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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많은김자까 Oct 27. 2019

'엄마'가 두 번째면 잘할 줄 알았다

2호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입학식에 가보니, 외동이거나 첫아이 학무보가 대다수였다.

상대적으로 난 여유가 있었을 밖에. 아니 거만에 가까웠다.

이래 봬도 난, 1학년 엄마가 두 번째니깐.


입학식이 끝나고, 교실에서 학부모와 담임선생님과의 짧은 만남의 시간이 이어졌다.

당시, 2호의 담임선생님은

정년을 2-3년 앞둔 여선생님이셨다.


아이가 일 학년이면, 엄마빠도 일 학년 이랬던가.

학부모가 처음인 엄마빠들은

담임선생님의 숨소리마저 받아 적을 기세였지만,

난 팔짱을 끼고 고개는 쳐들고, 눈은 내리깐 채 바라만 봤다.

왜? 난 '1학년 엄마'가 두 번째이므로.


선생님의 말씀은 1호의 일 학년 때 주의사항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얼추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고, 주섬주섬 일어나려는데.

선생님은 마지막 간곡한 당부 말씀이 있다고 하셨다.


"혹시라도 아이가 집에 가서 학교일을 전달했는데,

아이가 전한 상황이 서운하거나 화가 나신다면,

담임인 저에게 꼭 한번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부모라면, 아이들 말을 전적으로 믿어줘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아이들은 1학년, 아직 상황 전달에 서툴다는 점은 기억하고 인정해주셨으면 합니다."


듣는 둥, 마는 둥. "옙"하고 일어나 나왔다.

그러고 나서 2주일이나 지났을까?


1학년 땐, 학교에 가져가얄 할 준비물이 많다.

알림장에 적어오거나

가정통신문으로 알려주시는데,

이런게 자격지심이다. 혹여 준비물 하나라도 빠지면, 하루라도 늦으면.

'워킹맘에, 다자녀맘(그땐 셋이었다)이라 그렇다고 하겠지?'


그래서, 악착같이 준비물을 챙겨보냈다. 완벽하게.

그런데, 어느날 2호가 집에 와서 말하기를

"엄마, 선생님께서 준비물을 안챙겨 온게 있다고, 가져오래"

"??????안가져간 게 뭔데?"

"몰라. 그건 안가르쳐 주셨는데, 선생님께서 나더러 정신을 어따 두고 다니냐고 하셨어"

부화가 확 치밀어 올랐다.

안챙겨 보낸 준비물도 없거니와,

안챙겼다 한들, 그게 뭔지 다시 적어주시던가?

애한테 정신을 어따 두고 다니냐고 한 건,

결국 나한테 한 얘기나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했다.


난, 포스트잇 한장을 신경질적으로 확 떼서.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2호 엄맙니다.

저는 빠짐없이 챙긴다고 챙겼는데,

아이에게 전해들으니 안가져간 준비물이 있다고요?

안가져간 준비물이 어떤 건지, 알려주시면 당장 준비해 보내겠습니다.'


사실 정확한 메모 글귀가 다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분명한 건, 아이의 알림장에 붙여보낸 포스트잇은

밤송이 선인장 한덩어리마냥 뾰족뾰족했었던 같다.


그리고, 당장 그날 아침, 출근길에 휴대전화가 울렸다

2호의 담임선생님이셨다.

난 목소리를 지하5층쯤으로 내리깔고,

스타카토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욧??!!"

"2호 어머님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전 2호 담임선생님입니다."

"아. 네.(알고 있었으면서 짐짓 몰랐다는 듯이) 선생님."

"어머니, 알림장에 붙여주신 메모 봤습니다"

"네!!"

"아이고 어머니. 그런데, 그게 아니고요."


상황은 이랬다. 선생님께선 종례 시간에, 준비물을 미처 다 준비하지 못한 아이들을 한명씩 호명해서,

일러주고 계셨다. 뭐를 더 가져와야 하는지.

그때, 친구랑 장난을 치는데 여념이 없었던 2호는

제 이름과 끝자만 다른 이름을 호명하는데,

전줄 알고, 냉큼 뛰어나갔던 게다.

선생님께선

"너 말구...OO이. 정신을 어따 두고 다니는 거야. 욘석!! 들어가"


이게 사건의 전말이었다.

진심 쥐구멍을 찾고 싶었다.

지하 5층으로 내려갔던 목소리는

금세 지상 20층으로 기어올라와서

"아~~네네~~~녀석이 정신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선생니임~~~~"


엄마가 두번째면 잘할 줄 알았다. ㅠㅜ


엄마가 다섯번째는 저는,

이젠 더이상 그런 실수를 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내 아이의 말만 믿고 싶은' 유혹은 언제나

저의 이성을 시험에 들게 합니다.


비단 초등학교 1학년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은 불리한 상황에서, (어른들도)

늘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얘기한다는 걸

종종 잊어버리곤 합니다. (반성반성반성)


간혹 학부모 반모임을 가면,

전적으로 내 아이의 말만 믿어버리고,

상대를 매도하는 엄마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우리 애가 그럴리 없어. 니네 애가 잘못 했겠지. 선생님이 잘못했겠지"

사실로 드러나도

"우리애가 그런 건 니네탓이에요"


몇년 전, 여선생님들의 치맛속을 촬영한 중학생 녀석들이

발각됐는데,

처음엔 내 새끼가 그럴리 없다고 도리질을 치던 엄마가

빼도박도 못하는 증거 앞에선

"그러길레 남중 여교사가 왜 치마를 입고 다녀요? 다니길!!"


내 아이의 '편'만 들다 보면,

결국 내 아이의 편은

못난 '나'밖에 남지 않음을 곱씹고 곱씹으며,

적어도 내탓을 남탓으로 가르치는 못난 엄마는

되지 않으리라 오늘도 다짐하고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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