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솔 이야기와 자주 묻는 질문을 담아봤어요.
안녕하세요, 아쉬탕가 요가 팬분들이 이렇게 많았나요?
지난 주 레터에서는 아쉬탕가 요가의 역사와 3가지 특징을 살펴보았는데요. 오늘은 규빈 선생님의 아쉬탕가 이야기와 구독자분들께서 남겨주신 아쉬탕가에 대한 질문으로 레터를 구성해 보았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애매한 재능과 끊임없는 비교로 고통받던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기타를 12년째 치고 있고 다양한 악기를 좋아하지만, 업으로 삼을 만큼의 재능이 있진 않죠.
품새선수까지 했던 태권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서울시 대회에서는 입상해도 전국대회만 나가면 항상 떨어졌죠. 그러다 저희 친누나가 요가지도자과정을 시작하면서 우연히 요가를 만났는데, 요가는 비교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곧 정식으로 요가원에 가서 수업을 들었고 "아 이건 내가 10년 동안 한다면 뭐라도 될 것 같다" 란 막연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일치하기가 어려운데, 제 경우에는 요가가 그 접점에 있었어요.
그 당시 키가 178cm 인데 반해 체중은 50kg 밖에 안됐던 저는 아쉬탕가 선생님들의 잔근육에 반해 아쉬탕가 요가를 선택했죠.
어리고, 타고난 몸 때문에 제 노력과는 상관없이 무시 당하는 일도 있었고, '남자가 무슨 요가냐'라는 의심과 걱정도 많았지만 제 자신을 믿고 묵묵히 수련했어요. 아쉬탕가를 10년 수련한 뒤의 제 모습이 어떻게 변해있을지, 그런 궁금함이 더 컸거든요.
아쉬탕가가 다른 요가보다 부상이 많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몸을 변화시키는 측면에서 아쉬탕가가 다른 어떤 요가보다 빠르고 확실하다는 것 또한 사실이죠.
요가에는 ‘요행’은 없고 ‘고행’은 존재하는 것 같아요.
모든 고통은 무지와 욕심에서 나오지요. 부상을 다르게 말하면 고행의 일부라고 생각하구요, 다치는 이유도 우리의 몸에 대한 무지와 과욕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무릎이 좀 뜨면 어떤가요? 바카사나가 꼭 높아야 할까요? 후굴이 깊지 않아도 괜찮아요!
자기 몸의 가동성을 알고 움직이시길 바랍니다. 평생 나를 지켜준 사랑스러운 몸을 미워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면서요. 수련 중에 생기는 크고 작은 부상은 수련자들이 스스로 내 몸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더 단단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인도에 처음 갔을 때, 전 스무 살이었어요. 저의 첫 해외생활이기도 했죠. 가족과 이렇게 오래 떨어져 지낸 것도 이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인도 음식도 안 맞고, 외롭고, 햇빛도 안드는 좁은 방에 혼자 있으니 하루하루가 고행이었죠. 영어도 잘 못해서 친구들은 사귈 생각도 못했고요.
처음 갔을 땐 제가 많이 어린 편이었어요. 저랑 나이로 제일 가까웠던 사람이 엄마를 따라온 15살 친구였을 정도니까요 (웃음) 첫 번째 마이솔 때는 정말 외로움 속에서 수련에 집중했던게 떠오르네요. 그런데 뒤돌아 생각해보면 역시 그 때 제일 많이 성장했던 거 같습니다.
새벽 3시 30분이면 일어나 5시가 되기 전에 수련실에 도착하는 생활을 반복하면서도 하루하루의 수련일지를 블로그에 남겼어요.
지금은 수련이 힘들기 보단 재미있다 (초반이라 그런 거겠지만)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이 샤랏 선생님의 구령에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같은 호흡을 하고 샤랏 선생님의 장난에 다 같이 웃는 상황 자체가 너무 즐거워서 웃음이 난다. 마이솔 샬라 두 번째 수련 (샤랏 선생님 첫 핸즈온)
살아있음을 느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열려 있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다. 나는 오늘도 용기 내었고 살아있음을 느끼며 행복했다. 그리고 많이 배웠다. 오늘도 이렇게 했다. 마이솔 샬라 백서른번째 수련 (샤랏요가센터에서 공연)
아쉬탕가를 시작하던 순간부터 공인을 인가 받기 직전까지, 그 순간을 상상해왔어요. "그런 말씀을 나에게 해주시면 기분이 어떨까? 눈물이 날까? 아니면 주저 앉게 될 정도로 기쁠까?"
근데 막상 샤랏지께서 인가를 주시던 날엔 무덤덤했어요. 사무실에 올라가서 공인 받을 정보를 쓰라고 말씀하셨는데, 기쁘기도 했지만 한 명의 공인 선생으로서, 제 이름에 따라오는 책임감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특이하게 공인 선생님이 많아서 그렇게 느낄 순 있지만 꼭 그렇진 않아요. '공인'을 받겠다 하시면 마이솔에 가야겠지요. 하지만 공인을 받고 돌아오신 선생님들께서 진행하는 요가지도자과정(TTC), 또 국내 아쉬탕가 공인에게 배운 선생님들께서 진행하는 TTC도 많습니다.
저는 여기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쉬탕가 본질 그 자체는 변하지 않으니까요 :)
사실 요가의 기원이나 역사를 타고 올라가면 종교적인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요가 자체가 종교는 아니죠. 지금까지 요가는 많이 변형되어 왔습니다.
요가를 하는 데 아사나가 다가 아니기도 하고, 철학이 다가 아니기도 합니다. 따라서 현대의 요가는 내가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냐, 나의 그릇에 어떤 것을 담느냐로 달라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 또한 기독교 신자지만 만트라 챈팅도 즐겨한답니다.
더 궁금하신 분들은 요가가 종교인가에 대한 요가저널의 기사를 참조해 보세요.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요가를 전파하자' 가 제 모토입니다. 그 목표의 일환으로 아쉬탕가 앱 서비스 출시를 준비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요가 역사는 그 인지도에 비해서는 좀 짧은 편이에요.
정보가 개인 블로그나 요가원 홈페이지/카페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어 스스로 공부하면서 이게 맞는지 확인해야하죠. 산스크리트어, 영어를 거치다 보니 번역도 제각각이구요. 그래서 배우는 입장, 가르치는 입장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한데 모아 보고 싶었습니다. 먼저 아쉬탕가 요가부터요. 이 서비스가 요가를 지도하는 선생님, 학생 모두에게 많은 도움이 되길 바라요.
또 하나는, 아사나 그 이상의 요가를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싶어요. 오늘 이렇게 마디님과 인터뷰하는 것도 그 일환이구요. (웃음) 요가는 아사나가 다가 아닌데, 아사나만 보이잖아요.
자살률 1위, 우울증 1위.. 이렇게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사는 법, 현명하게 사는 방법을 요가를 통해 체득하길 바래요.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매트 위에 서서 고통받을 용기가 있어야겠죠.
아쉬탕가 요가 수련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매일 같은 수련을, 심지어 더 잘하게 될 수록 난이도가 올라가니까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분명히 몸과 마음이 치유됩니다. 저는 이걸 알기에 더 많은 분들이 아쉬탕가 수련을 제대로, 그리고 오래 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가고 싶어요.
첫째는, 가능하면 공인을 받은 선생님께 가서 수업을 한 번 들어보세요.
가능하면 마이솔 클래스로요. 레드클래스(구령수업)는 선생님의 속도에 맞춰야하고, 옆사람을 따라가는 데 급급하기 쉬운데, 마이솔 클래스에서는 오롯이 본인의 속도에 맞추면 되거든요.
그리고 아쉬탕가 요가는 공인을 받은 선생님께 배운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듭니다. 인가 받았다는 뜻은 인도에 최소 3번 이상 가서 수련을 했다는 이야기니까요. 요가 강사로서 인도에 매년 가서 수련하는 거 정말 어려운 일인데 그만큼 그 선생님의 수련에 대한 헌신이 뛰어나다는 의미겠죠? 이 홈페이지에 공인을 인가받은 한국인 선생님들께서 어디서 가르치고 계시는지 나오니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2022년까지만 업데이트 되어 아직 제 이름은 없지만요 (웃음)
둘째, 마음을 먹었다면 꾸준히 수련 해보세요.
아쉬탕가를 하고 난 다음 날엔 엄청난 근육통을 느끼실 거예요. 그리고 나서 그 똑같은 시퀀스를 해야한다니 생각만해도 아찔하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몸은 편안해지고 그 과정에서 마음도 평온해지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거에요. 여기서 키 포인트는, 꾸준히 수련을 지속하는 건데요. 그 순간을 버티지 못하고 포기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아쉬탕가는 길게하면 길게 할수록 빛이 나는 요가입니다.
마지막으로, '아쉬탕가 요가의 정석' 이라는 샤랏 구루지께서 만드신 책을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얇은 책이고, 아쉬탕가의 핵심을 정확하게 적어둔 책이거든요. 저는 이 정도만 참고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많은 정보는 오히려 수련에 방해가 될 수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얘기해드릴까요.
지네 한 마리가 있었어요. 근데 누가 "지네야! 너 지금 어떻게 걷고 있니?" 라고 지네한테 물어본 거예요. 그랬더니 지네가 "어라..? 지금 내가 어떻게 걷고 있더라?" 라고 하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고 해요. 다리가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생각하다 보니까 움직임이 오히려 제한된 거죠. 우리가 숨쉬는 것을 의식하면 갑자기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 처럼요. 요가수련도 마찬가지에요. 너무 많은 정보는 너무 많은 생각을 불러오고, 생각이 많아지면 움직임이 제한 돼요. 저번 호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그냥 하는게 제일 중요합니다. :)
언제나 당신의 수련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쉬탕가에 진심인 규빈 선생님과 함께 아쉬탕가 요가에 풍덩 빠져 본 지난 2주, 어떠셨나요? 아쉬탕가 요가를 수련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면 주변에서 아쉬탕가 요가원을 찾아보세요 :) 요가레터 OLLY 에서 만나보고픈, 또는 요가레터에 소개하고픈 다른 요가 장르가 있다면 댓글이나 서베이를 통해 자유롭게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