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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라디오 낭독 토크쇼에 출연하다

by 차차

낭독으로 제대로 놀아보겠다고 결심하자, 재밌는 일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2024년 2월, 나는 ifland라는 가상공간에서 열리는 낭독토크쇼의 게스트로 초대되었다.

공중파 라디오는 아니지만, 단독 게스트로 출연하여 1시간 동안 이야기를 전하는 건 무척 특별한 기회다.

학창 시절, 매일 밤 라디오에 귀 기울이던 추억이 떠올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메타브릿지님의 초대를 받은 뒤, 나는 오래도록 고민했다.


어떤 텍스트를 낭독할까?
어떤 음악을 함께 나누면 좋을까?


나라는 사람을 잘 드러낼 수 있는 것들로 채우고 싶었다.

낭독크루 다채로音의 멤버이면서, 동시에 한 개인으로서 나의 장점은 '다양성'이었다.

그래서 내게 의미 있는 글과 음악을 선별하여 다채롭게 구성했다.


·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

· 소설 『키다리 아저씨』의 일부

· 최태성 선생님의 책 『일문일답』 글귀

· 이하이의 노래 『한숨


여기에 아카펠라, 스윙재즈, 팝송이 더해진 플레이리스트까지.


완성된 한 장의 큐시트에는 내가 지나온 시간과 나를 이루는 빛깔들이 1시간으로 압축되어 담겼다.






2월 24일 토요일 아침, ifland 밋업에는 스무 명이 조금 넘는 관객들이 모였다.
각자의 아바타로 자리를 잡고, 손을 흔들고, 반짝이는 이모티콘을 띄우는 모습을 보니 무척 반갑고 힘이 났다.

가상공간이지만, 마치 진짜 무대에 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작은 화면 속에서 시작된 목소리가 누군가의 귀와 마음에 가닿는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낭독과 토크가 이어지자 어느새 긴장은 눈 녹듯 사라지고, 나는 이야기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고심하며 고른 음악이 흘러나오자, 분위기가 한층 밝고 활기차게 물들었다.




시간은 금세 흘러 곧 참여자와 함께 하는 낭독코너 차례가 되었다.

가수 이하이의 '한숨' 노래가사를 세 분의 청자와 함께 낭독하는 시간!


숨을 크게 쉬어봐요. 당신의 가슴 양쪽이 저리게, 조금은 아파올 때까지…


낭독자가 가사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갈 때, 듣는 이들도 함께 숨을 고르는 듯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낯선 닉네임 뒤에 숨어있던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나의 낭독동기인 윤희샤로테 유윤희선생님이었다.

화면 너머로 전해지는 반가운 목소리에 마음이 포근해졌다.

함께 낭독을 하니 서로가 서로에게 따스한 위로가 되어주는 느낌이었다.


낭독토크쇼 풍경




마지막 낭독은 [나에게 쓰는 60초 편지]였다.

지금까지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낭독했지만, 이제는 나 자신에게 진심을 전할 시간이다.

선혜야~
지난 10년 동안 고군분투하느라 고생 많았지?
특히 작년 한 해는 이런저런 일들로 마음이 많이 아프고 힘들었는데.
이제 한 템포 쉬면서 무엇보다도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기고, 스스로를 많이 다독여주었으면 좋겠어.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가진 게 많은 사람인데 늘 부족하다고 채찍질하고, 무언가 잘 되지 않았을 때는 많이 속상해했던 것 같아.
네가 가진 것들을 사랑하고, 감사히 여기고, 혹시나 원하는 만큼 잘하지 못하더라도 열심히 노력했던 과정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또다시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올 한 해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하면서, 재밌고 알차게 보내자!
앞으로의 나날을 누구보다 응원해!


낭독을 이어가던 중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당황스럽고 부끄러운 마음도 잠시, 이내 후련함이 밀려왔다.

그동안 꽁꽁 숨겨두었던 감정들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듯했다.


마지막 곡 스티비 원더의 ‘Isn’t She Lovely’가 흘러나오자, 모든 아바타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우리는 남을 의식하지 않고, 몸과 마음을 모두 맡긴 채 자유롭게 춤을 추었다.

답답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낭독토크쇼가 끝난 뒤, 여러 사람들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신선하고 재미있었다는 반응부터 “오늘 추천곡들 짱!”이라는 표현까지.
내가 고른 글과 음악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았다는 사실이 참 기뻤다.

스무 명 남짓한 청중이었지만, 나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고, 귀 기울여 주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에 큰 위안이 되었고,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낭독으로 제대로 놀아보겠다고 다짐했던 순간이 나를 새로운 무대 위로 이끌었다.
가상공간 속 작은 무대였지만, 내겐 현실처럼 선명하게 다가온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낭독과 내가 가진 또 다른 재능으로 누군가에게 잔잔한 위로와 기쁨을 전하고 싶다.


언젠가 낭독과 연주, 노래, 춤이 모두 어우러진 '종합선물세트 같은 낭독콘서트'를 해보면 어떨까.

내 목소리가 누군가의 마음에 닿았던 순간을 기억하며, 낭독과 함께하는 또 다른 무대를 꿈꿔본다.




▼ 낭독하는 사서교사가 추천하는 책

최태성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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