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레비엔 Jun 25. 2024

돈계산을 멈춰야 겠다.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멍하니 사진들을 스크롤 하다가 광고가 눈에 띄었다. 

‘비용 없이 자가출판으로 책 쓰기’ 강의였다. 비용 없이 뭔가를 할 수 있다니, 지금 나는 돈 없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흥미가 있었다. 돈을 들이지 않고 뭔가를 할 수 있다면, 백만 원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의미도 있다. 광고를 따라 들어가 보니, 역시 그럴 리가 없었다. 책을 내는 비용은 무료지만, 강의는 유료였다. 


‘그럼 그렇지.’

가난을 광고하지 않고는 무료로 뭔가를 누릴 수 있을 리가 없다. 구청에서 하는 무료 프로그램도 차비가 걱정되고, 당장 필요한 어떤 지원을 얻기 위해서 떼야하는 서류비용 몇백 원과 차비와 수치심 때문에, 남은 돈을 시간을 계산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을까,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잠시 잊고, 무료일까 싶어 잠시 희색을 내비친 스스로가 바보 같았다. 

딱히 내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핸드폰을 내려놓고 정말 잠을 청했다. 잠이 올 리가 없었다. 혹시 기억하지 못하는 돈이 어딘가 있지는 않을지, 이 순간만 모면할 어떤 방법은 없는지,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도, 자꾸만 잠을 밀어내고 돈 생각만 했다. 세상에서 가장 돈이 없는 사람이 온통 돈 생각을 하느라 잠을 설친다니돈을 이렇게 저렇게 잘 굴리는 부자들도 나만큼 진지하게 돈 계산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7평짜리 어둠속에 갇혀서 방안을 끊임없이 얼마되지 않는 숫자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것인지 결말이 성큼 다가온 내 인생이, 더이상 슬프지도 화가 나지도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한 방울씩 눈물이 베개를 적셨고, 가슴은 체한 듯이 답답하면서 먹먹한 상태로 숨쉬기 힘들었다. 세상을 향한 분노도, 스스로에 대한 연민으로 인한 슬픔도 남아있지 않았다. 백만 원으로 어떻게 가능한 길고 효율적으로 쓸지 궁리할 뿐이었는데도, 내 몸은 습관성 슬픔과 분노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것처럼 슬프지 않은데 눈물이 새어 나왔고, 분노하지 않는데 가슴이 무거웠다. 공짜인 숨 쉬는 것조차 잘 할 수 없었다.     


백만 원 짜리 시간

백만 원으로 버틸 때까지 버티고, 그때 가서 생각하자고 마음먹었다. 누가 보면 다 포기한 사람처럼 보일테지만,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처럼 보였다.

이렇게 결심하기까지 수없이 울고,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일을 어떻게든 구해보려고 노력해봤지만, 점점 용기도, 기회도 잔고도 줄어들었다. 


자존심 같은것은 이미 예전에 내려놓았지만,  살아 남아야 한다는 한가지 목적 때문에,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사는 것, 

다른 사람의 기분을 살피는 것, 

사람들 사이에서 둥글게 살기 위해 스스로를 제한 하는 것을 멈추고 싶었다. 

내안에 빛나고 있는 아름다운 영혼이 점점 피폐해지는 것, 영혼 없이 빈 껍데기만 남는 일을 그만 두기로 했다. 지난 몇 달 동안 도돌이표처럼 수없이 이런 생각을 반복하며, 어떤 희망이라도 찾아보려고 노력했지만, 인간의 희망은 유한한 삶에 있었다. 삶의 굴레에서 탈출이 가능한 것,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마지막 희망인 것을 깨달았다. 답을 얻고도 매일 밤, 매 순간, 생각은 저절로 몇 번이고 인생 시뮬레이션을 돌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지금처럼 적당히 술에 취해 생각이 느려지면, 각 단계 사이의 인과관계가 선명해지면서 결론이 선명해지고, 확신이 생긴다. 오늘도 다시 한번 똑같은 결론을 얻었다. 탈출만이 희망이라는 것.


이렇게 결정하자 멍하지만 모든 것이 선명해졌고, 구차하지만 평온했다. 7평 짜리 어둠은 텅 빈 우주 공간인 듯 확장되었고 감각이 둔해지면서 드디어 마음도 고요해졌다. ‘아마 삶에서 탈출하면 이렇게 부드럽고, 무한하고 고요한 공간으로 가겠지’     

이제야 겨우, 그동안 쫒기고, 소모되기만 했던 내 인생을 찾은 것 같았다. 더이상은 매번 같은 결론을 얻게되는 끝없는 생각을 멈추고, 남은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기로, 같은 생각을 반복하는데 에너지를 쏟지 않기로 다시 한번 결심했다. 안타깝게도 내 인생이 백만 원치만 남은 것이 아쉬웠지만, 앞으로는 나로 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어제밤과, 그전 날 밤처럼 똑같이 생각했지만, 오늘은 좀 더 후련해졌다. 


드디어, 돈 생각이 더이상 나지 않았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편한 상태가 되었다. 습관성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내 몸이 흘리는 눈물 때문에 콧물로 코가 막힌 것만 아니라면 지금은 불편한 것 없이 편안했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불을 켰다. 휴지도 딱 두 칸만 잘라서 코를 풀었다. 이제 휴지를 아끼는 것 따위도 구차하지 않았다. 코도 뚫리고 나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핸드폰만 들여다봤을 뿐인데, 몸이 몹시 피로했다. 다시 불을 끄고 누웠다. 

아까와 달리 몸은 피로하고, 정신은 맑고, 무한하고 어두운 우주안에서 어떤 중력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둥실 떠오른 듯이 평온했다. 이미 새벽 2시가 넘었지만, 찬란하게 빛날 내일을 위해서, 다시 자기로 했다. 아까처럼 생각이 어둠 속에서 중구난방 번쩍이거나, 습관성 눈물로 코가 막히는 것도 아닌데도 잠은 오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전재산 1,050,000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