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도 사랑하고 싶다.
즐겁게 배워라.
물론 무언가를 배운다고 해서 처음부터 완벽하게 잘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래서 즐거운 것이다. 외국어를 갓 배우기 시작해서 유창하지 못한 사람이 외국어가 유창한 사람보다 말하기를 더 즐긴다. 즐거움의 주인은 언제나 어슬픈 사람이다. 무언가에 능숙해지고 손에 익는 순간 그 행위는 권태로워 지기 때문이다.
아직도 '유창한 영어실력'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10년 넘게 외국에서 다른 인종들과 함께 일하고 생활하면서 일상영어에 부담없이 이야기 할 수 있자니, 다시 내 본성인 조용하고 말 수 없는 내가 되었다. 나도 영어를 배우고 싶었을 때는 사람에 대해 무한한 관심과 그들이 갖고 있는 문화까지도 다 섭렵하려 들었고, 다르기 때문에 이해하고 받아들이던 것들도 이젠 그 다름이 때때론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새로운 것을 또 배워야 할까?
나이가 든다는 건, 낯섦이 사라진다는 것 혹은 무언가에 익숙해 진다는 뜻 같다. 나이가 들면서 여러가지를 경험해 보면서, 그 경험한 것들이 더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게 되면서 느끼는 심드렁한 감정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어릴적엔 작은 자극에도 신나했고, 나의 작은 변화와 새로운 경험들이 크게 다가왔으며 연애의 감정들로 울고 웃고 잠못 이루던 날들도 많았지만, 그러한 삶도 익숙해 지고 혹은 시간이 지나 안정적이 되면 그런 감정들이 쉽게 느껴지지 않게 된다. 현실적으로 경험이 없어지면서, TV앞에 앉아 젊은 누군가의 연애경험으로 웃고 울고 설레며, 간접적으로 느끼고 싶어하는 부류가 되는 것이다. 니체는 나이가 드는 감정을 '배움'에 빗대어 설명하는것 같다.
단 하나의 길을 걸어야 한다 : 나만의 삶을 사는 법
'흔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람. 흔한 외모와 흔한 생각을 지닌 사람이었음. 흔한 직장에서 흔한 사람을 만나 흔한 시간을 보내고 별 볼일 없이 늙어가다가 이내 죽음을 맞음. 적당한 두어 명의 사람들이 그를 추모하다가 이내 그들로 부터도 잊힘'
앞서 말한 그저 그런 삶으로 부터 탈출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저그런 삶만을 살게 하는 안이한 행동양식으로 부터 자유로워지는 일은 사실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특별한 삶을 살아내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과 닮은 내가 아닌 독창적인 나 자신이 되어야 하고 지금 행하고 생각하고 욕구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사실은 진정한 내가 아니라는 내면의 외침에 귀를 기울어야 하기 때문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나에게 부족한 점을 보충하고 나로 하여금 먼 미래에 대해서도 확신을 품게하고 오늘의 나를 능가하고, 잘못된 욕구와 습관들이 교정되는 과정을 거듭해야 한다.
언젠가, 누군가의 글에서 이 문장을 보고 나는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대부분의 삶들은 실패한다.' 너무 사실인데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서 더 놀랐던 문장이라 기억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내 능력에서 고칠 수 있는 현실적 방법이 뭔지 몰라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삶에 실패하는 이유를 나는, 그들이 내뱉는 생명력 없는 말.미움.공허감.이기심이라 판단했다.
나도 나의 삶이 너무 시시해서 고민하던 때에, 나는 저 이야기랑 조금은 달랐다고 생각해도, 성공한 누군가의 눈에는, 나보다 겨우 한발 앞선 누군가의 눈에는 나 역시도 결국 저렇게 보일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와의 비교를 버리더라도, 내 자신이 나의 삶이 더 낫지 않음을 많이 답답해 해왔다. 니체는 그 해답을 제시한다.
그의 해답을 내 부족한 점에 대입해보면 (삶의)리더쉽과 친밀감 형성 그리고 공감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내가 낸 결론은 '사랑으로 채우는 삶, 책, 미술, 그리고 성경'이였다. 이렇게 적고 보니, 앞선 글에서 보였던 내 감정인, 동료를 사랑할 수 없으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한들, 그게 의미가 있는 사랑인가 되묻게 된다참, 난. 쉬운 사랑만 하고 싶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