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의 수학공부(2)
첫째의 수학 공부(2)_학원, 과외 없이 집에서 워킹맘 엄마와 공부하고 있는 초등 삼 남매 이야기입니다. <집에서 자라는 공부 습관 2>(3화)
초3 때부터 꾸준히 혼자의 힘으로 <최상위 수학>을 풀어온 첫째가 5학년 2학기 교내수학사고력대회에서 53점을 받았다.
일단 그 점수, 숫자로 표현되는 수치가 주는 충격이 좀 있었다. 화나 속상함이 아닌 의아함.
수학사고력대회 시험지는 문제 유출이 되면 안 되기에, 평소 보는 단원 평가와 달리 가정으로 보내지 않는다. 따라서 내가 아이가 어떻게 풀었는지 볼 기회가 없었다. 아이의 말을 들어봐도 본인이 왜 그렇게 낮은 점수를 받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본인 생각엔 확실히 틀린 것은 2문제 정도였다고 한다.
우리 집은 수학사고력대회를 앞두고는 심화 문제를 집중적으로 푸는 ‘사고력대회 준비 기간’을 갖고 있다. 대회 약 1주일 전부터는 시간을 재면서 모의고사 풀듯 풀어보는 것이다. 당시 첫째의 평소 수학 공부 시간은 하루 50분이었는데 이때는 (비록 일주일이지만) 2시간 정도를 매일 수학 공부를 하는 것이다.
학교 경시대회는 난이도도 일정하지 않고 전국 단위 시험에 비해 참가자도 현저히 적다. 그럼에도 준비하는 까닭은, 그 시간이 곧 실력을 끌어올릴 소중한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꾸준하지만 느슨했던 공부가, 대회를 앞두고는 몰입과 집중으로 바뀐다. 시험은 분명 부담이지만, 동시에 좋은 자극이자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시험의 유익까지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으므로, 사고력대회 준비 기간을 거친 자들을 위한 보상이 있다.
대회 기간 동안 평소보다 늘어난 수학 공부 시간은, 대회가 끝난 뒤에 차감한다. 그래서 사고력대회가 끝나면 최소 일주일은 수학 공부를 쉬며 방학 같은 여유를 누린다.
시험 당일에는 결과와 상관없이 용돈 5만 원을 받는다. 평소 주 5천 원을 받던 첫째는 이 주간에 무려 10배의 용돈을 받는다. 평소 학원비를 아낀 데 대한 엄마의 ‘통 큰 보상’ 덕분에, 아이들은 수학사고력대회를 기다리기도 한다. (사고력 대회 시험을 안 보는 2학년 막내는 형, 누나를 부러워한다.)
첫째는 53점을 받았지만 약속된 보상을 모두 받았다. 성실히 준비했고, 5만 원은 점수와 무관하게 주어지는 보상이었기 때문이다. 본인도 결과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시험지 보니까 많이 틀렸더라고요. 이번 시험이 어려웠대요.” 하고는 담담히 넘어갔다.
이때 중요한 것은 부모의 태도다. 부모가 당황하고 불안해하며 다그치면, 그 감정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해진다. 특히 예민하거나 불안이 많은 아이들은 부모의 불안을 더욱 빠르게 받아들인다. 지기 싫어하고 욕심 많은 기질의 아이들은 낮은 점수를 받으면 학원을 보내달라고 하거나, 아예 스스로 학원에 열심히 다니기도 한다. 늘 비교 대상이 있거나 부모가 점수를 중시하는데 결과는 잘 나오지 않을 때, 스스로 공부를 놓아버리거나 '나는 수학을 못하는 아이'라고 믿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첫째는 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다시 그때 마음을 물어봤더니, “뭐, 다 끝난 시험이고, 5만 원도 받았으니까 별생각 없었어요.”라며 무덤덤했다. 그 점수와 자기 수학 실력은 별로 관련이 없다는 듯이. 우리는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며 "그렇지. 스트레스받을 필요 없지."하고 오히려 안심하는 쪽이었다. 교사의 관점으로 아이의 학습 과정에 문제가 있진 않는지 진지하게 생각했을 뿐 막연한 불안감이나 걱정은 없었다. 내가 교사가 아니었다면 이때 심하게 학원의 유혹을 느꼈거나, 공포 마케팅의 타깃이 제대로 되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같은 층에 근무하던 5학년 선생님께 이번 시험이 어땠냐고 슬쩍 물어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엄청 어렵게 냈다”였다. 실제로 시험이 있던 날, 하교하는 5학년 아이들이 “너무 어려웠어요~”라며 다른 선생님께 하소연하는 것도 여러 번 들을 수 있었다. (교사맘 귀 쫑긋)
음. 우선 난이도가 엄청 어려웠다는 거네.
그런데 아무리 어려워도, 해당 학년 이외의 문제를 냈을 리는 없다. 어려운 문제라도 해당 학년(5학년) 심화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가 심화 문제를 풀 사고력이 안되나? 그런데 교사인 내가, 평소에 아이가 수학 공부를 하는 것을 봤을 때, 사고력이 부족하다고 볼 수 없었다.
이 상황에 대해 당시 나와 남편의 대화는 이랬다.
1. 아이의 사고력 문제라기보다 시간 부족이 더 큰 원인 같다. 평소에는 검토하며 실수를 많이 잡아내는데, 이번 시험에서는 검토할 시간이 전혀 없었다고 했다.
2. 시간 부족을 해결하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심화 문제를 아주 많이 풀어, 문제를 보자마자 풀이가 떠오르도록 훈련하는 것.
한두 학년 과정을 선행해 공식을 활용해 빠르게 푸는 것.
3. 만약 선행이 필요하다면, 집에서 하는 것보다 학원을 보내는 편이 낫지 않을까
4. 하지만 학원에서 문제를 무작정 많이 풀게 하고, 선행을 과도하게 시키는 방식이 의미가 있나? 게다가 아이는 아직 초등학생이다.
5. 아이가 스스로 높은 점수나 좋은 결과를 원하지도 않는데, 벌써부터 문제풀이 훈련을 시킬 필요는 없다. 원한다고 해도, 지금은 아직 아닐 수 있다.
6. 사고력대회 점수가 낮더라도 괜찮다. 우리는 제대로 된 문제 해결력을 키우는 길로 가자.
지난 화에서 인용했던 책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초등학생이 중학교 1학년 1학기 과정을 선행학습하면 미지수를 사용하는 방정식을 배우게 됩니다. 방정식을 배우면 초등 심화교재에 나오는 어려운 문제들이 아주 쉽게 풀립니다. 아이가 심화능력, 즉 문제해결력이 생겨서 쉽게 푸는 게 아니라, 쉽게 푸는 방법을 배워서 쉽게 풀 뿐입니다. 부모들은 이런 현상을 보고, ‘중등 선행을 시켰더니 초등 최상위 심화교재를 쉽게 풀더라, 내 아이의 실력이 높아졌구나’하고 착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중학교 2학년 1학기에 있는 연립방정식을 배우면, 중학교 1학년 1학기에 배우는 방정식이 좀 더 쉽게 풀립니다. 여기에 고1과정까지 선행을 하게 되면, 중등 과정 문제들이 쉽게 풀립니다. 왜냐하면 고1 과정은 중학교 전 과정을 복습 심화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선행을 하면 수학을 잘하는 것 같이 느껴지는 착시 현상입니다.
문제해결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자기 학년에서 배운 내용만 가지고 심화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해결력이 생깁니다. 즉, 어려운 방법으로 어려운 문제를 풀어야 두뇌가 개발되고 생각하는 힘이 생기며 수학적 사고력이 발달합니다. 쉬운 방법을 가르쳐서 어려운 문제를 풀게 하면 어려운 문제를 더 이상 어렵지 않게 만들어서 생각 주머니 키우는 것을 방해합니다. (류승재, 수학 잘하는 아이는 이렇게 공부합니다, 70~71쪽)
문제해결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자기 학년에서 배운 내용만 가지고 심화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처럼 학원이나 선행은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지금보다는 좀 더 문제해결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