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지 말자, 다른 건 몰라도 이건 후회할 것 같으니까
서른이 되고 나서 느낀 점은 괜히 마음이 조급해진달까 결혼도 해야 할 것 같고, 임신, 출산, 육아 등 지금 내가 고민할 필요가 없는 키워드들이 여기저기서 흩뿌려지는 느낌이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이런 기분 아닐까.
아무튼 나에게 서른은 좀 뜬금이 없었다. 어랏? 하는 사이에 찾아왔고, 어린 시절 생각했던 이상적인 서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래서 또 돌고 도는 고민만 하다가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에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고, 새치가 한가닥 났다.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지만 솔직히 뇌는 어디 한편에서 스위치를 껐다. 생각하는 데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산다는데 그게 뭐가 나쁜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불과 6개월 전쯤엔 그랬다.
지금은 무엇이 달라졌는가 하고 묻는다면, 사실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다만 고민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는 것과 나의 최선은 있겠지 하며 마음을 비우는 요령이 생겼달까.
이것도 늘 되는 것이 아니지만 전보다 차분해졌다. 사람이 지옥을 여러 번 갔다 오면 평화로운 일상에 감사하게 된다는데 내가 딱 이 케이스이다.
나의 최선이 누군가에겐 차악도 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처럼 그들도 받아들여야지. 뭐 이건 내 바람이지만 이러든 저러든 괜찮다.
나는 더 이상 일상을 지옥같이 보내기엔 똑똑해졌고 그 어떤 것도 나의 지옥보다는 별게 아니라고 여긴다. 때로는 내 의지와 달리 호르몬에 지배당해서 시들해지기도 하겠지만 그것도 괜찮다. 아무튼 나는 살아 있을 테니까 다시 원래 컨디션을 되찾겠지.
내가 나를 모르는데 과업에 집착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올해는 정말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한 해를 보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것은 참을 수 있고, 어떤 것은 참기 어려운지, 나의 숨어 있는 욕구는 무엇인지, 오늘 기분은 어떤지,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과 있을 때 편안한지, 어떤 사람과 있을 때 기빨리는지, 나의 영양상태는 어떤지, 뭘 할 때 행복한지.. 등등
질문이 아주 한가득이다. 글을 쓰며, 끊임없이 찾고 찾을 테야. 가끔 내가 쓴 글을 읽어보면 다른 사람이 쓴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하는데.. 아마 무의식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맞거나 말거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정말이지 과업에 치여서 ‘나’를 잃어버리는 과오는 저지르지 않겠다.
내 인생은 한번뿐이고, 나 아닌 다른 것들에 휩쓸려서 흐릿해지기엔 너무 아깝다. 아주 미세하지만 멈추지 않고 나아지는 나를 응원한다.
‘조금씩이지만 매일 선명해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