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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산> 중간 후기

‘열’의 의미를 중심으로

by 올가의 다락방

토마스 만의 장편소설 <마의 산>은 요양원 ‘베르크호프’에 머무는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가 다양한 인물들과의 만남과 병리적 체험을 통해 삶과 죽음, 육체와 정신의 문제를 사유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흔히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이르는 유럽 문명 세계의 정신적 총체”라고 평가된다.


베르크호프에 도착한 뒤 줄곧 열병에 시달리던 한스 카스토르프는, 인문학자 세템브리니와 의학자 베렌스와의 대화를 거쳐 의학, 생리학 저서를 탐독하면서 “생명은 곧 열”이라는 깨달음에 도달한다. <마의 산>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가 바로 이 ‘열’이다. 이는 근대 유럽 사상 속에 드리워진 삶과 죽음, 정신과 육체의 이분법을 넘어설 수 있는 인간의 내적 동력을 상징한다. 세템브리니가 보여주듯, 근대 유럽은 중세와 단절을 선언했지만 여전히 기독교적 목적론(선형적 시간관)과 이분법(영과 육, 성과 속, 삶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모순을 품고 있었다.


열은 병리적 증상이면서도 동시에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양가적 의미를 지닌다. 분자적 수준에서 열은 단백질의 해체와 갱신이 교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데, 이는 곧 죽음과 삶을 매개하는 현상이다. 또한 열은 생명 활동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상으로, 물성을 가지지도 않고 의식적 행위도 아니다. 토마스 만이 열을 “물질도 정신도 아닌 그 사이”에 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열은 생명체가 죽음과 삶, 정신과 물질이라는 대립항 사이에서 진자 운동을 하며 내적 균형을 찾으려 할 때 드러나는 징후라 할 수 있다. 열을 의식한다는 것은 곧 스스로의 모순을 자각하는 일이다.


베르크호프는 이런 ‘열’을 의식하기 좋은 공간이다. 평지에서 내재되어 있던 열병은 산 위에서는 병리적으로 외화되며, 사람들은 매일 체온을 재면서 자신의 열을 확인한다. 카스토르프 역시 이곳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열을 의식하게 되지만, 다른 환자들과 달리 그 의미를 좇는다. 바로 이 점에서 <마의 산>은 카스토르프가 열병을 통해 근대 유럽과 인간이 지닌 내적 모순을 이해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카스토르프가 의학과 생리학 책을 읽을 때 자주 가수면 상태에 빠진다는 점이다. 열병이 몸의 균형을 찾으려는 과정이라면, 가수면은 삶과 죽음,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오가는 몸의 균형 추구라고 할 수 있다. 토마스 만은 이 과정을 강조하며, 카스토르프가 육체적 체험을 통해 죽음을 삶 속에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세템브리니와의 대비는 중요한 장면이다. 세템브리니는 인문주의를 자처하면서도 기독교적 금욕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죽음과 삶의 통합을 설파하면서도 정작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는 병을 사회라는 유기체에서 도려내야 할 방종으로 규정하지만, 카스토르프는 생물학적 사유를 통해 이를 넘어선다. 열을 생명의 본질로 파악함으로써 병리적 징후를 오히려 깨달음의 계기로 전환시킨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깊은 위로를 받았다. 병은 단순한 타락이나 방종이 아니라, 인간이 영과 육, 삶과 죽음의 중간지대에서 자기 본질에 다가서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 토마스 만은 <마의 산>을 통해 병든 존재인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고, 나는 거기서 커다란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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