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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레비엔 Jun 25. 2024

돈계산을 멈춰야 겠다.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멍하니 사진들을 스크롤 하다가 광고가 눈에 띄었다. ‘비용 없이 자가출판으로 책 쓰기’ 강의였다비용 없이 뭔가를 할 수 있다니지금은 돈 없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흥미가 있었다돈을 들이지 않고 뭔가를 할 수 있다면백만 원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의미도 있다황급히 광고를 클릭했지만역시 그럴 리가 없었다책을 내는 비용은 무료지만강의는 유료였다

그럼 그렇지.’


가난을 광고하지 않고는 무료로 뭔가를 누릴 수 있을 리가 없다구청에서 하는 무료 프로그램도 차비가 걱정되고당장 필요한 어떤 지원을 얻기 위해서 떼야 하는 서류비용 몇백 원과 차비와 수치심 때문에있지도 않은 공포를 만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남은 돈과 시간을 계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을까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잠시 잊고무료일까 싶어 잠시 희색을 내비친 스스로가 바보 같았다

딱히 내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핸드폰을 내려놓고 정말 잠을 청했다잠이 올 리가 없다혹시 기억하지 못하는 돈이 어딘가 있지는 않을지이 순간만 모면할 어떤 방법은 없는지생각하고 싶지 않은데도자꾸만 잠을 밀어내고 돈 생각만 했다세상에서 가장 돈이 없는 사람이 온통 돈 생각을 하느라 잠을 설친다니돈을 이렇게 저렇게 잘 굴리는 부자들도 나만큼 진지하게 돈 계산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주제에 맞지 않는 신축 빌라에 갇혀서 집안을 끊임없이 얼마 되지 않는 숫자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것인지결말이 성큼 다가온 내 인생이더는 슬프지도 화가 나지도 않았지만이상하게도 한 방울씩 눈물이 베개를 적셨고가슴은 체한 듯이 답답하면서 먹먹한 상태로 숨쉬기 힘들었다세상을 향한 분노도스스로에 대한 연민으로 인한 슬픔도 더 이상은 없다백만 원으로 어떻게 가능하면 길고 효율적으로 쓸지 궁리할 뿐이었는데도몸은 습관성 슬픔과 분노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처럼 슬프지 않은데 눈물이 새어 나왔고분노하지 않는데 가슴이 무거웠다공짜로 누릴 수 있는 숨 쉬는 것조차 잘할 수 없었다.

백만 원으로 버틸 때까지 버티고그때 가서 생각하자고 마음먹었다누가 보면 다 포기한 사람처럼 보일 테지만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이자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길이다.     


이렇게 결심하기까지 수없이 울고마음을 다잡고새로운 일을 어떻게든 구해보려고 노력해봤지만점점 용기도기회도잔고도줄어들었다자존심 같은 것은 이미 예전에 내려놓았지만살아남아야 한다는 한 가지 목적 때문에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사는 것다른 사람의 기분을 살피는 것사람들 사이에서 둥글게 살기 위해 스스로를 제한하는 것을 멈추고 싶었다내 안에 빛나고 있는 아름다운 영혼이 점점 피폐해지는 것영혼 없이 빈 껍데기만 남게 만드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지난 몇 달 동안 도돌이표처럼 수없이 이런 생각을 반복하며어떤 희망이라도 찾아보려고 노력했지만인간의 희망은 유한한 삶에 있었다삶의 굴레에서 탈출이 가능한 것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마지막 희망인 것을 깨달았다


답을 얻고도 매일 밤매 순간생각은 저절로 몇 번이고 나의 과거를 앞으로 남은 한 두 달의 미래를 시뮬레이션 하기를 멈추지 않았다지금처럼 적당히 술에 취해 생각이 느려지면각 단계 사이의 인과관계가 선명해지면서 결론이 선명해지고확신이 생긴다오늘도 다시 한번 똑같은 결론을 얻었다탈출만이 희망이라는 것.

이렇게 결정을 내리자멍하지만 모든 것이 선명해졌고구차하지만 평온했다나만의 럭셔리한 빌라를 꽉 채운 어둠은 텅 빈 우주 공간처럼 확장되었고 감각이 둔해지면서 드디어 마음도 고요해졌다


아마 삶에서 탈출하면 이렇게 부드럽고무한하고 고요한 공간으로 가겠지     

이제야 겨우그동안 쫓기고소모되기만 했던 내 인생을 찾은 것 같았다더 이상은 매번 같은 결론을 얻게 되는 끝없는 생각을 멈추고남은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기로같은 생각을 반복하는데 에너지를 쏟지 않기로 다시 한번 결심했다안타깝게도 인생이 백만 원치만 남은 것이 아쉬웠지만앞으로는 나 자신으로 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어젯밤과 그 전날 밤에도 똑같은 생각을 하다가 잠들었었지만오늘은 좀 더 후련해졌다


드디어돈 생각이 나지 않았고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편한 상태가 되었다습관성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몸이 흘리는 눈물 때문에 콧물로 코가 막힌 것만 아니라면 불편한 것 없이 편안해졌다결국견디지 못하고 불을 켰다휴지도 딱 두 칸만 잘라서 코를 풀었다이제 휴지를 아끼는 것 따위도 구차하지 않았다코도 뚫리고 나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아무것도 하지 않고핸드폰만 들여다봤을 뿐인데몹시 피로했다다시 불을 끄고 누웠다     


아까와 달리 몸은 피로하고정신은 맑고무한하고 어두운 우주 안에서 어떤 중력의 무게에도 짓눌리지 않고둥실 떠오른 듯이 평온했다이미 새벽 2시가 넘었지만찬란하게 빛날 내일을 위해서다시 자기로 했다아까처럼 생각이 어둠 속에서 중구난방 번쩍이거나습관성 눈물로 코가 막히는 것도 아닌데도 잠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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