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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직한 사서교사가 일찍 일어나기 위해 한 일

by 차차

2024년 3월, 나는 6개월간의 자율연수 휴직에 들어갔다.


'휴직' 하면 늦잠을 떠올리기 쉽지만, 나는 아침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스스로 ‘강제 기상 시스템’을 만들었다. 바로, 새벽낭독 모임이다.

낭독크루 다채로音에서는 매월 돌아가며 모임을 이끄는데, 3월에는 내가 리더를 자원했다.

보통은 1주일에 한 번, 저녁에 2시간 정도 모임을 진행하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평일 새벽 6시에 모여 30분씩 해보기로 했다.

덕분에 매일 새벽 6시 전에 일어나 낭독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우리가 함께 낭독한 책은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였다.
낭독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읽어야 할 책이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둔 작품이었다. 이번 기회에 드디어 소리 내어 읽을 수 있었다.




눈으로 한 번, 소리 내어 한 번.

그저 스쳐 지나갔던 문장도, 입 밖으로 소리를 꺼내니 훨씬 선명하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다른 이들의 낭독을 듣는 경험이었다.
늘 내 낭독을 녹음해서 올리기도 바빠, 다른 사람의 낭독을 차분히 들을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함께 모여 읽으니, 자연스레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아, 나도 좀 더 여유를 가져야겠다. 침묵을 잘 견뎌야지.'

'인물을 좀 더 구분되게 잘 살려야겠다.'


혼자 낭독할 때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동시에 낭독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낭독은 단순한 읽기가 아니라, 서로의 호흡과 목소리로 배우고 성찰하는 과정임을 새삼 느꼈다.




낭독 전 짧은 안부 인사와 낭독 후 소소한 대화도 소중했다.

처음에는 칼같이 30분에 마무리했지만, 어떤 날은 남아서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또 어떤 날은 낭독 대신 대화만으로 40분을 채우기도 했다.

그 덕분에 서로를 더 잘 알게 되었고, 낭독 활동에 대한 고민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새로운 낭독모임을 꾸려가던 중이었는데 멤버들의 경험과 조언이 참 든든하고 힘이 되었다.


새벽마다 이어진 목소리는 단순히 책 한 권을 완독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서로를 북돋우며 함께 성장하게 만들었다.

어떤 날은 낭독을 마치고 다시 잠들기도 했고, 마지막 날에는 뜬눈으로 새벽을 맞이했지만, 이젠 그것마저 추억이 되었다.




매일 새벽 나를 깨우고 살아 있게 만든 건, 결국 함께 웃고 읽어준 사람들이었다.

소중한 멤버들 덕분에 무너졌던 나를 일으켜 세우고, 다시 움직일 힘을 얻었다.

그 결과, 우리는 또 다른 작당모의를 시작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가겠다.




▼ 낭독하는 사서교사가 추천하는 책

마르크 로제『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

프랑스의 작가이자, 대중 낭독가인 마르크 로제의 첫 소설. 작은 책방을 운영하며 평생 책과 문학을 사랑해온 피키에 씨가 요양원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책과 담을 쌓고 살던 소년 그레구아르는 파킨슨병으로 책을 읽을 수 없는 피키에 할아버지를 위해 책을 읽게 주게 된다. 이 책에는 두 사람이 낭독을 통해 고독한 노인요양원을 변화시키고, 성장해나가는 여정을 담았다. 주옥같은 문장이 너무나 많다. 특히, 낭독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꼭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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