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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봉사를 해보고 싶어!

by 차차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운명의 대상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2014년 2월, 나는 서울에 있는 한 사립 고등학교에 사서교사로 임용되었다. 합격 후 학교에 출근하여 전임자 선생님께 인수인계를 받던 중, ‘시각장애인을 위한 봉사활동’에 관해 듣게 되었다. 도서관 동아리 아이들에게 점자도서관 타이핑 봉사를 시켜보고 싶었는데 못 해봐서 아쉽다고, 나에게 한번 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권유를 하셨던 것이다.


학교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는 점자도서관에 전화를 걸어 알아보니 '점자·전자도서 제작을 위한 도서입력 봉사'를 하려면 사전에 도서관에 방문하여 도서 입력규칙 교육을 받아야 했다. 동아리가 편성되고 얼마 후 나는 동아리 아이들을 인솔하여 봉사활동 교육을 받으러 갔다.

그때 우연히 ‘낭독봉사’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시각장애인들이 책을 귀로 들을 수 있도록 녹음하는 봉사활동이라니. 무척 의미 있고 재밌을 것 같았다.

‘나도 언젠가 한번 해보고 싶다.’




바쁜 생활이 이어지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흘러 흘러 2019년이 되었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한창 논문을 쓰기 위해 준비하던 때이다. 뭔가 진행은 지지부진한데 문득문득 논문을 다 쓰면 해보고 싶은 일이 하나둘 떠올랐다. 논문만 빼면 진심 뭐든 하고 싶었다. 그때 내 마음 한 편에 잠자고 있던 '낭독봉사'가 다시 생각나는 게 아닌가. 이번엔 진짜로 도전해보고 싶었다.


인터넷으로 시각장애인복지관을 검색해 보았다. 집에서의 거리와 모집 시기 등을 고려하여 마침내 적당한 곳을 찾았다. 당장 봉사가 가능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봉사 진행까지 대기시간이 상당히 길어질 것으로 예상되오니, 참고 바랍니다!!’라는 문구를 보고 일단 신청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논문 제출이 끝난 후 복지관에서 연락이 왔다.

신청한 지 5개월이 지나서야 나는 낭독봉사를 위한 첫 봉사자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낭독봉사 참여 과정은 이렇다.

낭독봉사자 선정 → 성인 자원봉사자 기본교육 참석(낭독테스트 실시 후 통과) → 도서낭독 규칙 교육 참석 → 낭독봉사자로 활동


성인 자원봉사자 기본교육은 시각장애 이해 및 시각장애 체험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시각장애의 정의와 유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장애의 80% 이상이 후천적으로 생긴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직접 안대를 쓰고 시각장애를 체험하며 짧게나마 앞이 안 보이는 상황을 경험해 보았다.


옆 사람에게 의지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복지관 건물을 나와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가기까지, 얼마 안 되는 거리인데도 매우 조심스러웠다. 멀리서 나는 차 소리도 왠지 가깝게 느껴져 무섭기도 하고,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혹시라도 넘어질까 봐 엄청 조심하게 됐다. 평지가 나타나면 조금 괜찮아졌지만, 지나가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면 혹여나 부딪치진 않을까 불안해졌다.

그래도 그때마다 옆에서 팔을 내어주고, 나보다 조금 앞서 걸으며 말을 해주는 이가 있어 힘이 되었다.

잠깐의 시간 동안 같이 걸은 파트너처럼 든든하고 위로가 되는 봉사자가 되고 싶어졌다.




낭독테스트를 통과하고, 성우가 진행하는 도서낭독 규칙 교육을 받고, 8회의 연습낭독을 무사히 끝내면 실제로 시각장애인들에게 전달될 책을 배정받아 녹음할 수 있다. 몇 개월 동안 필요한 과정을 모두 마치고, 드디어 녹음도서를 배정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되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그 무렵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쳤다. 녹음 스튜디오가 있는 복지관도 문을 닫았고, 학교에도 한동안 아이들이 오기 어려워졌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조심스러운 일상이 오래도록 이어졌다.


내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며 기뻐하던 것도 잠시, 제대로 시작도 해보기 전에 나의 ‘낭독봉사’는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렸다.

운명적인 만남은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 낭독하는 사서교사가 추천하는 책

문선희 외 『낭독을 시작합니다』

낭독전문가이자 20년 이상 경력의 베테랑 성우 7명이 함께 쓴 낭독안내서이다. 목소리에 관심이 있고, 소리 내어 읽기를 잘하고 싶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낭독생각과 노하우를 담았다. 중간중간 목소리를 담은 QR코드를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특히 낭독을 처음 시작하는 이라면 눈으로만 보지 말고 귀로도 듣고, 직접 소리 내어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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