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가 무소불위의 권력과 만나면 생기는 일
안녕하세요, 마디입니다.
이번 레터에서는 요가계의 이름 난 구루들의 성범죄 및 사건사고를 다룰 예정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성추행, 성폭행과 관련하여 트라우마를 유발하거나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내용과 사진이 있음을 미리 고지드리고자 합니다. 하이퍼링크를 클릭하면 출처 또는 참고자료로 이동합니다. 특정 종류의 요가 자체를 비판할 의도로 작성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지난 요가레터들을 쭉 읽으신 분이라면, 인도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요가가 어떻게 지금처럼 전 세계인이 널리 즐기는 운동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는지 잘 아실 겁니다. 우리가 오늘날 이렇게 쉽게 요가를 즐기게 된 데에는 약 100년 전부터 인도에서 서구로 나가 '요가'라는 철학과 라이프스타일을 세상으로 전파하는데 헌신한 구루들과 그들을 따른 수많은 제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구루라는 단어는 산스크리트어로 '영적인 선생님'을 의미합니다. 전문가, 멘토, 가이드, 상담가의 역할을 모두 담당하는 구루와 제자의 관계는 매우 특별하고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마치 장인이 수제자를 가르치는 것과 비슷합니다.
구루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전대로부터 본인이 전수 받은 지식과 삶에서 체득한 지혜를 전하며 제자의 성장을 도와요. 제자는 이런 구루에게 존경과 헌신을 바치며 가르침대로 살고자 노력하구요.
이러한 관계는 상호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데요, 요가 문화를 이해할 때 빠뜨릴 수 없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런 신성한 관계를 악용해 자신의 제자들에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구루들이 꽤 많다는 걸요.
오늘 요가레터에서는 '특정 요가의 창시자' 라는 본인의 특별하고 강력한 지위를 남용해 제자들을 성적으로 착취한 요가 구루들을 소개하겠습니다.
그간 요가레터에서는 구루 T. 크리슈나마차리아를 여러 번 언급했습니다. 파타비 조이스는 아쉬탕가 요가의 창시자로서, 크리슈나마차리아의 제자 중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입니다.
파타비 조이스는 생전 인도 마이솔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샬라를 가족과 함께 운영했습니다. 매년 수백명의 아쉬탕가 수련자들이 그의 지도를 받고, 그로부터 공인 인가와 승급을 받기 위해 마이솔로 날아왔지요. 파타비 조이스는 손자와 함께 전 세계를 순회하며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인도에 머무르면서도 부와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요기였습니다.
그리고 2009년, 93세의 파타비 조이스는 마이솔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망 직후, 다수의 제자들이 파타비 조이스가 그들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증언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핸즈온 (Adjustment) 중에 남성과 여성을 가리지 않고 제자들의 골반에 자신의 생식기를 문지르거나, 그들 위에 올라타거나, 깊은 후굴 동작 중에 손가락을 질 안으로 넣는 행동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인사를 가장한 키스와 엉덩이 터치를 비롯해서요.
지금까지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파타비 조이스가 저지른 성폭행 건수는 약 3만 건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며, 피해자 중 한 명인 쥬빌리 쿡은 이것이 보수적으로 잡은 수치라고 말하기도 해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파타비 조이스의 피해자들이 증언한 내용을 정리하면 그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제자들의 몸을 만졌고, 목격자도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에게 대항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파타비 조이스는 그 세계에서 '절대자'의 권위를 갖다보니, 수십 년 간 이러한 사실이 은폐된 것이죠. 실제로 초기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아쉬탕가 커뮤니티 내에서 큰 지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요가레터에서 소개했던 이름 난 아쉬탕가 티쳐 키노 맥그레거 역시, 한 발 늦게 피해자들에게 사과문을 쓰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습니다.
우리는 메신저를 암살하려고 함으로써 아쉬탕가를 보호할 수 없습니다 (...)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피해자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학대를 조장한 데 대해 지지와 사과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자기 성찰에 참여하고 미래에 어떤 형태의 성적, 신체적, 영적 학대를 피하기 위해 우리의 아쉬탕가 문화가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 자문해야 합니다. // 그레고르 마엘, 호주 출신의 아쉬탕가 공인티쳐였던 그는 1999년 자발적으로 아쉬탕가 커뮤니티를 떠났다.
그러나 2018년,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아쉬탕가 위의 비디오 영상에서 데모를 할 정도로 높은 레벨의 공인 선생님으로서 11년간 아쉬탕가 요가를 수련했던 카렌 레인이 #metoo 의 일환으로 증거사진을 첨부하며 피해 사실을 폭로한 것입니다. "아쉬탕가를 잘 몰라서, 요가 문화를 오해해서" 그렇다며 피해자를 비난하던 목소리가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카렌의 발언 이후, 대를 이어 아쉬탕가 요가를 이끌어가고 있는 샤랏 조이스에게는 할아버지 대신 해명하고 사과하라는 청원이 빗발쳤습니다. 오랜 시간 침묵하던 그는 피해자의 첫 공개 증언이 있었던 2010년으로부터 9년이 흐른 2019년에야 사과의 뜻을 전했습니다.
이후, 전통적이고 보수적이었던 아쉬탕가 요가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샤랏 조이스는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 운영되던, 오랜 시간 아쉬탕가 요가의 정체성 그 자체이던 마이솔 샬라를 나와 자신의 이름을 건 센터를 열구요. 전 세계 많은 요가원과 그 제단에서 파타비 조이스의 초상화가 사라졌고, 일부는 그를 존칭으로 부르는 것을 멈췄습니다.
몇몇 요가원에서는 위와 같이 수업 시 핸즈온을 해도 괜찮은지 묻는 "동의 카드"도 도입되었습니다.
핸즈온을 가장한 성추행도 있었지만, 과도한 핸즈온 때문에 부상을 입는 경우도 비일비재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당사자가 사망해 처벌을 받지는 못했지만, 오랜 시간 '구루'의 명 아래 관행으로 여겨지던 일들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비크람 요가'를 아시나요? 우리나라에선 아마 '핫 요가'란 이름이 더 익숙하실텐데요. 미국에서는 2000년대, 그리고 세계적으로는 2010년대부터 유행하던 요가 스타일이었습니다.
비크람 요가는 1946년 인도 출신 초우두리 비크람이 자신의 성을 따 창시한 요가로,
온도가 41도로 맞춰진 방에서 26개의 아사나를 90분간 수행하는 요가입니다.
원래 인도에서 보디빌딩과 스턴트맨으로 일하던 초우두리 비크람은 본인이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26개의 아사나'를 미국으로 가져왔습니다. 기존의 요가원과 다르게, 바닥에는 카펫이 깔려 있고 사방은 거울로 꾸며진 방에서 수영복을 입고 수련하죠.
이런 특이한 형식은 북미에서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어요. 한 번 듣는데 만 달러가 훌쩍 넘는 비크람 요가 지도자과정과 워크숍, 그리고 지도자과정을 수료한 사람만 열 수 있는 비크람요가원 프랜차이즈 비즈니스는 번창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베벌리 힐스에 거대한 저택을 마련하고 클래식카를 종류별로 모을 정도로 부를 쌓은 자칭 '아메리칸 요기'로 수십년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올해 80세인 비크람은 본인에게 부와 명성을 안겨 준 미국으로부터 도망 쳐 해외를 전전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2013년부터 미국에서 그를 상대로 한 성폭행 및 성희롱 고소가 빗발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My way or High way (내 방식이 마음이 들지 않으면 떠나라), Trust the Process (과정을 믿어라)"
비크람이 자주 하던 말들이었습니다. 이런 말로 공고한 성을 쌓아올린 비크람 요가 커뮤니티 안에서, 최초의 증언자 세라 번 Sarah Baughn 이 피해사실을 폭로하고 고소까지 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비크람 요가 커뮤니티의 첫 반응 역시 아쉬탕가 요가 커뮤니티의 그것과 비슷했어요. 처음엔 피해자의 말을 믿지 않았고 비난했고 분노했죠.
세라를 뒤따라 용기를 낸 다른 피해자들도 직접 이름을 밝히고 나섰습니다. 그들은 모두 천 만원이 훌쩍 넘는 비용을 지불하며 호텔에서의 비크람 요가워크숍과 지도자과정을 들었던 학생들이었습니다. 검은색 삼각팬티를 입은 그는 학생들을 더듬는 것은 물론이고 호텔 방으로 영화를 보자며 따로 불러 마사지를 강권하고 강간했습니다. 피해자들은 2019년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비크람: 요가 구루의 두 얼굴> 다큐멘터리에도 다시 한 번 출연해 증언했습니다.
고소 진행 과정에서 26개의 아사나를 만든 사람 역시 그가 아닌 그의 스승 '비슈누 고시'였다는 점, 그가 우승했다고 주장하는 요가선수권대회는 애초에 없었다는 점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거짓말을 하고 성욕을 참지 않고 재물에 관해 과욕을 부리는, 그 어떤 측면에서 보더라도 요가 구루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곧 몇몇 피해자와 합의하고는, 금융 자산을 숨기고 미국에서 파산 신청 후 나라를 떠났습니다.
합의하지 않은 한 피해자에게는 당시 비크람의 재산 10분의 1에 해당하는, 7백만 달러(100억 가량)의 배상금 선고가 내려졌고요. 배상금을 갚지 못한 비크람의 미국 내 자산은 동결되었으며, 최근에는 롤스로이스, 벤틀리를 비롯한 그의 호화 자동차 컬렉션도 경매로 넘어갔다고 합니다. 많은 비크람 요가원은 '핫요가' 등 다른 이름으로 간판을 바꿨습니다.
그렇게 그의 비크람 제국은 한낱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듯 했습니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그는 아직도 제자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도망 중이긴 하지만 미국 정부로부터 형사 기소를 받지도, 범죄인 인도영장을 발부 받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홈페이지도 여전하고, 인스타그램에는 지속적으로 업데이트가 올라와요. 태국, 캐나다, 인도, 멕시코, 스페인에서 여전히 비크람요가 지도자과정을 팔고 있습니다.
프랜차이즈 요가원 운영을 위한 인가, 재인가 과정도요. 구글맵에 Bikram Yoga 를 검색하면 꽤 많은 스튜디오가 아직 그의 이름을 달고 영업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특정 요가 스타일을 브랜드화하고 자신의 강력한 지위를 이용해 성폭행을 저지른 구루는 파타비 조이스, 초우두리 비크람 외에도 더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요기 바잔 / 싱 칼사 (쿤달리니 요가), 존 프렌드 (아누사라 요가), 비베카난다 사라스아티 (아가마 요가) 등입니다. 스와미 사치난다, 암릿 데사이, 스와미 라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요가의 컬트적 요소를 연구하는 매튜 렘스키는 한 기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현대 요가는 카리스마 넘치는 남성 요가 교사들이 자신의 가르침을 영적으로 순수하다고 선전하다가 나중에는 학대를 받거나 자신의 멘토가 구루나 성자라고 믿는 학생들을 이용했다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강력한 수직 관계, 한 명의 권력자가 줄 수 있는 '자격'과 그에 따라오는 경제적인 유익, 그리고 추종자들의 침묵하는 문화까지. 비단 사이비 종교 뿐만 아니라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되는 요가 구루들에게도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입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 이후 아쉬탕가 요가와 비크람 요가를 수련하는 사람들에게서 관찰된 공통점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분노하고 절망하지만, 곧 고민하고 회복하고 정화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입니다. 일부 사람은 영원히 요가 커뮤니티를 떠나기를 선택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수련 스타일을 바꿨고요.
그렇지만 '목욕물에 아기를 버리지 말라'라는 말도 자주 나왔습니다. 지도자의 잘못된 행실 때문에, 이 요가가 내 인생에 가져온 신체적/정신적 유익을 잊지 말자는 뜻이지요.
이처럼 자신만의 아쉬탕가 요가를, 자신만의 비크람 요가를 재정의하는 것은 남겨진 수련자들의 몫입니다. '이런 역사가 있는 요가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수련해야 하는가? 나는 어떻게 이 수련을 이어가면서도 피해자와 연대할 수 있나? 학생들을 가르칠 땐 어떻게 무엇을 얼마나 공유해야하는 걸까?' 등등... 다양한 질문을 떠올리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구루'의 엇나간 행동이 미래의 제자들로 하여금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선택의 기로에 서게 만든 것입니다.
이번 호를 작성하면서 특별히 많은 질문이 머릿 속에 떠올랐습니다. 현대 요가에서 구루의 역할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요? 왜 이런 일은 반복되는 걸까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잘못된 '구루들'의 행실을 낱낱이 조사해 이렇게 글로 널리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가를 좋아하는 마음에 가려 빠지기 쉬운 함정과 그런 위험으로부터 어떻게 스스로와 서로를 지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여러분과 함께 얘기하고 싶습니다. 파타비 조이스에 의한 성폭행 피해자 카렌 레인과 쥬빌리 쿡이 요가인터내셔널에 함께 기고한 글 '요가나 영적 공동체 내에서 성적 학대에 대응하는 방법'의 요약을 공유하며 오늘의 레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1. 커뮤니티 외부의 전문가로부터 교육을 받으십시오.
2. 성폭력에 대해 알아보세요.
3. 생존자를 지원하고 추가적으로 트라우마를 유발하거나 강간문화를 지속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대화하세요.
4. 책임감을 가지세요.
5. 조직의 단점을 이해하고 해결합니다.
6. 추가적인 성적 학대를 예방하고 도움이 되는 정책과 관행을 설계하십시오.
7. 가용한 자원을 활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