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택시
‘조금만 더'라는 짧은 속삭임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온다. 그 한마디가 나를 끌어당기며 묵직하게 느껴졌던 인생의 발걸음이 어느새 가벼워진다.
시간의 흐름은 멈추지 않고 지나간다. 세월은 가속도를 더해간다. 한때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청춘이 어느새 사라져,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멀어졌다. 지나간 시간이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녹아들 때, 그리움은 바람에 실려 오는 듯 내 마음속에서 나지막이 속삭인다. 내 안에서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에 다시 귀를 기울이게 된다.
청소년 시절은 꿈이 있었다. 대학 진로를 결정하던 순간, 선생님은 교육자의 길을 권하셨고, 어머니는 가톨릭 사제가 되기를 바라셨다. 나는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경영학과를 선택했다. 그때의 나는 아버지의 그림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만약 그때 교육학이나 신학의 길을 선택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만일이라는 질문이 마음 한구석에 잔잔하게 스며들어 아련한 흔적을 남긴다.
그 시절의 삶은 잔잔한 호수처럼 별다른 파동 없이 흘러갔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고 나서 안정과 평온을 찾아 헤매었다. 일상 속 반복되는 직장 생활에 갇힌 채, 자기 계발이라는 말은 점차 희미해져 갔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마음을 서서히 잠식하기 시작했다.
중년이 되면서 아내와 함께 도시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쌓아온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자연 속에서 새로운 시작을 찾으려는 마음은 점차 커져만 갔다. 오랜 병환으로 지친 아내와 나는 조용한 마을에서 텃밭을 가꾸며 소소한 행복을 누렸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남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의 제국 록펠러라는 책을 펼쳤다. 그의 일대기는 내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왜 나는 평범함에 안주했고, 왜 더 크게 도전하지 않았던 걸까. 책 속의 이야기에 몰입하며 내 안에 숨겨진 아쉬움과 직면하게 되었다. 인생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하던 그 순간, 끝없이 자신을 밀어붙인 그의 결단력이 나를 깨웠다.
19세기 말 석유왕 록펠러에게 기자가 물었다. "지금도 엄청난 부자인데, 얼마나 더 가져야 만족하시겠습니까."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조금만 더.(Just a little bit more)” 이 간결한 대답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성장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본능적인 탐욕,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려는 갈망의 목소리가 여기에서 들린다. 나 역시 이러한 멈출 수 없는 열망 속에서, 내 안의 뜨거운 열정이 서서히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일대기를 통해 철저한 십일조 헌납의 모델인지, 잔혹한 독점 자본가의 표상인지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던 것은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더욱 많은 것을 성취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였다. 조금만 더 라는 한 발짝 더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대부호에게서 본 순간, 그 화두는 나를 사로잡았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왜 그렇게 살아왔는지 후회가 남는다. 뚜렷한 방향 없이 고장 난 나침반을 따라 걸어왔음을 깨달았다. 잠시 멈춰 쉼을 가지며 이 사실을 받아들였다. 거울 속 내 모습은 단조롭고 조급함 없이 흘러가는 삶을 보여준다. 익숙한 길 위에 오래 머물며 안정만을 추구해 도전을 피했던 자신을 돌아본다.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 두려웠던 건 아니었을까. 지금도 마음속에서 조금만 더 라는 말이 메아리친다.
학창 시절, 친구들은 꿈을 위해 독서하고 토론하며 밤을 새웠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자신을 성장시키고, 끊임없이 세상에 도전하며 새로운 경험에 몸을 맡겼다. 반면, 나는 과제와 시험에만 집중하며 취업만을 목표로 삼았다. 그들이 걷는 길을 떠올리면 아쉬움이 남는다. 만약 그때 조금만 더 용기를 내어 더 많은 경험에 뛰어들었다면 내 인생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그 질문이 나를 깊은 고민에 빠뜨린다.
다른 진로를 선택하고 젊은 시절에 부의 제국 록펠러를 알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이제 알 수 없다. 과거의 미련이 스며들고 만일이라는 어리석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러한 미완의 감정과 후회 속에서도 새로운 다짐이 생긴다. 진정한 성장과 성숙을 향한 여정이 시작되기를 바란다. 육체는 한계에 부딪힐지라도, 정신은 그 너머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조금만 더 라는 욕구가 마음속에 새로운 씨앗을 뿌리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의식이다. 육체는 아무리 잘 돌보아도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다만 정신은 죽음의 문턱을 넘어 생명력이 유지되도록 노력을 멈추지 않고 할 수 있다. 나는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살아 숨쉬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품고 있다. 삶의 후회와 아쉬움 속에서도 희망의 싹은 자라나고 이제는 탐욕이 아닌 조금만 더 라는 소박한 열망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난 지금, 자유롭게 상상하며 새로운 길을 탐구하는 삶을 맞이한다. 인생의 본질은 단순히 목표를 이루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발견되는 의미와 감동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새벽의 어둠이 천천히 물러나고 찬란한 빛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조금만 더.' 이 작은 속삭임이 내 안에 남아 길을 밝혀주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불어넣는다.
마침내 고장 난 나침반을 고쳐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곁에 두고 책을 펼친다. 지나간 시간은 단순한 추억이 아닌 소중한 기록으로 남기며 나를 향해 미소 짓는다. 새벽녘의 차가운 공기가 스치며 이 순간의 귀중함을 일깨운다. 과거의 아쉬움은 한 줄기 빛이 되어 현재를 더욱 선명하게 비춘다.
이제 삶은 탐욕을 넘어 '조금만, 조금만 더'라는 순수한 열망으로 새롭게 피어난다. 글을 쓰고 지혜를 쌓아 자신과 세상에 긍정적인 흔적을 남기겠다는 꿈을 품고 내일을 준비한다. 생명과 희망으로 가득한 이 여정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시작의 경계를 넘어 더욱 밝고 넓은 빛을 향해 힘차게 나아간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길 위에서 내 이야기는 더 깊고 가치 있는 방향으로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