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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순영 Oct 04. 2023

추석노동

그림일기

추석에 시아버님 혼자 사시는 시댁에 가면 제일 먼저 설거지를 한다.

나와 있는 모든 그릇과 싱크대 안에 제대로 설거지가 되어 있지 않은 크고 작은 냄비들을 찾아 다시 설거지를 해 놓고 전기밥솥의 안팎을 구석구석 청소한 다음 쌀을 안친다.

동서네 식구들이 오고 모든 가족이 모이면 식사 준비를 한다.

친척들이 오는 추석 아침만 빼면 8 식구의 밥상이다.

모든 재료와 필요한 양념, 그릇, 도구는 미리 준비해 간다.

식사가 끝나면 1차 설거지는 동서가 한다.

동서가 물러나면 나는 2차 설거지를 한다.

주로 동서가 빼놓은 큰 냄비와 프라이팬 등등이 나의 몫이다.

식사와 식사 사이에는 청소를 한다.

한 달, 혹은 그 이상 묵은 구석구석의 찌든 때를 쓸고 닦는다.

싱크대의 문짝부터 벽에 튄 기름때, 냉장고 내부, 화장실, 안방과 거실 바닥과 구석 등등.

또 그 사이사이 마당에 풀을 뽑는다.

집은 온통 잡초로 덮여있고 시아버님은 잡초와 싸울 기력이 없으시다.

잡초를 뽑는 것은 모두 의미 없다고 하지 않아 나만 뽑는다.

그래봐야 겨우 현관 앞쪽 정도다.

몇 시간을 쪼그려 앉아 뽑아봐야 별로 티도 안 난다.

그래도 한다. 사람사는 집에 잡초가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남편은 긴 시간 운전을 하고 벌초도 해야 한다.

둘째 시동생도 먼 길 운전을 하고 벌초를 따라간다.

막내 시동생은 오기 전 장을 보고 모든 음식 준비를 한다.

동서는 먹고 나서 설거지를 한다.

나는 단지 시댁이 남의 집이 아니라서 눈에 보이는 일을 끊임없이 찾아서 한다.

집에 돌아오고 나면 며칠 끙끙댄다.

그럼에도 내가 오랜 세월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모두가 내가 애쓰는 것을 알아주고 고마워하기 때문이다.

시아버님도 동서도 시동생들도 남편도 모두 그렇다.

그 마음이면 충분해서 나는 노동에서 노동으로 끝나는 명절이 싫지 않고 매달 4시간을 달려 내려가는 시댁행도 괜찮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힘들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의 많은 며느리들이 명절이 힘든 것은 몸의 고단함도 크겠지만 마음을 다독여주는 감사와 위로의 기꺼운 손길이 없기 때문이다.

대개 마음이 채워지면 몸의 고단함은 견딜만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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