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완독'하라는 뜻일까요? - 집공부 독서(1)
책을 '완독'하라는 뜻일까요?_학원, 과외 없이 집에서 워킹맘 엄마와 공부하고 있는 초등 삼 남매 이야기입니다. <집에서 자라는 공부 습관> 6화
서울시 소재의 유명한 전사고(전국단위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된 제자들이 지난겨울 학교를 찾아왔습니다. 그날 저는 학교에서 아이들 캠프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졸업생 제자들이 100여 명의 캠프 참가 학생 간식 배분하는 일을 도와주었어요. 성인이 되어 찾아와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학교 행사도 도와주고... 너무 뿌듯하고 보람찬 시간이었습니다.
두 아이 모두 착하고, 성실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이 아이들의 성과는 유명한 학원이나 과외 선생님의 도움만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것들이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 "후배들에게 뭘 열심히 하라고 하고 싶니?"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때 두 아이 모두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던 것이 바로 '독서'입니다.
"선생님 제 큰 누나 아시죠?"
"당연하지. 너 큰 누나도 내가 담임했잖아."
"큰 누나도 저랑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했거든요. 저희 학교가 내신으로 서울대를 많이 보내잖아요. 근데 큰누나는 정시로 서울대를 갔어요. 그게 다 큰누나가 책을 진짜 많이 읽어서라고 생각해요."
이 아이의 큰누나는 진짜 독서광이었어요. 초등 저학년 때부터 그렇게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더니... 얼마나 수능 국어가 쉬웠을까 싶습니다. 어디선가 본 글이, '영어는 차를 팔면 해결되고, 수학은 집을 팔면 해결되는데, 국어는 다시 태어나도 안된다'였던가... 요지는 국어가 진짜 어렵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책을 많이 읽었던 제자는 국어만 쉬웠을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어는 그저 한 과목이 아니라, 모든 과목을 관통하는 도구이기도 하니까요.
저는 초임 교사 시절부터 독서교육에 정말 진심이었어요.(사실 모든 일에 진심이었던 저는, 결국 과로로 병이 나기도 했지요.) 다른 학교 선생님들과 연구모임을 하면서 '아침독서운동본부'라는 시민단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행복한아침독서'라는 이름의 사회적 기업입니다.
아침독서운동은 '아침에 10분씩 책을 읽자'라는 단순하고 명료한 실천을 지향하며 시작되었습니다.
아침독서운동은 학교에서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있는 아침자습시간에 학생과 교사가 함께 책을 읽자고 하는 제안이다. 이런저런 일로 차분하게 책 읽을 시간이 없는 학생들에게 최소한 하루에 10분이라도 책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자는 것이 아침독서운동이 주장하는 내용이다. 아침자습시간은 어느 학교에나 있지만 많은 경우 무의미하고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허투루 보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 시간에 책을 읽었더니 놀라울 정도로 좋은 성과가 많이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1
1988년 일본에서 처음 시작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2005년부터 학교를 중심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 교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아침 독서 시간만큼은 꼭 확보하리라 다짐한 계기가 되었지요.
일본에서 아침독서운동은 1988년에 처음 시작되었는데 일본아침독서추진협의회의 2015년 3월 30일 자 조사결과를 보면 일본 전체 학교의 약 76%에 달하는 27,862개교에서 아침독서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도 2005년에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학교 현장에서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면서 전국의 학교에 책 읽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학교에서 독서교육의 중요성이 점점 부각되는 상황에서 아침독서운동이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독서교육 방안으로 교사들에게 받아들여지면서 나타난 결과이다. *1
아래는 아침독서운동의 4원칙입니다. 이 네 가지 원칙은 저에게 무척 매력적이고 아름답게 다가왔습니다.
원칙 1. 모두 읽어요
원칙 2. 날마다 읽어요
원칙 3. 좋아하는 책을 읽어요
원칙 4. 그냥 읽기만 해요
처음 들었을 때 원칙 1이 모호하게 느껴졌습니다. '책을 끝까지 '모두' 읽으라는 건가? 책을 가리지 말고 '모두' 골고루 읽으라는 건가?' 알고 보니 '모두 읽어요'는, 아이들만 책 읽으라고 하지 말고 교사도 읽으라는 뜻이었습니다.
저는 이 원칙들에 따라 아이들이 매일 학교에 오면 차분하게 아침 독서를 할 수 있고, 우리 반은 '책 읽는 반'이라는 생각을 심어주기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했습니다. 당시 교사모임에서도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는데 제가 실천했던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원칙 1 - 모두 읽어요>
이것은 연출이었습니다. 교사에게 아침 시간은 정말 많은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시간입니다. 서로 많은 업무 메시지를 주고받는 시간이고, 수업 시작 전에 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과감하게, 컴퓨터에서 떨어져 아침 시간에 독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독서하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요. 그렇다고 교실에서는 교사가 온전히 자신의 독서에 몰입하면 안 되겠죠. 여가시간이 아니라 근무시간이니까요. 책을 펴고 있지만 정작 한쪽도 제대로 읽지 못한 날이 많습니다. 책을 손에 쥔 채, 아이들이 무슨 책을 읽는지 살피고, 혹시 어려움을 겪는 아이가 있다면 넌지시 곁에 다가가 돕습니다.
한 아이가 책을 넘기다가 잠시 멍하게 있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책장을 새로 넘기기 직전, 생각에 잠긴듯한 정적. '사색'이라는 낱말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아마 그런 장면이 아닐까요. 그 짧은 시간 동안 아이의 머리와 마음속에서 일어났을 일들을 상상하며, 저는 잔잔한 행복을 느꼈습니다.
선생님이 손에 든 책은, 읽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아이들이 만화책만 좋아하는 것 같지만, 사실 줄글책 읽기에 대한 부담과 어려움이 크고 재미를 못 느껴서일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어른의 (잔소리가 아니라) 도움이 필요하죠. 진짜 재밌는데 아이들이 모르는 것 같은 책은 일부러 아침마다 들고 있다가 조금씩 스포를 해주곤 했습니다. 가끔 의외의 장소 - 운동장이나 복도 같은 곳 - 에서도 책을 손에 쥐고 있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브런치 작가님들은 대부분 책을 많이 읽는 분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브런치가 수익 구조 개선을 위해 여러 가지 유료화 제도를 시도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책 읽고 글 쓰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플랫폼 아닐까요?)
주변을 둘러보면 "책을 잘 읽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직업이 교사라도요.^^;;) 아무래도 독서를 즐거움보다는 의무감으로 하는 행위로 여겨서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2년에 한 번씩 발표되는 국민독서실태조사의 결과를 보면 많이 안타깝습니다. 최신 자료에 보니 연평균 성인이 읽는 책이 3.9권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학생들의 독서율은 매우 높습니다. (특히 초등학생)
초등학생 때는 책을 많이 읽다가 중고등학생 때는 상대적으로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겠죠. 그러다가 어른이 될수록 점점 더 책과 멀어지는 그래프를 매 보고서마다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책 읽는 초등학생이, 책 읽지 않는 어른으로 성장할까요?
책 읽지 않는 어른,
책을 읽으라고 시키기만 하는 어른,
재밌게 책 읽을 시간을 주지 않고 (입시에) 도움이 되는 책을 읽으라고 하는 어른을 보면서 자라서가 아닐까요? 입시가 끝나고, 승진이나 취업에 직접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라면, 책을 읽지 않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졸업생들의 이야기를 지금의 반 아이들에게, 가끔 맛있는 디저트처럼 들려주긴 하지만, 아이들의 독서는 수능 국어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아이들이 평생 공부하고 책 읽는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평생 공부하는 사람은, 평생 학교를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평생 책 읽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의 편협한 생각이 갇히지 않고, 책을 읽고, 정돈된 언어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아래 책의 문구처럼요.
공부는 왜 할까? 깨닫고 배우기 위해서야.
성실하게 공부할 줄 안다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도 있어.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깊이 이해하며 가르칠 수도 있고,
굶는 아이가 없도록 힘쓰는 사람이 될 수도 있어.
건강한 먹을거리를 만드는 농부가 될 수도 있지.
공부에는 그런 힘이 있어.
집에서는 굳이 '책 읽는 어른'을 연출할 필요가 없습니다. 엄마가 여가시간에 책 읽는 모습을 아이들은 너무나 쉽게 볼 수 있을 테니까요. 수능을 볼 필요가 없는 저이지만, 입시라는 목표 대신 '자녀 교육'이라는 목표를 위해 책을 읽지도 않습니다.
평생 책 읽는 사람이 되기 바라는 마음을 담아, 아침독서운동의 다른 세 가지 원칙을 중심으로, 교실과 가정에서 실천해 온 이야기들을 몇 편에 이어서 전해드릴까 합니다.
책 한쪽을 읽듯,
제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께도 책 읽는 기쁨이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1_행복한 아침독서 http://www.morningreading.org/
*2_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 보고서 https://mcst.go.kr/kor/s_notice/notice/noticeView.jsp?pSeq=18001&utm_source=chatgpt.com
*3_위 보고서 내용으로 작성된 기사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42738&utm_source=chatgpt.com
*4_강승숙 글, 신민재 그림,『얘들아, 학교 가자』, 사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