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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낭독을 좋아해 보기로 했다

100일 낭독이 내게 준 선물

by 차차

2023년, 첫 오디오북을 출시한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목표를 달성한 뒤 나를 계속 움직일 만한 동력은 보이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현생이 너무 버거웠다.

많은 사람에게 좋은 책을 전하고자 시작했던 오디오북 녹음은 어느 순간 나에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또 작업을 이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오히려 독이 되어 마이크 앞에 앉는 것조차 두려워졌다.


그렇게 나는 낭독과 점점 멀어져 갔다.




연말이 다가올 즈음 나는 몹시 지쳐있었다.

방학을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다가올 새 학기를 생각하면 숨이 막혔다.

고심 끝에 다음 학기는 자율연수휴직을 하기로 결정했다.

나 자신에게 휴식을 주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무렵, 신기하게도 다시 낭독이 떠올랐다.


그동안 숙제처럼 느껴졌던 오디오북 녹음과 낭독을 분리하기로 했다.

우선, ‘낭독을 좋아하는 마음’을 되찾고 싶었다.




북 내레이터 전문가반을 수료한 낭독가들은 매월 책 한 권을 선정하여 각자 낭독하고, 월말에 낭독회를 연다.

2023년 12월 한달살이 책은 이상교 작가님의 『농담처럼 또 살아내야 할 하루다』로 선정되었다.


마침 책도 선물 받아 소장하고 있었고, 이 책을 출간한 오늘산책 출판사에 대한 애정도 깊었다.

분량도 많지 않으니 이번 기회에 매일 소리 내어 읽어보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한달살이를 넘어 100일 낭독에도 도전해 보고 싶어졌다.


나의 낭독은 그렇게 다시 시작되었다.

목표는 단 하나. 매일, 꾸준히 하는 것!




매일 집에 돌아오면 침대 곁에 앉아 책을 읽었다.

마이크 대신, 편하게 휴대폰으로 내 목소리를 녹음했다.

어느 날은 너무 피곤해서 저녁에 깜빡 잠들었다가, 새벽에 벌떡 일어나 녹음을 하고 다시 잠들기도 했다.


인증을 하니 낭독을 거르기가 어려웠다.

때로는 과제처럼 느껴졌지만, 하루라도 빼먹으면 놓아버릴까 두려워 끊임없이 이어갔다.

누군가 나의 낭독을 듣고 남겨주는 응원의 흔적도 큰 힘이 되었다.

낭독은 어느새 나만의 루틴이 되었고, 100일 동안 5권의 책을 완독 할 수 있었다.




100일간의 낭독은 나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


누군가를 위한 낭독 이전에,
내 영혼에게 좋은 글을 들려주기 위해 나는 얼마나 노력했는가?


나를 위한 낭독의 시간은 곧 나를 돌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제는 안다.

그 시간이 쌓이면 더 큰 울림이 되어 퍼져나간다는 것을.


만약 당신도 낭독으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면,

먼저 자신에게 낭독을 선물해 보면 어떨까?




▼ 낭독하는 사서교사가 추천하는 책

이상교 『농담처럼 또 살아내야 할 하루다』

이상교 작가님은 오랜 세월 동시와 동화로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신 분이다. 이 책은 마치 시집 같기도 한 에세이인데, 이렇게나 아름다운 단어가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에세이치고는 글밥이 많지 않지만 금세 읽어버리긴 조금 아깝다. 찬찬히 소리 내어 아껴읽기를 권한다. 소박한 일상에서 그리움, 먹먹함, 따스함 등 여러 가지 감정이 느껴진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을 어른들에게 살아가는 일에 도무지 애태울 건 없다고, 농담처럼 또 살아내야 할 하루라며 담담한 위로를 건네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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