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끝나간다 (1)

by OMOZ



보도블록 위 뜨거운 볕에 지렁이가 타 죽은 흔적은 이제 다 사라지고 떨어진 잎사귀들이 밟힌다. 그리고 스멀스멀 구릿한 냄새가 올라온다. 은행나무 열매가 터져 자신의 체취를 뿌리고 있다.

“야, 어디 가냐?”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이레다.

“집”

“집? 나랑 놀러 갈래?”

“집 갈래”

“왜 뭐 할 거 있어?”

원하는 대답이 안 나와서 실망한 눈치다.

“없어”

나는 정말로 집에 가고 싶었다. 조용히 홀로 걷는 하교 시간이 좋았다.

“그럼 가자”

“싫어”

“쳇 그럼 가라”

이렇게 얘기해도 이레는 다음날이면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웃으며 다가오는 걸 알기에 아무렇지 않다.

다시 가방 어깨끈을 잡고 걷는다. 따뜻한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파고든다. 챠르르 잎사귀가 서로 부딪히고 가지끼리 부딪혀 툭툭거린다.


***


앞에 이레가 보인다. 저번 주와 같은 요일, 같은 시간이다. 갑자기 이레가 뒤를 돌아본다. 나를 보더니 눈이 커지면서 반가운 듯 서운한 듯 말을 건다.

“야! 왜 아는 척 안 해?”

“왜 아는 척을 해야 하는데?”

“너무하네”

이레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당황스러웠다. 지금껏 내가 무슨 대꾸를 해도 괜찮았는데 오늘 굉장히 실망스러웠나 보다. 아니면 무슨 일이 있었거나. 귀찮은 걸 싫어하지만 이대로 가기엔 마음이 불편하다.

“미안 혼자 집에 가는 게 좋아서 아는 척 안 했어”

“혼자 가는 게 좋아?”

이레는 울먹이면서 물었다.

“그냥 조용히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갈 수 있으니까”

“뭘 구경하는데?”

“여기 나무나 햇볕이나 참새 등등”

어느새 이레의 눈물은 들어갔고 나란히 걷고 있다. 나는 덧붙였다.

“은행나무잎이 자라는 거 본 적 있어? 진짜 귀여워 처음에 작았다가 점점 커진다. 그리고 은행잎 색이 변하는 것도 신기해 처음에 진한 초록색이었다가 연두색으로 바뀌고 나중에는 노란색으로 변해! 햇살이 나뭇잎을 비출 때 빛깔이 더 살아나서 아름다워 나는 특히 맑은 연두색, 그 색을 좋아해 햇살이 내 얼굴이나 손에 닿을 때면 따뜻하니까 고개를 움직여보기도 하고 손을 쥐었다 폈다 해보기도 해”

“듣고 보니까 너의 세상을 엿보는 거 같아”

이레가 눈을 반짝이며 쳐다봤다. 나도 모르게 볼이 달아올랐다. 내가 말이 없어지자 이레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가끔은 나랑 같이 가줘”

“알았어”

왜 그랬는지 함께 놀자는 제안을 더 이상 거절할 마음이 없어졌다. 평소보다 더 환하게 웃는 이레에게 아까 왜 울었는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나는 심심해 혼자 걸어가는 거 싫어”

나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뭔가 마음이 허해 나만 혼자인 거 같고 다른 사람들이 웃으면서 다니는 거 보면 부러워”

우리는 사뭇 다른 풍경을 보고 있었던 거 같다.


***


이레가 우리 교실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그날 이후로 일찍 끝나는 사람이 늦게 끝나는 사람 교실 밖에서 기다린다. 내가 종례를 마치고 나오자, 이레의 얼굴이 밝아진다.

“평화야 우리 오늘 떡볶이 먹으러 가자!”

“떡볶이?”

“응 내가 좋아하는 떡볶이 단골집이 있어!”

“좋아 가보자”

가게 입구에서부터 고소하고 매콤한 냄새가 났다. 빨갛고 걸쭉한 떡볶이 소스에 군침이 돌았다. 김이 나는 떡을 한입 베어 물었다. 쫀득하게 씹히며 매콤 달콤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맛있지?”

“응 진짜 맛있다. 우리 엄마가 만든 것보다 맛있는 거 같아”

“엄마가 떡볶이 만들어주셔?”

“응 엄마가 떡볶이도 만들어주시고 도넛도 만들어주셔”

이레는 놀랐다.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도넛도? 맛있겠다 우리 엄마는 너무 바빠서 얼굴 보기도 힘들어”

“그렇구나”

시무룩한 이레를 보니 마음이 이상했다.


***


“다녀왔습니다”

“어서 와 평화야 오늘 어땠어?”

엄마는 여느 때처럼 웃으며 나를 반겨주셨다.

“오늘 이레랑 떡볶이 먹었는데 맛있었어요”

“진짜? 엄마도 떡볶이 만들었는데”

나는 손을 씻고 식탁에 앉았다.

“그럼 또 먹어야지”

엄마는 웃으며 떡볶이를 식탁 위에 올려주셨다. 가게에서 봤던 빨간 떡볶이 소스 색보다 옅고 묽은 주황색 국물 안에 떡과 어묵뿐만 아니라 파와 당근도 들어있었다. 엄마의 떡은 내가 한입에 딱 먹기 좋은 크기로 잘려있었다. 포크로 떡을 찍어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었다. 역시 엄마의 떡볶이 맛 그대로다. 조금 싱겁고 묽은 맛. 가게에서 먹은 것보다 덜 자극적이다.

“수업은 어땠어? 오늘 체육복 챙겨간 거 잘 입었어?”

떡볶이를 씹으며 나는 잠시 오늘 들은 수업을 떠올려봤다. 특별히 기억에 남은 시간은 없었다. 선생님이 추천해 주신 책을 학교 도서관에 가서 읽었던 게 생각났다.

“국어 선생님이 [마당을 나온 암탉] 읽어보라고 추천해 주셔서 그거 도서관에 가서 봤어요. 체육복도 잘 입었어요”

“그랬어? 잘했네. 엄마도 학교 다닐 때 읽었던 책인데 평화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체육복은 떡볶이 먹고 꺼내서 빨래통에 넣어줘”

“응 이따가 독후감 쓴 거 보여줄게요”

엄마는 흐뭇하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고 볼을 만졌다. 나는 다시 포크로 어묵을 찍어 들었다. 입에 가져다 넣는데 이레 생각이 났다.

“엄마 이레네 엄마는 바빠서 떡볶이랑 도넛을 못 만들어준다는데 한 번 데려와서 같이 먹어도 돼요?”

엄마는 갑자기 두 손을 모아 손뼉을 쳤다.

“어머 너무 좋지, 오늘 떡볶이 같이 먹었다던 친구가 이레지? 데려와 엄마가 간식 만들어줄게”

엄마 말을 들으니, 마음에 몽글몽글 구름이 생겨나는 것 같았다.



2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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