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는 여행
낯선 곳에 익숙해지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다.
여행은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으로 생각한다. 가보지 않았던 곳을 찾아 생경함이 주는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다. 반면 같은 여행지를 반복해 가는 여행자도 있다. 나 같은 경우가 그런데 편안함 때문이다. 편안함은 익숙한 것으로부터 온다. 익숙하면 목적지를 찾느라 애쓸 필요가 없다. 어디서 식사를 할지, 어느 카페가 나의 취향에 맞는지, 어디에 바다가 보이는 벤치가 있고, 어느 빵집의 갓 구운 빵이 몇 시에 나오는지 알고 있다.
이전에 여행했던 곳을 다시 간다고 하면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그러나 모두 한 번쯤 느껴봤을 것이다. 여행이 끝날 즈음이 되면 머물던 곳이 적응되기 시작하고 마지막 날이 되면 하루만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을. 그런 이유로 여행이 끝날 때가 되면 다시 오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이상했다. 이전과 같은 숙소, 같은 밥집, 같은 산책길. 그러나 머물수록 시선에 들어오는 것들은 다양했다. 그것들은 수많은 의문과 상상을 갖게 했다. 의문은 낯선 곳에 머무는 이유가 되기에 충분했고 낯설음 뒤에 숨어있는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것은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머물러야 했다. 오래 머무를 수 없을 땐 다시 그곳을 찾기도 했다.
낯선 곳을 알아가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었다. 한 곳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알게 되는 것은 머무는 여행도 낯설음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낯설음이 하나 둘 지워지는 것은 재미있고 뿌듯한 일이라는 것도 알았다. 낯설음이 사라지면 또 다른 낯설음이 찾아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낯설음은 익숙함으로 변했다. 상점, 카페, 식당, 시장, 빵집, 거리, 골목길, 가로등, 건물, 놀이터, 공용 주차장.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 그것들은 내가 사는 곳에도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다른 하늘 다른 공기 속에 있었으므로 엄연히 다른 것이었다. 낯설음이 낯익음이 되는 것은 정착되어 간다는 의미이다. 익숙해질수록 뿌듯함도 생겼다. 여행은 떠나야 할 날만 있을 뿐 특별한 목적이 없었다. 계획 없는 여행자가 되어 현지인처럼 지냈다. 여행지에 오기 전 남겨진 일, 이전에 왔던 사람들이 말하는 특별한 것, 볼 것, 맛볼 것에 골몰하지 않았다. 일상같이 살아가는 것처럼 여행하는 것. 그것에서 나는 편안함과 기쁨을 느꼈고 그것이 머무는 여행의 목적이었다.
목적 없는 삶은 불안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한다. 그러나 목적 없는 여행은 다르다.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여정을 의무화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곧 자유라고 말할 수 있다. 여행에서 자유는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다. 생각 없이 머무는 것. 자연스럽게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보아야 할 것도 먹어야 할 것도 특별히 체험해야 할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 지내는 것. 그리고 여행의 과정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 나에게는 그것이 머무는 여행이었다.
이제는 야외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 아직은 반쪽 같은 자유이지만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사람들 마음이 급하다. 우선 회식 약속을 잡고 그다음으로 여행 계획을 세운다. 그동안의 답답함을 보상받으려는 듯 사람들이 추진하는 세기가 전투적이다.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는 많이 지쳤다.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 나도 떠나보려 한다. 그러나 너무 전투적인 여행은 되지 않으려 한다. 그동안 답답함이 너무 강해던 탓에 갑작스러운 자유가 허무할 것 같아서다. 우선은 차분히 마음의 힘을 키우려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드러운 죽으로 서서히 속을 달래듯 돌아올 날만 정한 채 자유롭고 목적 없이 머무는 여행도 좋을 것이다. 오래 머물 수 없다면 틈틈이 반복해 가도 좋다. 좋은 회복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