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우주에서 각자의 빛으로 빛나고 있는 행성과도 같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사람 간의 만남은 너무 어려운 것 같다는 그런 생각.
어릴 때에는 친구를 사귀는 것보다 공부를 하는 게 더 어려운 일이었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공부를 하는 게 오히려 쉽게 느껴지고 친구를 사귀는 일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 나이가 들수록 어릴 땐 쉬웠던 일들이 반대로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영원할 것 같았던 친구와 멀어지기도 하고, 영원히 내편일 것 같았던 가족과도 사이가 소원해지도 하고, 사랑을 말하던 여러 인연들은 상처만을 남자 친구 채 떠나가는 경험들이 쌓이며 나는 한편으로는 성숙해졌고, 한편으로는 외로워졌다.
딱히 나의 주관이 없을 때에는 누구와도 쉽게 잘 지냈지만, 점차 나의 주관이 뚜렷해질수록 인간관계에 지치는 일이 많아졌다. 몇 년 전 나는 극강의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시절이 있었는데. 드넓은 이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며 뼛속깊이 고독감을 느끼며 주변인들을 많이도 괴롭혔었다.
밤에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아 몇 날 며칠을 친구들과 가족을 붙들고 하소연을 해댔다. 친구들과 가족들이 전화에 응해주지 않는 날들이 늘어가자 가슴이 뻥 뚫린 듯한 그 공허함은 연애로 불똥이 튀었다. 아무나 당장 외로움을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을 만나고 다니며 인스턴트식 연애를 반복했다. 하지만 그렇게 가볍게 이어지는 관계들로는 나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고독감이 제대로 채워지지 않았다. 뼛속깊이 자리하고 있는 외로움과 고독감은 무서우면서도 힘든 일이었다.
'정말 인생은 혼자구나..'라는 생각으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나를 떠올려본다.
나는 나의 빛을 내기 위해 그렇게 아팠던 것일까?
가수 아이유의 곡 중 '아이와 나의 바다'라는 노래에
'아이는 그렇게 오랜 시간 겨우 내가 되려고 아팠던 걸까'라는 가사가 있다.
이 가사는 나에게 존재했던 아팠던 과거를 떠올림과 동시에 지금은 그 고통에서 벗어나 그때의 나를 이해할 수 있게 된 두 가지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가사이다.
모든 행성은 저마다의 빛으로 빛나고 있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의 만남은 마치 광활한 우주 속에서 각자의 빛으로 빚어낸 각각의 행성 간의 만남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각자가 하나의 행성과도 같은 우리들은 서로 다른 색채를 띄고 빛을 내며 살아가고 있다. 드넓은 우주에서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행성들을 떠올리면 잘나고 못나고 없이 모든 행성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고 있는 듯 느껴진다.
사람 역시 인생을 살아가면서 울고 웃는 다양한 경험들을 하게 되고 그 안에서 나만의 삶의 모습을 신념이라는 이름으로 새겨 나가게 된다. 마치 행성에 풀과 나무와 생명체가 각각의 모습을 띄며 하나둘 자라나듯이. 어떤 행성에는 생명체가 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물과 공기가 있을 것이지만 어떤 행성은 각박한 돌덩이들만 가득할 수도 있다.
그렇게 나는 과거의 만남들에 대하여 행성 간의 만남에 빗대어 생각해 보았다.
누군가가 내뿜고 있는 빛에 반해 그 행성에 돌진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두 행성은 충돌하고 상처만 남았던 기억도 있다. 어쩔 때에는 멀리서 나는 그 황홀한 빛에 속아 가까이 다가갔지만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그 안은 텅 비고 메말라 있는 상태인 행성도 있었다.
나는 마침내 30대 중반이 되어, 나는 나와 비슷한 색을 띠는 행성을 발견했다.
화려하게 내 눈을 사로잡는 행성은 아니었지만, 확실하게 자기만의 빛을 내고 있는 그게 너무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아 다가오는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는 호기심이 들게 만드는 행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와 비슷한 색채를 띄고 있는 그 행성을 바라보며 나는 흥미로웠다.
그렇게 우리는 이 넓은 세상 속에서 서로를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