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끝나간다(3)

by OMOZ

샛노란 은행잎들이 바닥에 쌓여 바스락바스락 발에 밟힌다. 노랗던 은행 열매는 곶감처럼 모습이 변했고 동그란 몸은 쪼그라들었다. 터져 구릿한 냄새를 풍기며 거리를 장악했던 녀석들은 어느새 치워져 은행나무 한쪽 구석에 쌓여있었다. 은행나무는 은행 폭탄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부끄러웠는지 무던히 자신의 체취를 가리려고 잎으로 길거리를 덮고 있다. 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좋아 잎들을 발로 뻥뻥 차며 다녔다.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어떤 잎은 나보다 더 빨리 걸어 저만치 멀어졌다.

“가을이다”

“가을이 좋아?”

“가을 좋아! 따뜻한 햇살 색감도 다양하고 많이 춥지도 많이 덥지도 않고 맛있는 과일이 많이 나오는 계절이잖아. 그리고 곧 있으면 붕어빵도 나오잖아”

“오오오 붕어빵 맛있겠다”

마침 우리는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너머 모퉁이에 닫혀있는 붕어빵집을 발견했다. 저번 주까지는 이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번 주 등교할 때부터 보였다. 아직 아주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주변에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짐이 늘어나는 걸로 보아 곧 하굣길에 따끈따끈한 붕어빵을 팔 거라 짐작했다.

“우리 다음에 열면 여기 와서 붕어빵 사 먹자”

“그래 그럼 좋겠다.”

우리는 웃으며 집으로 향했다.


***


우중충한 하늘에 바람이 불었다. 곧 비가 쏟아질 듯한 날씨였다. 낙엽은 바람에 떠밀려 이쪽 집으로 기웃 저쪽 집으로 기웃거리며 굴러다녔다. 흐려서 낮에도 저녁같이 느껴졌다. 마치 아침이 안 온 것처럼. 풍성했던 잎사귀를 정리하고 몇 장 안 남은 잎사귀를 붙들고 싶은 나무는 바람과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아직 겨울을 맞이할 준비가 안 됐기에 갑자기 왜 이렇게 빨리 잎을 가져가냐며 탁탁탁 가지를 연신 부딪치며 하소연했다. 바람은 그저 내가 가야 할 길 가는 것뿐이라 말했다. 나는 평소처럼 이레 반에 가서 기다렸다. 오늘따라 유독 이레네 반 종례가 늦게 끝나는듯했다. 그리고 잠시 후 반 아이들이 우르르 나오는데 이레는 안 보였다. 이레가 안 보여서 나는 당황스러웠다. 정리하시고 반 문을 잠그시는 선생님께 물어봤다.

“선생님 혹시 이레는 오늘 일찍 갔나요?”

“어? 이레는 오늘부터 안 나오는데?”

“네? 그게 무슨 소리세요? 이레는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 말 없었는데요?”

나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저께까지만 해도 집에 가는 길에 같이 붕어빵을 먹자고 얘기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아무 말 없이 간다는 게 이해가 안 되었다.

“이레가? 알고 있었을 텐데? 이레 전학 갔어”

“네?”

“너 몇 학년 몇 반 누구니? 이레에게 연락하라고 전해줄까?”

“3학년 2반 김평화요.”

나는 마음이 어지러웠다. 자꾸 이해가 안 되었다. 머릿속에서 안 맞는 조각을 맞추려고 애쓰는 거 같았다.

“그래 마침 잘 갔는지 연락해 보려고 했는데 이레에게 전해줄게”

“아니에요”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나는 아니라고 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너무 보고 싶었던 이레. 그러나 아무 말 없이 떠난 이레가 미웠다.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그냥 아무 말 하지 말아주세요”


***


복잡한 마음에 혼자서 바닥을 보며 가는데 붕어빵 가게가 보였다. 붕어빵가게 주인은 아주머니가 아니라 할아버지였다. 나는 다섯 발걸음 정도를 남겨두고 길 위에 우뚝 서서 물끄러미 가게를 쳐다봤다. 그리고 가서는 붕어빵을 하나 샀다. 붕어 머리를 한입 베어 물었다. 베어 물은 자리를 보니 빵 사이로 팥이 잔뜩 들어있었다. 단맛이 났다. 고소한 빵과 팥이 적절히 조화롭게 어울렸다.

“꼬마야 어때 맛있어?”

그 순간 달던 붕어빵의 맛이 싹 사라졌다. 나는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베어 물었던 붕어빵 한 조각은 입안에서 삼키지도, 뱉지도 못한 채 머금고 있었다. 눈앞은 눈물 때문에 흐려졌고 의도하지 않았는데 콧구멍이 움찔거렸고, 그곳에서 조금씩 콧물이 나기 시작했다. 입을 굳게 다물려고 애썼지만, 비협조적인 입술은 힘없이 열려 바람 빠지는 듯 이상한 소리를 냈다.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붕어빵을 먹는 나에게 할아버지는 놀라시며 말씀하셨다.

“아니, 그렇게 눈물 날 만큼 맛이 없어?”

그러시곤 얼른 붕어빵 한 마리를 호호 불어 직접 먹어 보셨다.

“적당한 거 같은데”

어느새 소리 내서 울고 있는 나를 향해 할아버지는 다시 말을 거셨다.

“아가야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흐으윽,, 흐어어”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나에게 할아버지는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자 어묵 국물 줄 테니까. 천천히 호호 불어서 마시면서 좀 괜찮아지면 할아버지한테 말해줘”

나는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할아버지의 따스함에 조금 진정이 되는 거 같았다. 친절하게 직접 한 국자 떠서 주시는 어묵 국물을 호호 불어 마셨다. 안 삼켜지던 붕어빵이 국물과 함께 만나 사르르 녹아 삼킬 수 있게 되었다. 고소하고 달콤하고 짭짤한 맛에 감칠맛이 더해졌다. 국물 한 쪽에 무가 있었고 동그란 철망이 담겨 있었다. 조금 진정이 되니 민망하고 부끄러워졌다. 내가 쭈뼛거리는 걸 알았는지 할아버지는 한 번 더 말을 거셨다.

“우리 국물 맛있지? 아침부터 일찍이 우려냈어. 특별한 비법을 친구한테 배워왔거든!”

“네 맛있어요”

“붕어빵은 어떻디?”

“맛있었어요”

“그치? 아이참. 나 완전 깜짝 놀랐잖어 맛없는 줄 알고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학교서 무슨 일 있었어?”

“그게… 친구가…”

“어서 오세요”

“붕어 7마리 주세요”

그 사이에 손님이 왔다. 할아버지는 눈짓을 보내며 서둘러 준비된 붕어 7마리를 포장하셨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바로 드릴게요”

그리곤 처음 장사하시는 게 아닌지 7마리를 야무지게 포장해 넘겨주고 웃으며 손님을 보냈다. 나는 언제 또 손님이 올지 모르니 얼른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친구가 말도 없이 전학 갔어요”

“아이고 왜 그랬댜. 그 친구 썩을 놈이네”

“아녜요 썩을 놈 아니에요. 착한 애예요. 근데..”

“근데 뭐 말도 안하고 갔담서. 평소에 착했어?”

“네 평소에 잘 지냈어요”

“그럼 무슨 말 못 할 사정이 있었나 보네”

“그럴까요?”

“나야 모르지? 직접 물어봐야 알지?”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는 머릿속에 복잡한 퍼즐이 맞춰질 조각이 따로 숨어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레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고서는 왜 그랬는지 알 수 없다.



4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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