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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순영 Oct 02. 2023

귀성길

그림일기

추석 전날 지난밤에 준비한 음식과 선물을 챙겨 새벽 4시에 출발했다.

막히는 길을 견디지 못하는 남편은 가급적 일찍 출발하는 것을 좋아한다.

명절에 어느 정도 길 막히는 것이야 당연한 걸로 받아들이는 나와 운전을 직접 해야 하는 남편은 입장이 다르니 기꺼이 새벽 일찍 길을 나섰다.

아침 먹을 때까지 비교적 막히지 않은 길을 수월하게 달렸다.

남편은 자신의 판단에 뿌듯해하며 신나 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아침 먹고 올라선 고속도로가 슬슬 막히기 시작했다. 2차선 도로에 차가 가득했다.

하필 화장실이 있는 커다란 주차장이 나타났고 남편은 우회에서 빠져나갈 생각으로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 선택은 2차선 막히는 걸 피하려다가 8차선 차들이 입구 하나로 빠져나가는 지옥행을 선택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엄청난 병목현상으로 주차장을 빠져나오는데 2시간이 걸렸다.

바보 같은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하며 절망했던 남편은 나중에 달관의 경지에 이르러 완전 포기상태에 이르렀다.

이럴 때 나는 그저 아무 말 없이 남편 스스로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다행히 나는 막히는 길도 잘 견디고 남편 혼자 속으로 부글거리다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잘한다. 물론 건드리면 안 되는 순간 내 속에 올라오는 것을 나 역시 잘 다독여야 한다.

부부가 오래 살다 보면 서로 건드리면 안 되는 것쯤 부처님 손바닥처럼 훤해야 하는 법이다.

결국 시댁에 도착하는데 9시간이 걸렸다.

시아버님 혼자 사는 시댁에서 1박 2일 나의 일정은 노동에서 시작해서 노동으로 끝나는 법이지만 명절은 지났고 모두가 무탈하다.


도로를 매웠던 그 많은 차들에 탔을 사람들.

그리운 자리를 찾아가 즐겁게 보내고 꽉 찬 마음으로 돌아왔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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