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셋과 지구별 여행 중
주말에 아이들과 집에서 월남쌈을 먹었다.
야채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라이스페이퍼에 야채를 넣어 소스에 찍어먹게 하면 거부감 없이 잘 먹기 때문에 집에서 종종 해 먹는다.
전에는 내가 싸서 먹여줬지만 이번에는 아이들에게 싸서 먹어보라고 했다.
셋째는 라이스페이퍼에 땅콩버터만 발라 먹었고
둘째는 라이스페이퍼 한 입, 야채 한 입. 이렇게 따로국밥도 아닌 따로월남쌈으로 먹었다.
월남쌈을 좋아하는 첫째는 심혈을 기울여 라이스페이퍼에 재료를 차곡차곡 모아놓고 싸기를 시도했다.
나는 당연히 잘 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얇고 부드러운 라이스페이퍼는 잘 찢기고, 밖으로 내용물들이 줄줄 흘러나왔다.
첫째의 입에서 나오는 말
-망했다!
나도 가끔 사용하는 이 말이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걸 보면 가만 넘어갈 수가 없다.
-왜 처음부터 잘 될 거라고 생각했어?
넌 오늘 처음 싸 먹는 거니까 안 되는 게 당연하지. 엄마는 월남쌈을 여러 번 먹었는데도 터질 때가 많은걸. 지금도 엄마 월남쌈을 봐. 예쁘진 않지? 이것도 아주 많이 연습해서 이렇게 된 거야. (그런데도 마음에 드는 월남쌈을 아직도 만들 수 없지.)
터지면 왜 터졌는지 생각해 보고 다음에 쌀 때 조심하면 되는 거야
성공이 기본이 아니라 실패가 기본이야.
성공하려면 이렇게 터진 월남쌈을 많이 많이 만들어야 봐야 안 터진 월남쌈을 먹을 수 있어!
그런데 내가 못 만든다고 포기하면 영원히 예쁜 월남쌈은 먹을 수 없어.
아이한테 이렇게 말하고 나면, 괜히 내가 가식적인 사람이 된 것 같다.
나도 '망했다'라는 말을 안 쓰는 것도 아닌데, 말하는 모습은 마치 성인군자 같다.
완벽하지도 않은 내가 그런 말을 하니 어딘가 어색하고 불편하다.
그래서 아이들은 부모를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늘 옳은 말을 하니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아이한테 하는 말이 사실은 나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구나.
아이는 모르지만 나는 아니까.
모르는 아이한테는 알려주는 것이고,
나는 알면서도 못하고 있으니, 나에게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야지. 환경을 생각해서 아껴 쓰자. 책 읽어야지, 골고루 먹어. 일찍 자. 등등은 내가 결혼 전에는 내 입 밖으로 나온 적이 없던 말들이었다.)
아이를 키우면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많이 느낀다.
말은 항상 좋다. 하지만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걸까?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
그렇지만 말의 힘은 이럴 때 생기기도 한다.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스스로를 다 잡고,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게 행동하고 싶어 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