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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미의 colorful life Oct 10. 2021

안타깝지만, 냉골에서 사세요

어둠과 먼지의 집

추우면 추운 데로 사시라


바닥 난방이 1/3만 된다고 집주인에게 이야기했다. 집주인은 단정하지만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이번 거래는 매매와 전세계약이 동시에 진행됐는데 전 주인에게 그런 이야기는 들은 바가 없다는 것이다.


전기 한도를 높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단다. 집에 방문해서 확인을 해 달라고 했지만 조치할 수 있는 게 없는데 살펴보는 게 의미가 있냐고 한다. 안타깝지만 온풍기나 난방 텐트라던지 보조 난방기구를 가지고 겨울을 나면 될 것 같다는 이야기.


그리고 본인도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평수가 넓어서 난방을 거의 안 한다고 이야기했다.  수 있는데 안 하는 것과 못해서 안 하는 것은 다르다. 전세계약은 2년이었다. 4월인데 벌써 다가올 겨울이 걱정이었다. 북동향이라 4월에도 몹시 싸늘했다. 낭패였다.






집먼지 진드기와의 싸움


평소에 호흡기 질환이 없었다. 그리고 알레르기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사 온 지 얼마지 않아 자고 일어날 때마다 매캐한 냄새를 맡게 되었다. 마치 도서관 먼지와 같은 냄새였다. 집을 구경할 때는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몰랐던 냄새였다. 내가 예민한 거라고 처음에는 생각했으나 가족들도 그 냄새를 맡았다.


집을 자세히 보니 예전 세입자가 두고 간 '물먹는 하마'가 눈에 띄었다. 꿉꿉한 집이었다. 창문이 손바닥만큼만 열려서 하루 종일 창문을 열어도 환기가 되지 않았다. 북동향이라 그런지 햇빛도 잘 들지 않았다. 동이 트는 새벽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집이 어두웠다.


이상하게 안방에 갈 때마다 기침이 났다. 결국 안방에 갈 때마다 마스크를 쓰게 됐다. 그리고 이부자리를 거실로 옮겼다. 안방은 창고가 되었다. 회사에 와도 호흡이 편치 않아 숨을 가쁘게 쉬었다. 호흡을 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등짝이 아팠다. 이사 온 지 일주일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호흡기내과에 갔다. 선생님께서 알레르기 검사를 하더니 집먼지 진드기 알레르기가 있다고 했다. 알레르기가 하나도 없는 줄 알았는데 집먼지 진드기 알레르기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천식이 의심된다며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만 보면 비염과 천식이 원래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고 했다. 경과를 지켜보고 대학병원에 가야 될 수 있다며 약을 주었다.


환경이 최근에 바뀐 적이 있냐고 여쭤 보셨다. 이사를 간지 며칠 만에 이렇게 됐다고 말씀드렸다. 그렇다면 지금의 증상과 그 집과의 관련성은 꽤 높을 거라고 이야기를 하셨다. 하지만 그 관계를 증명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했다. 집이 여러 채가 있는 집주인이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고 눈 하나 깜짝하겠냐는 것이다.



NO Problem ! Not my Prolem !


집주인에게 문자를 했다. 2~3일 동안 답이 없었다. 마음 단단히 먹고 전화를 했다. 당황스러운 목소리였다.


"그래서 어떻게 해 달라는 거죠? 나한테 원하는 게 뭔가요?"


원하는 게 뭐냐니. 나는 왜 집에서 먼지 냄새가 나는지. 곰팡이나 집먼지 진드기는 없는지 등 진단을 원했다. 그러니 결국 그 비용은 누가 부담하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빠진 건강과 집 문제를 어떻게 결부시킬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원래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인지 어떻게 아나요? 예전 집에서 집먼지 진드기를 가져온 것이 아닌가요?"


"그렇게까지는 이야기하지 마시죠."


마음이 늘하게 식었다. 한 줌의 인류애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원래는 폐기능이 비슷한 나이의 평보다 104% 정도 좋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사온지 고작 10일째였다.


"예를 들어 화장실 고장이라던지 물리적인 문제가 있으면 모르겠지만 공기의 질 같은  문제는 제 알바가 아니에요."


No problem은 Not my problem이라는 뜻이다.
너의 문제지 나의 문제는 아니야.


하지만 바닥난방이 되지 않는 물리적인 문제가 있을 때에도 조치를 취해준 것은 없었다. 결국은 비용을 부담하기 싫다는 것이다.

호흡기 질환은 점점 심해졌다. 평생 한 번도 앓아 본 적이 없던 인후염도 생겼다. 문제가 있었다. 이사를 가야겠다. 부동산에 연락을 하고 싶지 않지만 집주인도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부동산에 연락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결전의 날이 밝았다. 회사 동료에게 오늘이 결전의 날임을 밝혔다. 혼자 부동산으로 가는 게 두려웠다. 회사 동료분께서 흔쾌히 함께 가 주신다고 하셨다. 공인중개사와 이야기 중간에 언성이 높아졌지만 우선 더 이상의 복비는 더 받지 않고 집을 최대한 빨리 빼는 걸로 했다. 비밀번호를 알려 줬다. 그 와중에 집주인은 전세 올리더라. 한 달 만에 집 나갔다.


다시 남동향의 집



수백만 원을 들여서 남동향의 집으로 다시 이사를 했다 커튼을 열면 따뜻한 햇살이 내 몸을 감쌌고, 창문이 커서 환기도 잘 됐다. 이 집에서 몇 개월 살면서는 별 문제가 없다.


소소한 문제가 있었지만 상식적으로 해결되었다. 창문의 달그닥거림이 있어서 집주인에게 말을 했더니 매매계약이 진행 중이였는데도 수리비를 지원해주었다.


부동산 공인중개사도 좋은 분이었다. 전 세입자가 전출 신고를 하지 않아 전입신고가 되지 않자 일이 원활히 처리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전세보증보험 가입 후 집 매매가 진행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자연스럽게 건강을 회복한 것은 물론이다.

후유증


후유증은 남았다. 침대에 누워 있는데 다리가 간지러웠다. 매트릭스 청소 업체를 불렀다. '어둠과 먼지집'에서 집먼지 진드기가 옮겨온 것이 분명했다. 업체에서는 강력한 청소기를 사용해서 빨아들인 먼지를 보여 줬다.


육안으로 보기엔 그냥 먼지로 보였지만 확대해서 본 먼지에는 집먼지 진드기 알까지 있었다. 구역질이 나왔다. 소파는 버렸다. 집먼지 진드기 전용 세탁세제와 알레르기를 완화시키는 제품, 침대 커버 등을 구입 했다. 그리고 지금은 많이 나아진 상태이다.






궁합이 맞지 않는 집


왠지는 잘 모르겠지만 궁합이 맞지 않는 집 있는 것 같다. 그 집도 알레르기가 없는 사람이 산다면 그럭저럭 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중창이 아니기 때문에 길가의 자동차 소음은 견뎌야 되겠지. 그리고 여름이면 덥고 겨울에는 춥게 지내면 될 터이다. 이것도 온도 조절력이 있다면 살아지겠다. 


글을 쓰면서 느낀 건데 아직도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것 같다. 마음이 괴롭다. 단지 그 집에는 한 달 하고 조금 더 넘게 있었을 뿐인데 많은 일이 벌어졌다. 또 다른 에피소드도 있었다. 집에서 방충망이 떨어진 것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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