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화에서는 2021년에 있었던 안타깝고도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학생과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교사로서 많이 성장할 수 있었고, 2022년에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2022년, 저는 중학교로 학교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제가 담당한 반에 21년과 같이 모든 선생님들이 지도하기 어려워하는 학생이 배정되었습니다. 그 학생은 여학생이었는데, 2021년에 만난 학생과 비슷하게 학교 교칙이나 사회적 규범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의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며 살아가던 친구였습니다. 학기 초에는 학교에 잘 나오다가 3월이 지나 4월이 되면서 지각과 결석이 잦아졌고, 부모님과의 관계, 친구들과의 관계도 점점 악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어떤 관심을 두지 않고 학교에서의 배움에 대한 기대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교사에게 대들거나 무례한 행동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2021년도의 아쉬운 기억이 떠올랐고, 이번에는 꼭 이 학생을 졸업시키고 방황하는 모습을 바로잡아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 주리라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각하거나 결석할 때마다 꼭 전화와 문자를 통해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표현 했고, 어머니와도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늦더라도 꼭 학교에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학교에 나오긴 했지만, 성실히 공부하거나 이미 끼리끼리 친해져 버린 친구들 사이에서 잘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렇게 다시 결석하기 시작했고, 졸업에 필요한 출석 일수가 부족해질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학생과 진지한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물으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학생의 휴대전화로 반복적으로 걸려오는 전화를 보게 되었고, 누구냐고 묻자 남자친구라고 대답했습니다. 상담 중이라 전화를 받지 못하게 했지만, 이후 대화에서 남자친구가 B(그 학생)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 않고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B에게 그 친구를 가능하면 멀리하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남자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는 "왜 알지도 못하면서 내 여자친구에게 만나지 말라 하느냐"라고 따져 물었습니다. 저는 "졸업 출석 일수도 부족하고 학교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라 설명하며, 선생님에게 그런 말투로 갑자기 전화를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는 사과하며 전화를 끊었지만, 이 일을 계기로 B의 상황이 더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에도 B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지만, 학업중단숙려제라는 제도를 통해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진지한 고민의 시간을 제공했습니다. 학업중단숙려제가 끝난 후 학교로 돌아왔을 때는,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반 친구들과 함께 학교 근처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으며 교우 관계를 돕고자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 또다시 B의 남자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선약이 있었는데 제가 B와 시간을 보낸 것이 불만이라며, 이번에는 욕설과 함께 다음 날 친구들을 데리고 학교로 찾아가겠다는 협박을 했습니다.
순간 화가 났고, "그럼 꼭 학교로 찾아오라"라고 말했지만, 다음날 출근길에 생각해 보니 혹여 그 학생이 학교에 찾아와 험악한 상황을 만들면 다른 학생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장 선생님께 그간 있었던 일들을 설명드렸고, 학생부장 선생님과 함께 대책을 논의했습니다. 하교 시간에 맞춰 스쿨 폴리스 경찰관이 교문 앞에서 순찰을 돌고, 학생부 선생님들도 주변에서 대기했습니다. 결론적으로, 그 학생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후 그 학생이 다니는 학교로 연락해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그날은 그 학생이 중요한 재판에 참석해야 하는 날이라 학교에도 오지 않았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그 학생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일이 일단락된 후에도 저는 B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B가 학교에 무단결석을 하려고 하면 마치기 전에 잠시라도 들르게 하고, 결석이 아닌 지각으로 처리하여 출석일수를 겨우 채워가도록 도왔습니다. 그렇게 지각과 결석, 조퇴가 반복되던 나날 속에서 졸업까지 충족해야 하는 출석일수가 단 하루 남은 상태로 학년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진학 상담 중, B가 수행평가도 하지 않고 지필평가 점수도 낮아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B의 성향과 학습 태도를 고려할 때, 인문계보다는 적성에 맞는 특성화 고등학교가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여러 학교를 조사한 끝에, 메이크업학과가 있는 한 특성화 고등학교를 추천했습니다. 그 학교는 학력 인정 학교로 등교 시간이 오후라 B에게 잘 맞았고, 자격증도 취득할 수 있는 등 여러 조건이 긍정적이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B가 화장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학교에 전화를 걸어 B의 출결 상태와 성적을 설명하며 합격 가능선을 문의했고, 면접을 통해 학생이 열심히 다니겠다는 의지가 있으면 긍정적인 상황이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이후 B와 함께 모의 면접을 준비했고, 면접 당일이 되어 교복을 단정히 입혀서 조퇴시키고 면접에 보냈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B에게서 들뜬 목소리로 연락이 왔습니다. "합격" 소식을 전한 것입니다. 물론, 제가 미리 학교와 통화해 두었지만, B에게는 난생처음 뭔가를 스스로 준비해서 얻어낸 결과였을 것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고, 이를 계기로 B는 남은 기간을 성실히 다니고 졸업하기로 결심한 듯 보였습니다. 그 이후 학교도 잘 나오고, 표정도 밝아지며 고등학교 생활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졸업식 날, B는 어머니와 함께 단정한 교복 차림으로 졸업식에 참석했습니다. 졸업장을 받은 후, 저에게 꽃다발을 건넸습니다. 다른 학생들이 준 꽃과 편지도 감동적이었지만, B가 준 꽃다발은 제가 그동안 쏟았던 노력과 애정을 되새기게 하며 더욱 큰 뿌듯함을 안겨주었습니다.
졸업 후, 다음 해 스승의 날에 B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찾아뵙고 싶지만 학교 일정상 못 찾아간다며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학교에 잘 다니고 있고 자격증도 취득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B의 목소리에서는 밝음과 자신감이 느껴졌습니다. 그 통화를 통해, 비록 힘든 시간이었지만 정말 보람 있는 일을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만날 학생들에게도 더 애정을 갖고 잘해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2021년에 제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던 사건에 대한 마음의 짐도 조금 덜 수 있었습니다.
친구 관계나 가정에서 충분히 보살핌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학생들은 대부분 세상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며, 삶에 대한 기대를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 교사는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되며, 그러한 학생들을 지켜주고 방황을 바로잡아 줄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남은 교직 생활에서 만나게 될 학생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