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혜정낭독연구소에서 북 내레이터 정규과정을 시작한 것이다. 먼저 개설되는 반이 있었지만 『나에게, 낭독』의 저자이신 송정희 성우님께 배우고 싶어서 두 달을 더 기다렸다. 책과 함께하는 사서교사인 나는 저자와 만나는 시간이 설레고 즐겁다. 그래서 저자가 직접 하는 수업을 택했는데, 수강생들의 성장을 진심으로 돕는 성우님 덕분에 지금까지 낭독을 이어오고 있어 정말 잘한 일이 되었다.
낭독은 개인적인 관심으로 배우기 시작했는데 기초반 때부터 성우님께서 나중에 아이들과 낭독을 해보라고 권유하셨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은 남자 고등학생인데 과연 이 아이들을 데리고 ‘낭독’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고, 아이들 반응이 신통치 않을까 봐 지레 겁을 먹기도 했다.
엄두를 못 내고 있던 ‘아이들과의 낭독’은 뜻밖의 계기로 찾아왔다.
2022년 여름, 아이들을 데리고 1박 2일로 독서캠프를 가려고 했는데 급격한 코로나19 재확산으로 행사를 취소하게 됐다.
2학기 대체 프로그램을 기획해야 했던 그때, 마음 한편에 숙제처럼 남아있던 ‘낭독’을 떠올리게 됐다. 예산도 생기고, 뭐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 용기가 생겼다. 학교에 성우님들을 모시고 가을 낭독 프로그램을 진행해 보기로 했다. 다른 학교 사례를 알아보고, 성우님들의 경험과 내 생각을 종합해서 우리 학교 상황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우선, 서혜정낭독연구소 졸업생이신 중학교 사서선생님을 소개받아 현장 경험을 들을 수 있었다. 그 후 서혜정, 송정희 성우님과의 만남이 성사되어 KBS에 모여 학생 낭독 프로그램에 대해 열띤 회의를 했다. 그 결과 진로특강과 낭독특강, 강의와 실습을 결합한 『나에게, 낭독』 저자와의 대화를 기획할 수 있었다.
행사를 진행하기에 앞서 우선, 동아리 아이들과 『나에게, 낭독』으로 독서모임을 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동아리 시간이 되니 책을 읽어오지 못한 아이들이 많았다. 결국 그 시간에 같이 낭독하며 책을 보았다. 처음엔 내가 먼저 읽고, 돌아가면서 한 명씩 읽게 했다. 『나에게, 낭독』에는 저자들의 경험과 낭독을 위한 조언이 잘 담겨있어 좋았다. 기초반, 심화반 과정에서 이 책으로 수없이 연습한 덕에 아이들에게 피드백도 해 줄 수 있었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소리 내어 읽는 경험이 별로 없는 아이들에게 꽤 신선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다른 책으로도 낭독을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내었다.
다음으로는 내가 들어가는 1학년 수업을 활용했다.
‘저자와의 대화’ 프로그램을 홍보하고, 학급 전체 아이들과 책을 읽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너무나 듣기 좋았고, 처음엔 수줍어하던 아이들도 다음 차례에 읽을 땐 좀 더 자신감이 붙었다.
특히, 의미 있었던 건 그동안 제대로 목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던 아이들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낭독은 무기력하거나 소극적이거나 자기만의 세계로 숨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깨웠다.
또, 한국어 책을 읽는 것이 서툰 외국인 학생의 낭독도 들을 수 있었다. 반 아이들 모두 천천히 기다려주며 그 아이를 응원했고, 마지막 문장이 끝난 후에는 다 같이 박수를 치며 함께 기뻐하기도 했다.
이렇게 함께 낭독을 하면 ‘조금 서툴거나 조용한 아이도 놓치지 않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나의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드디어 ‘저자와의 대화’가 열리는 날!
아이들은 낭독하는 자세와 소리 내는 방법부터 차근차근 배우고, 자리에서 직접 실습을 했다. 원하는 아이들은 앞으로 나가서 낭독을 하고 피드백을 받았는데 미리 신청한 사람 외에도 손을 드는 학생이 많아졌다.
‘도전, 나도 성우 코너!’에서는 롤러코스터 남녀탐구생활과 이누야샤 영상 클립으로 목소리 연기와 코칭을 진행했다. 아이들이 하기 전에 서혜정 성우님께서 먼저 시범을 보여주셨는데 TV에서 들었던 익숙한 목소리를 현장에서 라이브로 듣자 아이들이 무척 신기하고, 즐거워했다.
이누야샤 더빙은 학생이 이누야샤 역할, 성우님이 금강 역할을 맡아 함께 연기를 했다. 이누야샤의 오랜 팬이었던 아이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성공한 덕후가 되었달까? 대본을 든 손은 덜덜 떨리지만 섬세한 감정까지 실어서 몰입감 있는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고, 대사를 격정적으로 내뱉으며 열연을 보여주기도 했다.
행사 내내 아이들의 적극적이고,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행사가 끝난 후 아이들의 소감문을 읽으며 남학생들을 데리고 낭독을 해도 괜찮을까 고민하던 것이 기우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소감은 어렸을 때 독서를 꽤 즐겼지만 최근에는 책을 멀리하던 학생의 이야기였다. 이 아이에게는 다시 독서라는 취미가 생겼고, 책을 소리 내어 천천히 낭독하는, 사소하지만 큰 변화가 생겼다. 책 속 주인공의 사연에 공감하기도 하고, 어린 시절 어머니와 서로에게 읽어주던 동화책들의 제목을 떠올리기도 한다고. 낭독은 휴식이 필요한 자신만을 위한 특별한 라디오란다.
처음엔 나를 위해 시작했던 낭독이 이젠 '너에게, 낭독'이 되었다.
아이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습득이 빠르고, 작은 자극에도 반응하고, 성장하는 존재다. 아이들의 반응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단 한 번 시도해 본 것, 아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의 기회를 만들어준 것은 꽤 의미 있는 일이었다.
남고생에게도 낭독의 기쁨을 선물할 수 있다니!
낭독에 대한 나의 편견이 깨진 귀한 시간이었다.
▼ 낭독하는 사서교사가 추천하는 책
서혜정·송정희 『나에게, 낭독』
낭독을 처음 시작한다면, 가장 먼저 이 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낭독에 대한 저자들의 경험과 조언을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 형식으로 담고 있어 직접 소리 내어 읽으며 자연스럽게 낭독을 익히기 좋다. 다양한 장르의 텍스트는 낭독의 즐거움을 더해주며,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질문과 해결책을 함께 제시해 명쾌하다. 30일간의 낭독 챕터는 낭독이 일상에 스며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주변 사람들과 하루에 한 개씩 미션을 수행하듯 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