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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moiyaru Jun 16. 2022

'애정결핍'인 나를 인정하는 것

나는 내 성격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느껴왔지만, 주변에 당당히 그런 말을 하지는 못했었다. 오히려 어릴 때에는 내가 이상하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서 성격이 좋은 척 연기를 하고 밝은 척 연기를 하기도 했다. 지금 나에게 내 밑 낯을 모두 드러낼 수 있는 속 깊은 친구가 몇 없다는 것을 보면 나는 꽤나 오랜 시간 내가 아닌 '가면을 쓴 나'를 연기해오며 사람들과 지내왔던 거였다. 가면을 쓴 상태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도 힘들지만, 가면을 쓴 상대와 오랜 시간에 걸쳐 연을 이어간다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 심리학 책을 읽다 보니, 몸은 이미 성인이 되었지만 마음은 어린이 상태로 남아있는 어른들이 세상에는 꽤 많다고 한다. 나 또한 그런 어른이 중 하나이다. 어려서부터 감정 기복이 큰 부모의 밑에서 온전하고 평온한 사랑을 받지 못한 채 불안함 속에 큰 나는 '애정결핍'의 증세를 갖고 있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혼자서 잘 지내다가도 누군가 마음이 가는 상대가 생기거나 의지할 대상이 생기면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맞춘다거나 심하게 의존하려 든다. 또, 마음이 커질수록 집착하고 소유하려는 경향도 강해진다. 더 이상 상대에게 의존을 못할 거 같거나 거부당할 것 같으면 그 관계 자체를 회피해버리기도 한다.


이런 과거의 나의 행동들에 대해서 나는 수도 없이 나를 질책하고 탓했었다. 왜 나는 이럴까, 왜 나는 이런 성격이고 왜 이렇게 못났을까, 이런 나를 과연 누가 사랑해줄까, 난 사랑받을 수 없을 거야 등등, 남들과는 다른 성격을 갖고 남들과 다르게 반응하고 행동하는 나를 나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던 때도 많았다. 


하지만, 정신과에서 상담도 받고 많은 심리학 저서들을 읽어 내려가다 보니 나의 이런 성격은 나 자신의 문제가 아닌 주변 환경에 의해 형성된 것도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책에는 어린 시절 심리적으로 궁핍한 가정에서 태어나 안정감 있는 심리상태를 가지지 못한 채 자란 나에게 평온하고 따스한 가정에서 온전하게 사랑받고 자란 친구와 똑같은 감정선이 있다는 것이 애초에 말이 안 된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이 부분이 너무 공감이 되었다. 나는 집에서 뭔가를 한다고 할 때 내 의견이 무시당하거나 거부당한 경험이 많았는데, 주변 친구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물어보면 그 친구는 똑같은 이야기를 부모님께 했을 때 아무런 거부를 당하지 않았고, 오히려 응원을 받기도 한다고 해서 굉장히 신기해하고 부러워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심리적 트라우마와 부정적 기운을 나에게 가감 없이 쏟아내던 엄마의 모습을 이제와 돌아보니 나도 어느새 그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가장 친하고 소중한 친구들에게 함부로 말을 할 때도 있었고, 그들에게 내 감정 기복과 부정적인 기분을 쏟아 내며 감정 쓰레기통의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고 바랬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던 모습을 결국은 그대로 내가 하고 있다니. 항상 언제 어느 순간에 화를 낼지 모르는 엄마의 밑에서 자라면서 불안한 상황 속에서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집에서도 눈치를 보며 살았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예민하고 민감한 성격유형으로 자랄 수밖에 없었다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지금도 엄마는 나보고 예민하다며 한소리를 할 때가 있다. 그 말을 들으면 이 성격이 도대체 누구 때문에 만들어진 것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인가? 하며 기분이 확 나빠지지만, 이제는 참아보려고 한다. 왜 나는 가족과 나눌 수 있는 대화가 고작 이런 대화뿐일까 싶어 씁쓸한 마음을 달래며 가능한 집에 있는 시간,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을 줄인다. 그게 내가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므로. 본인은 절대 본인의 성격에 이상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엄마에게 이런 말을 해봤자 씨알도 안 먹힌다는 것도 이제는 알고 있다. 


서로 사랑하고 이해받고 존중받기도 모자랄 가족이라는 사이에서부터 어긋나고 상처 나고 고통받는다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가혹하게 느껴질까. 이 혹독한 전쟁 같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지탱해줄 수 있는 따듯한 가정을 만들어야 한다. 나 또한 그런 가정의 일원이 되고 싶다. 내가 받지 못한 사랑을 나는 내 아이에게 아낌없이 주고 돌보며 '이 세상에 태어나 엄마를 만나길 잘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내 자식을 만난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야'하는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렇게 되기 위해 내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유해나갈 것이고, 그렇게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시점이 오면 나도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나만의 가정을 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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