼자 거닐 용감무쌍1호가 아녔고,

지갑 없었으니, 광화문이나 마포대교로 가는 길도 요원하지 않았을 게다.


좌회전을 하자는 내게, 남편은 울듯이

"그럼 어디로?"

"좌회전 하라고. 00스카이웨이 가는 길목, 대로변에 있을 거라고"

남편은 미덥잖다는 표정이었지만,

일단 내가 시키는대로는 했다.

그리고, 채 2킬로미터를 못가서

00스카이웨이로 가는 길목 대로변 버스정류소 앞에서

1호를 발견했다.

1호는 밤 11시 버스정류소 벤치에 앉아

가로등불에 의지해 수학문제집을 풀고있었다 ㅉㅉㅉㅉㅉ

남편은 냉큼 내려, 1호를 차에 태웠다.

그리고, 물었다.

"1호야. 바람쐬러 갈까? 어디로 갈까?"

1호는 "00스카이웨이로 해서, 광화문"

남편은 나를 쳐다봤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마주봐 줬다. '거봐라 인간아'

광화문에 도착해, 잠시 창을 내리고 광장을 바라보던 부녀는

또 역시 뻔한 질의응답을 주고받았다.

"1호야. 또 가고 싶은데 있어?"

"응. 한강. 마포대교 아래...."

애많은 이피디는 나를 쳐다봤다.

그는 이미 눈빛으로 그의 패배를 인정했다.


그렇게, 마포대교 아래 주차장에 도착해서.

1호는 한강 야경을 보러,

남편은 혹시나 1호가 한강을 보다 나쁜 생각을 할까봐서,

홀라당 1호를 따라 내렸다.

'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 저렇게 지딸을 모를까'


차에서 기다리던 나는 울엄마김여사에게 전화를 했다.

김여사 이하, 2,3,4,5호도 목이 빠져라 집나간 1호를 걱정하며 이제나저제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을 테니.


나는 울엄마김여사에게

'여차저차해서 1호를 찾았고.

지금은 한강에 바람쐬러 왔어.

엄마의 사위는,

자기딸 한강에 빠져죽을까봐 겁나서 쪼르르 따라내렸구.

아마도 저 뻔뻔한 1호는. 치킨(1호의 최애 간식)까지 사달라고 할꺼다....'까지.

보고를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한강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애많은이피디는 "1호야, 아까 저녁도 제대로 못먹었잖아. 배 안고파? 뭐 사줄까?"

"응. 치킨"

그렇게 치킨까지 사들고, 집에 도착했는데,

손녀와 누나를 찾았다는 안도의 분위기보다,

압도적인 살벌한 분위기가 집안 가득했다.

울엄마김여사는 빡친 모습이었고,

3호는 제 방에 들어가 찌그러져 있었다.


내가 2호에게 왜냐는 눈빛을 보내니, 2호는 3호의 방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부록 사건은 이랬다.

울엄마김여사는 나와 통화를 마치고.

한강에서 전화한 애많은김자까와의 통화내용을

2,3,4,5호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다행히 누나를 찾았고. 지금은 한강에 있노라고.

모두 안도했는데,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3호만 유독 눈물을 똑똑 흘리더라는 거다.

2호는 "3호야. 괜찮아. 누나 찾았다잖아. 누나 무사하대"

울엄마 김여사도 대견한 마음에

"아빠가 누나 옆에 딱 붙어있대. 걱정마"


이쯤하면 다들,

'누나가 오죽했으면 한강까지 갔을까? 가슴을 쓸어내리며 3호는 형제애를 발휘하며,

안도의 눈물을 흘렸겠지'

라고 생각했겠지만. 우리 3호는 그런 아이가 아니다.


3호 "나도 한강가고 싶었는데, 한강가서 라면먹고 싶었는데. ㅠㅜㅠㅜ"


그날 밤. 3호는 한강라면 대신,

가족들에게 배터지게 욕을 먹었단 사실~~~~


이상, 2녀 3남 다자녀 가족의

울기도 웃기도 뭣한

1호의 가출기였습니다. ^^


1호는 그 후로 고3때, 또 한차례 가출을 감행했으나

그때는 8차선 도로변 버스정류장에서 국어문제집을 풀다 검거됐습니다.


이전 16화 영어가 58점이지만, 학원엔 보내지 않겠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