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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레비엔 Jun 25. 2024

전재산 1,050,000원

통장에 남은 잔고는 824,401원이다. 

오늘 받은 지역 상품권이 만 원 남짓 되고, 사나흘 후에 들어올 일당은 세금을 떼고 나면 19만 원이 좀 안 되게 들어 올 것이다. 몇 개 안 되는 옷가지를 뒤져서 나온 잔돈들이 2만원 남짓 있었고, 사용할 수 있는 커피 상품권이나 편의점 상품권도 몇 개 있다. 선물로 받은 위스키는 급할 때 팔면 10만원 가량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카드는 벌써 예전에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다행히도 이사해서 카드값 독촉장은 안 받아도 되고, 전화 올 사람도 없어서 카드연체 독촉 전화도 안 받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카드라도 여러 개 만들어 둘 것을 그랬지만, 알뜰하게 산답시고 비상용 신용카드 하나를 빼고는 체크카드만 사용하고 있었다.      


오늘, 호기롭게 두 달 치 월세를 미리 내고, 마지막 사치로 소주 두병도 사왔다. (다음 달까지 버티다가는 월세도 밀릴지 몰라 다음 달 월세를 미리 냈다.) 술을 마시기 전에, 이제부터는 하루하루를 단정히 살아야겠다는 비장한 심정으로, 7평 밖에 되지 않는 방을 정리하고, 옷가지를 정리하면서 주머니를 뒤지고, 필요없는 것들을 버리고, 한동안 부산스럽게 정리를 마쳤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그 많은 날을 이렇게 개운한 기분으로 살지 못하고 언제나 어지럽게 살았을까 한탄하면서, 소주잔에 첫 잔을 따랐다. 


‘이제 통장에 백만원도 안 남았네, 더는 못 버티겠지, 오래 버텼다.’ 

단 소주를 삼키기도 전에 다시 분주히 돈 계산을 시작했다. 몇 잔 더 마셔야 있지도 않은 돈 생각을 그만 할 수 있을 것이다. 

통장 잔액과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 앞으로 들어올 돈을 모두 계산해보니 수중에 1,050,000원쯤 있고, 쿠폰으로 아직 커피도 사먹을 수 있겠다. 


‘그래도 얼마간은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쓸 수 있는 돈이 아직 백만 원 넘게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자 살짝 안도가 되면서, 더는 생각하기 싫어 급하게 남은 술을 마셨다. 술기운이 돌자 겨우 생각이 느려지면서 누울 수 있었다. 술기운 덕분에 현금+통장 잔액 같은 아무리 반복해도 늘어나지 않는 돈 계산은 멈출 수가 있었지만,

‘백만 원으로 어떻게 잘 버틸 것인가’에 대한 허황한 계획은 계속 떠올랐다. 


지금이라도 백만 원으로라도 주식이나 코인을 해볼까 생각이 들다가도, 그나마 겨우 남은 돈조차 나를 위해 쓰지 못할 것이고, 얼마되지 않는 돈을 벌더라도 모든 시간을 몇만원을 버느라 소모해버려야 할 것이 뻔했다. 위험하고 돈을 많이 받는 일을 구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일이 힘들면, 더 쉽게 예전처럼 사고를 치거나, 일이 서툴러 눈총을 사게 될 것이다. 이미 다 시도해봤던 일이다. 빨리 일을 구하지 못하면 구직활동을 하는 사이 돈이 다 떨어질 것이고, 첫 월급이 나올 때까지 버틸 수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어쨌든 아직 백만 원 남짓 여유가 있으니 오늘은 그냥 자야겠다.     


어둠속에 누워서 자기 전에 습관처럼 인스타그램을 열어서 넘기고 있었다. 남은 백만 원으로 남들이 가는 좋은 식당에서 좋은 대우를 받으며 고급 음식이나 실컷 먹을까, 아니면, 좋은 호텔에 가서 마지막 순간을 보낼까, 하고 싶은데 하지 못했던 일을 해볼까,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보면서 이번에는 ‘백만 원을 어떻게 잘 써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초라한 차림으로 좋은 식당에서 몇만 원을 쓰고 오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 것 같았고, 이 상태로 좋은 호텔에 간들 가난한 사람에게는 이 방이나 호텔 방이 다르지 않다. 호텔에서 마지막 순간을 보내서, 내 불행한 처지가 도시 전설처럼 민폐로 남는 것도 싫었다. 딱히 가보고 싶은 곳도 없었고, 어딜 가도 돈 생각에 움츠러들 것 같았다. 인스타그램 안의 사람들은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곳에 가고, 선물을 주고 받으면서 기념일도 챙기고 잘 살고 있는데, 백만 원 만큼의 행복도 누리지 못하고 어떻게든 버틸 생각을 하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한심하니까 이 지경이 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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