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의 눈

-빛이 머문 순간들

by 푸른 오리

태풍의 눈


-나는 인생의 고통이 기쁨을 뛰어넘어, 더 이상 기쁨 따위가 없는 지점에까지 도달하고 말았다*


우연히 「독수리와 소녀」라는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다


초원에서 한 어린아이가 고꾸라질 듯 주저앉아 힘들게 숨을 쉬고 있다 그의 몸은 숫제 타다 남은 검정 숯덩어리 같다 아이 등 뒤에는 커다란 독수리가 깃을 접고 날카로운 부리를 쳐들고 서있다 무언가를 기다리면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직전, 죽음보다 더한 고요가 시간을 삼켰다 어둠의 방에 풍경이 흔들리며 새겨질 때 그는 태풍의 눈이었다


빛과 그림자로 어룽진 그 앵글, 깊고 어두운 구멍이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사진작가인 케빈 카터의 유서 중 일부 내용




케빈 카터가 찍은 사진 <독수리와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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