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오디오북 『안녕들 하신가』 출시기
1인 출판사를 운영하시는 동기선생님의 제안으로 낭독동기들과 함께 여행에세이를 녹음하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북 내레이터 데뷔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역시 동기를 잘 만나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무르익을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리고,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했다.
심화 2반에서는 우리가 녹음할 책(송세진 『안녕들 하신가』)이 교재로 선정되었다.
이 책으로 3개월간 지도성우님의 특훈을 받았다. 처음에는 책의 순서를 따라가면서 같은 텍스트를 가지고 여러 명이 돌아가면서 낭독을 했다. 진도가 조금 더 나간 후에는 낭독순서와 파트를 배정받고, 각자 녹음할 파트 위주로 코칭을 받았다.
나는 오디오북의 시작을 여는 첫 번째 순서를 맡았다. 청자의 귀를 사로잡아야 하는 막중한 역할이 주어진 것이다.
훈련의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일단, 책이 어렵지 않고 술술 잘 읽혀서 말하듯이 자연스럽게 낭독하기 좋았다.
하지만, 곧 슬럼프가 다가왔다. 다들 일취월장하고 있는데 나만 제자리에 멈춰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술술 읽다 못해 어느 순간 패턴화된 낭독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1. 이어폰이 문제였다.
마이크를 산 후 커널형 이어폰을 양쪽에 끼고 수업에 참여했더니 소리를 내는 것이 너무 조심스러워졌다.
2. 텍스트의 내용에 제대로 몰입하지 못했다.
이 무렵 책을 말하듯이, 너무 느리지 않게 술술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텍스트의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그리다 보면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느낌인데 내용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빨리 읽는데만 급급했던 것 같다. 컴퓨터 화면을 통해 나에게 집중되는 시선으로부터 얼른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리라.
첫 번째 문제는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거나 끼더라도 한쪽만 끼는 것으로 해결이 되었다.
두 번째 문제는 전문가반에서 『말의 시나리오』라는 책을 만나 감을 잡기 시작했다. 공감되는 부분이 많고, 몰입이 잘 되다 보니 낭독하면서 텍스트를 충분히 보고,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상상하면서 읽는데 도움이 되었다.
심화 2반이 끝나고, 전문가반과 개인연습의 시간을 거쳐 녹음을 하게 되었다. (오디오북을 녹음하기로 결정하고, 8개월 정도 되었을 때이다.)
한 권의 책을 7명의 내레이터가 함께 녹음하기 때문에 비슷한 결을 유지하기 위해 미리 본문과 꿀팁 부분을 녹음해서 톡방에 공유했다. 본문은 작가의 정서를 잘 살려서 낭독하도록 하고, 꿀팁은 정보성 글이므로 내용 전달에 좀 더 신경 쓰기로 했다.
수업 중에 성우님께서 강조하셨던 것을 상기시키기도 하고, 혼자 읽어보기도 하며 녹음날을 맞이했다.
2023년 1월 9일, 1시가 조금 안 되어 홍대 근처 오디오북 전문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기분 좋은 떨림이 내 안을 감돌았다. 그러나 왠지 목이 자꾸 마르는 느낌이다.
부스 안에는 RODE 콘덴서 마이크가 나를 반겨주었고, 밖에는 스튜디오 대표님과 출판사 대표님이 앉아계셨다. 낯선 공간이지만 매주 줌에서 얼굴을 보고, 함께 낭독을 했던 윤희대표님이 계셔서 마음이 놓였다.
녹음할 때는 한 가지에만 집중했다. 책의 내용을 머릿속으로 잘 떠올리며 낭독하기!
잘 나가다가 중간에 한 번씩 걸리면 마음이 살짝 쪼그라들기도 했지만, 다시 내용에 집중하며 낭독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약 2시간 만에 부스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북 내레이터들은 보통 홈레코딩으로 오디오북 녹음과 편집을 하는 경우가 많아 스튜디오에 가는 일이 흔치 않다. 그래서 더욱 스튜디오에서의 첫 녹음 경험이 소중하고 특별하게 느껴졌다.
2월 28일! 드디어 우리가 녹음한 오디오북이 세상에 나왔다.
네이버 오디오 클립을 시작으로 밀리의 서재, 윌라, 오디언 등에 업로드되었다.
미리듣기를 클릭하면 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너무 신기하다. 내가 진짜로 오디오북 내레이터가 되다니!
앞서 홈레코딩으로 작업한 오디오북은 출시 전이었던 터라 『안녕들 하신가』 오디오북이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실감이 났다. 함께 작업한 동기선생님들과 기쁨을 나누고, 우리를 북 내레이터로 키워주신 서혜정낭독연구소 성우님과 가족들에게도 소식을 전했다. 출간의 과정과 결과를 함께 나눌 수 있는 낭독친구들이 있어 더욱 기쁘고 감사했다. 더불어 앞으로 좋은 책의 가치를 소리로 잘 전해야겠다는 책임감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놀랍다. 전문성우도 아닌 우리에게 오디오북을 녹음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출판사 대표님의 선택이. 하지만, 이것만큼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목소리나 기술이 아닌 책의 내용만이 밝게 빛나도록 진심을 다했다는 것이다. 규모는 작지만 늘 진심을 담아 책을 만드는 '오늘산책'의 책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응원하니까!
어쩌면 북 내레이터로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녹음하는 책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저자의 생각과 마음을 청자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는 것. 그래서 책으로부터 멀어진 사람들을 다시 책의 곁으로 오도록 돕는 것!
그것이 사서교사로서, 낭독가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낭독하는 마음'을 오래도록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 낭독하는 사서교사가 추천하는 책
이진숙 외 『오디오북과 낭독』
낭독은 결국 말이다. 오디오북은 화자의 말을 내레이터의 입을 통해서 청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 책은 화자와 청자의 관계, 텍스트 분석하는 법, 장르별로 신경 써야 할 점 등 오디오북 낭독의 핵심을 잘 담고 있다. 북 내레이터를 꿈꾸거나 활동을 시작한 분들이라면, 옆에 두고 반복해서 읽으며 지침서로 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