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여행

-빛이 머문 순간들

by 푸른 오리


기차를 탔다 햇살 강한 왼쪽 창가다 햇살을 피하려 했지만 앉으면 늘 그곳, 나무들은 지치지 않고 내 앞으로 와와 달려오지만 그것들을 품지 못한다 산이 입은 옷은 이미 낡았고 추수를 마친 들판은 반듯하게 누워 있다 제 할 일을 마친 인간처럼


얼마 전 스위스를 다녀온 친구가 그곳이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났다고, 어떤 아름다운 곳이라도 몸담을 수 없다면 풍경일 뿐, 낮은 산, 낯익은 나무들, 들판, 억새들, 그것들이 우리인 걸


기차는 어느새 방향이 바뀌어 그늘이다 제자리에 머물며 해를 감상할 것, 선로 위를 달리는 기차가 멈출 때까지 옆 좌석에서 풍겨오는 커피 향, 마실 때보다 더 고혹적이다 삶은 늘 유혹이거나 집착이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가을에 썼던 글... 어느 해였는지 그저 가물가물할 뿐이다. 더운 여름에 서늘한 가을의 기운을 느껴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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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uadratmedia,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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