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moiyaru Sep 11. 2024

서로를 끌어안다 Part.2

그와의 마지막 인연 혹은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는 중대한 세 번째 만남.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첫 만남에서의 그는 참 딱딱한 사람이었다. 

표정에서부터 자세까지 힘이 잔뜩 실려있는 느낌이라 그 모습이 조금은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아랑곳 않고 나는 나대로 그를 마주했고, 그의 있는 모습 그대로로 받아들였다.


세 번째 만남이 성사되기까지 총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 그 사이 주선자로부터 결과를 궁금해하는 연락이 있었다. 까다롭고 딱딱한 그와 잘 만났는지, 불편한 건 없었는지 등 여러 가지가 궁금한 눈치였다. 주선자 커플은 이미 그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나와 친분이 있던 여성분과는 거의 말을 10마디도 안 나눴을 정도로 워낙 과묵하고 말이 없어서 소개팅에서도 말을 안 했을까 봐 걱정을 했던 것 같았다.


"그분 말이 많이 없지 않아요?"


라는 질문에 나는 대답했다.


"네?"

"말이 없다고요?"

"말 엄청 많던데요...?? 수다맨이에요.."


사실이었다. 나도 처음 그를 보고 나서는 굉장히 딱딱한 사람일 거라 느꼈었는데 내 앞에서 그는 정말 말이 많았다. 말장난을 치는 개그코드도 잘 맞아서 나는 그 의 한마디 한마디에 빵빵 터지는 일이 많았다. 그와의 대화는 늘 유쾌하고 즐거웠다. (흠... 근데 지금은 왜 그렇게까지 재미를 못 느끼게 된 거지...?)


주선자는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 


"그래요?? 00 씨가 엄청 마음에 들었나 보네요! 그분 원래 말이 없어요ㅋㅋㅋ"


내가 봐왔던 사실과 놀라울 정도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주선자의 말에 '뭐지? 같은 사람 맞아?'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뭐가 진짜 모습인거지?' 나는 곧 세 번째 만남을 가질 예정이라고 말을 했고 아직 그의 마음은 모르겠으며, 결과가 잘될지 안될지도 잘 모르겠다. 나는 그에게 호감이 있기는 하다. 정도의 이야기를 했다.




D-Day


나는 그의 집 근처에 약속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그는 여전히 집 근처에 갈만한 식당 정보도 알아보지 않은 채 나를 마주했다. 

(이런 포인트들이 그가 나에 대한 호감이 전혀 없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식당도 안 골라놨냐고 묻자 나를 만나서 뭘 먹고 싶은지 물어보고 정하려고 했다는 정말 '그 다운' 답변을 하기에 알겠다 하고 번화가로 향했다. 번화가에 있는 적당한 고깃집을 골라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눴다.


평소처럼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도 하며, 음식이 생각보다 맛있었어서 매장을 잘 고른 거 같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와의 연애 전에는 '그 다운' 이런 모습들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내 연인도 아닌 그에게 크게 기대하는 면도 없었고,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도 무료한 일상에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이 추가되었기에 거기에서 오는 즐거움에 만족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날은 밥을 먹으면서 나는 오히려 이성적인 질문에 대해 일절 하지 않았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마지막이 될 수 있기에 상대방의 이성적 취향이 궁금하지 않았고,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저 눈앞에 놓인 맛있는 밥과 나와 다른 분야의 새로운 사람과의 대화에만 집중했다.

요즘 30대 중후반의 남성은 어떤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포커스를 맞추며 대화를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대화를 잘하고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나는 삼세번은 만나야 한다라는 그의 말을 충족시켰기에, 이 만남에서 내가 할 도리는 다 했다는 생각이었다.

지금 이 관계가 끝이 나더라도 아쉽긴 하겠지만 크게 미련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의 차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때, 그는 갑자기 차밖으로 나가더니 트렁크에서 꽃다발을 가지고 나왔다. 꽃다발을 사본 게 언제 적인지 모르겠다며 뻔할 수 있는 달디단 말 한마디 없이 로봇같이 딱딱한 표정으로 '그 답게' 꽃다발을 전해줬다. 


나 : "... 이게 다예요??"


이렇게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꽃다발 전달식은 내 인생에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 : "그럼 준비했어야 돼??"

나 : "아니~... 무슨 말이 있어야 할 거 아니에요..."

그 : "아.. 아 뭐 오늘부터 1일 하자 이러면 되나?"


정말 무드가 없어도 너~무 없다. 지금 생각해 봐도 참 별거 없는 고백이었던 것 같다.


무드도 무드지만 나는 그에게서 '감정'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었기에, 이 사람이 나를 진짜 좋아해서 고백을 하는 게 맞나? 사귀고 싶은 게 맞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는 나에게 일절 스킨십도 하지 않고 설레하는 모습도 보이 지를 않았기에 살짝 고민이 되었다.


그렇게 그를 테스트하는 질문을 여러 번 했는데 그의 대답은 한결같이 '너와 만나보고 싶다'로 귀결됐다.


'그래. 뭐 그렇다면 이런 남자도 한 번 만나보지 뭐.'


모험심이 강한 나는 쉽게 생각했다. 여태껏 내가 만나보지 않은 유형의 남자라 호기심이 발동한 것도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외적으로도 스타일이긴 했기에 굳이 사귀어보지 않을 이유도 없긴 했다. 조금 더 간을 보고 튕겼어야 했나? 싶기도 하지만 애초에 그런 여우짓을 잘 못하는 타입이라 나는 '내 모습' 그대로 그를 받아들여 보기로 했다.


하나하나 잘 맞는 것만 가득하던 시절. '어떻게 이런 사람을 만났지?' 하며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외치던 시절. 서로의 말 한마디에 빵빵 터지던 시절.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로를 마주하던 시절. 


불과 100일 전의 우리의 모습이 그러했다.


 

이전 03화 서로를 끌어안다 Part.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