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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여행자 Feb 09. 2023

추억은 방울방울 커스터드 크림빵

제주도로 입도 준비를 하며 일산과 제주를 한동안 오가느라 바빴다.

푸른 바다를 앞에 두고 카페를 하고 싶다는 꿈에 조금 방향을 틀어 제과제빵을 가르치는 베이킹 스튜디오를 열기로 했다.

카페를 운영하는 것이 그리 만만한게 아니라는 것을 제과 학교의 동기들에게 익히 들은 바 있기 때문.

이미 그 길에 들어선 동기들의 애환을 간접 체험 하게 된 것이다.

특히 카페를 운영하게 되면 나의 시간을 몽땅 거기에 쏟아야 하는 족쇄 아닌 족쇄가 될 것이라 생각되었다.   

역시 나에게는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는 베이킹 클래스를 운영하는 게 나았다.  

전생에 '김삿갓'이었는지 모를 정도로 여기저기 떠돌아야 하는 성향이었으므로...


베이킹 스튜디오의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하게 되어 제주도에 내려와 지내 던 어느 날.  

오래 된 돌담길을 지나다가 골목 귀퉁이 어디선가 실려오는 빵 굽는 냄새는 마치 주술처럼 내 발목이 잡혔다.

단 몇 초 만에 나는 수십 년 전의 추억의 골목길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노란 가방을 메고 총총걸음으로 유치원으로 향하던 길목에 자리 잡고 있던 작은 제과점.

그곳에 닿기도 전에 벌써 저만치부터 기분 좋게 빵 굽는 냄새가 마중 나와 있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달달한 커스터드의 진한 향기로 어질어질할 정도다.

유치원으로 가는 길은 그것만으로도 큰 즐거움이었다.


제과 학교의 실습 시간도 문득 떠오른다.

일본인 선생님의 엄격한 눈빛에 긴장감이 저절로 든다.


바닐라 빈과 설탕, 여기에 우유가 담긴 냄비가 가볍게 데워지면 설탕과 노른자가 섞인 볼에 데운 우유를 천천히 붓고 저어준다.

그리고 다시 냄비에 옮겨 불에서 빠르게 저어 섞어 주면 농후한 커스터드 크림이 된다.

열기에 노른자가 익지 않도록 매끄럽게 만드는 게 포인트!


그런데, “다마가...” 불에 올려진 나의 냄비 속 크림을 보시던 선생님의 다급한 말씀.

 ‘다마’. 일본어로 ‘알갱이’가 생기니 주의하라는 것. 커스터드 크림을 불 위에 올려 저을 때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금방 덩어리 지는 일이 벌어지게 되니 말이다.


아, 먹을 때 순식간에 사라졌던 커스터드 크림빵이 이렇게 까다로운 것이던가?

다시 정신을 바싹 차리고 크림을 빠르고 힘 있게 저어 무사히 마무리했다.

무작정 맛있는 빵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제과학교에 입학한 내 질풍노도의 시절이여!


오늘의 수고를 온전히 품어 낸 커스터드 크림빵을 볼이 터지게 한가득 베어 문다.  

보드라운 빵의 식감과 진한 바닐라 풍미의 크림은 금세 입안에서 혼연일체가 된다.


어느새, 나는 달콤한 추억 속으로 들어가 눈을 감는다.

멀리서 재잘재잘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서랍장 속에 각각 들어 있는 스케치북과 크레파스. 교실 뒤편 색색으로 장식된 귀여운 그림들.

긴 테이블에 친구들과 둘러앉은 내 손에는 반달 모양의 통통한 커스터드 크림빵이 들려 있다.


까르르 즐거운 웃음으로 물드는 그리운 간식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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