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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꿈틀대다

by 차차

나는 낭독하는 사서교사이다.


학창 시절에 방송반을 해본 적도 없고, 전문 성우도 아니지만 내가 녹음한 오디오북을 몇 차례 세상에 내놓았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종종 사람들에게 낭독을 들려주며, 직접 낭독회를 기획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낭독의 매력을 전파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처음부터 내 목소리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거나 낭독에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린 시절에 나는 내 목소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목소리가 낮고, 남자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소리가 불안정해서 목을 많이 쓰거나 잘못 쓰면 금세 쉬기도 했다.

또, 초등학교 때 놀다가 앞니 세 대가 부러지는 바람에 초5 겨울방학부터 중2 가을까지 3년간 치아교정을 했다. 교정장치 때문에 치아를 환하게 드러내길 꺼렸고, 정확하게 발음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웅얼웅얼 말한다고 아빠한테 혼이 났던 기억도 있다.


그럼에도 내 안에는 한 번씩 목소리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꿈틀대곤 했다.




#1. 초등학교 6학년 | 애향단장과 동네방송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나는 일요일 아침이 되면 동네 이장님을 찾아갔다. 그 이유는 마을회관에 가서 방송을 하기 위해서다. 마을회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이장님이 방송장비를 켜주시면 곧 스피커를 통해 내 목소리가 퍼져나갔다.


청안 1리에 사는 점동초등학교 4,5,6학년 학생들은 지금 즉시 청소도구를 가지고 OOO 앞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방송이 끝나면 고학년 친구들과 면사무소 근처에 모여 동네청소를 했다. 학년이 낮을 때는 언니오빠들에게 의지하며 참여했었는데 6학년이 되어 애향단장이 되자 직접 방송도 하고, 주도적으로 활동을 이끌어가게 되었다. 그중 마이크 앞에 앉는 일은 참 설레면서도 뿌듯한 경험이었다.




#2. 대학교 1학년 | 내 목소리를 인정해 준 고마운 친구


대학교 새내기 시절, 사범대 소모임을 같이 하던 영어교육과 친구가 대화를 나누던 중 문득 나에게 말했다.

선혜야, 네 목소리 되게 예쁜 것 같아.


스스로 내 목소리를 좋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조금 의아했다. 하지만 내심 기분은 좋았다. 내 목소리를 인정해 준 고마운 친구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내 목소리가 그렇게 나쁘진 않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기억은 잊히지 않고 생생하게 남아있다.




#3. 대학교 2학년 | 공동체라디오 제작과정


나에게는 두 가지 꿈이 있었다. 하나는 교사, 또 하나는 라디오 PD이다. 대학은 사범대로 진학했지만, 매일 밤 라디오를 들으며 잠들었다.

대학교 2학년 가을, 캠퍼스를 거닐다가 게시판에 붙어있는 어느 포스터 앞에 멈춰 섰다. 라디오 제작의 전반적인 과정을 배울 수 있다니! 중1 때부터 라디오를 좋아하던 나였기에 그 수업을 꼭 듣고 싶었다. 그리고 진짜로 마포FM이라는 곳에서 '공동체라디오 제작과정'을 배우게 되었다.


한 번은 KBS 안소연 성우님이 오셔서 라디오 진행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돌아가면서 라디오 멘트도 직접 읽어보았는데 내 순서가 끝나자 성우님께서 나에게 칭찬을 해주시는 게 아닌가? 얼마나 신이 나던지!

그 후로 내 목소리로 수료작품을 녹음하고, 마포FM에서 자원활동을 하며 코너 하나를 맡아 대본도 쓰고, 게스트로도 참여했다. 녹음한 파일이 홈페이지에 올라오면 반가운 마음으로 재생버튼을 누르곤 했다. 신기하기도 하고, 내 목소리를 듣는 게 좋아서 몇 번을 반복해서 들었는지 모른다.




목소리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그렇게 조금씩 자라났다.

하지만 내가 봐도 ‘방송인’이 될 재목은 아니었고, 꼭 돈을 버는 일이 아니더라도 목소리로 할 수 있는 활동에 뭐가 있는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저 우연히 찾아온 기회와 마음이 이끄는 대로 움직일 뿐.

그 후로 노래를 녹음하는 특별한 경험도 해보고, 평화방송 라디오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해 사연을 읽어주기도 했다. 교사가 된 후에는 뮤지컬 동호회에서 활동하며 노래를 배우고, 몇 번의 공연을 올렸다. 또, 합창과 아카펠라의 매력에 빠져 몰입했던 시간도 있다.

처음엔 우연처럼 다가왔던 일이 점점 꼬리에 꼬리를 물듯 이어졌다. 돌이켜보니 나는 목소리로 할 수 있는 활동을 계속 맴돌고 있었다.


어쩌면 운명적인 만남이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찾아오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운명의 대상이 있을 만한 곳을 끊임없이 맴돌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만나게 되는 게 아닐까?




▼ 낭독하는 사서교사가 추천하는 책

이상협 『내 목소리를 좋아하게 됐다고 말해줄래』

1인 가구 시대에 혼밥, 혼술처럼 혼자 할 수 있는 ‘혼낭(1인 낭독)’의 세계로 인도하는 책이다. KBS 이상협 아나운서의 진지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매력이 돋보인다. 하루에 하나씩 해보는 데이미션과 낭독일기, Q&A로 구성되어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나가다가 한 번씩 목소리를 꺼내 보자! 조금씩 자신의 목소리와 친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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