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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Oct 30. 2024

그러라 그래/양희은 에세이/김영사

  외로울 땐 독서



 예전에는 문학적인 에세이가 좋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사람 냄새나는 진솔한 체험이 녹아있는 이야기들이 좋아진다.


 도서관 서가에서 우연히 만난 책.

 가수 양희은의 에세이 『그러라 그래』

 책 제목이 심드렁해서 슬며시 웃으며 펼쳐봤다.



 어릴 때부터 감염? 전염? 혹은 감정이입이라 해야 하나······아무튼 신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상대방으로부터 무언가 옮는 일이 많았다. 두드러기 난 친구를 보면 갑자기 스멀거리고 가려워지면서 두드러기가 났다. 누가 넘어져서 피가 흐르거나 상처가 깊은 것을 보면 영락없이 그 자리가 욱신거리며 못 견뎠다.
 그러니까 슬프고, 죽고 아프고, 헤어지고, 저주하고, 서슬이 퍼런 이야기는 아예 보지도 않고 고개를 돌린다. 찐한 이야기일수록 잔상이 길고 헤어나려면 며칠 허우적거려야 된다. 그러니 로맨틱 코메디, 만화, 해피엔딩인 작품을 찾게 된다. (152~153쪽)


 양희은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녀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타인의 아픔에 과도하게(?) 공감하는 면이 있어서 힘들 때가 많았다. 이런 감정이입도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헐렁해지기는 했지만.

 나와 비슷한 성향을 지닌 듯한 그녀의 이야기에 무척 공감했다. 그래서인지 친한 언니랑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가끔 사람들과 직접 대면해서 얘기를 할 때도 공허한 순간들이 있지 않았던가. 직접 대면이든 아니든 중요한 건 ‘마음의 대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따스한 이의 글에는 온기가 배어 있다. 그래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녀의 체온이 내게 살포시 전해지는 듯했다.

 그녀가 키우던 고양이, 강아지 이야기, 가까운 이들에게 밥을 해 먹이는 넉넉한 인심, 인기 가수이지만 집안에서는 보통 가정주부와 다를 게 없는 일상, 그리고 부지런히 사는 삶의 모습 등등.


 결혼하고 변함없이 늘 같은 일상, 즉 장을 봐서 재료를 다듬고 준비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 때, 그리고 남편이 그 음식을 맛있게 먹어줄 때만큼 행복한 일도 없다. 장을 본 후, 몇 가지 반찬을 만들고 남편과 식탁에 앉으면 그렇게나 마음이 편안하고 그제야 사람답게 사는 것 같다.(229쪽)


 그녀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런 이야기들이 참 따뜻했다. 무엇보다도 그 따스함이 좋았다. 추워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내게, 그녀가 직접 짠 포근한 스웨터를 내 어깨에 걸쳐주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 가을에 따듯한 책을 만나서 행복했다.

살아가면서 행복한 일은 마음이 따스한 이와 마주하는 일이다. 그것이 어쩌면 삶에서 가장 소중한 일이 아닐까.

 별 기대 없이 가볍게 읽으려고 잡은 책이었는데, 생각지 않은 기쁨을 남겨주었다.

 말 그대로 Serendip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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