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저녁 6시면 만나는 TV프로그램 속 인터뷰 중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다. 흔히 들어온 식상한 푸념이기도 하지만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말이다. 분명 그 이야기는 책 열 권 분량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에다 동시에 파란만장할 것이다. 특히, 한국의 근현대를 살아온 세대들은 얼마나 많은 장르의 이야기를 두루 섭렵하며 살아왔는가. 대략만 훑어보더라도 거기에 깃든 이야깃거리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식민의 역사에서부터, 전쟁, 투쟁, 혁명, IMF... 거기에다 재해며 유교문화적 사회관습에 이르기까지, 어디 하나 빠지지 않게 골고루 겪어온 그 시간들. 그러니 그 시절을 지나온 이들에게 굴곡 없는 인생이 있겠는가. '자기 앞의 생'을 처연한 시선으로 감내해 낸 우리 눈앞에는 책 열 권 분량에 달할 만큼의 굴곡진 인생 스토리가 있다. 하지만 자신의 그 이야기를 기록해 둔 글은 한 페이지도 없다.
왜일까?
그 이유는 당연히 안 썼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 깜짝 놀랄만한 사건들은 많았겠지만 쓰지 않으면 남들은 이해하지 못할 혼자만의 넋두리로 남게 된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고 박완서 작가를 떠올려 본다. 그는 그의 역사를 자전적 소설의 형식을 빌어 기록했다. 그의 유년 시절을 그린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년 출간)'와 그 후속 편에 해당되는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1995년 출간)'에는 한국전쟁, 이념갈등의 시대적 아픔을 겪으며 살아온 성년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자신의 역사를 기록한 작품이다. 독보적 존재감의 작가로서의 삶뿐 아니라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시민의 눈을 통해 당시 생활상을 엿본다는 측면에서 중쇄를 거듭하며 스테디셀러로 남아 남녀노소에게 사랑받는 작품이 되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는 1930년대 개풍 박적골의 어린 시절, 학창 시절, 한국전쟁을 겪으며 보내온 스무 살까지를 그리고 있다. 싱아의 싱그러운 향내로 표현되는 유년시절의 아름다운 자연과 지역의 옛 풍습, 도시의 생활상 그리고 시대적 아픔과 한 가족의 역사가 자신의 언어로 찬찬히 기록되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덕국이니 내리닫이니하는 옛말의 매력은 물론 어둑시근하다, 옥시글거리다, 시척지근하다 등의 표현들의 감칠맛에 반하여 수집 삼아 노트에 기록해 가며 소중히 읽었다. 개인의 역사가 곧 동시대를 살아온 우리 삶의 기억과 맞닿아 있기에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 속에서 위안을 발견하고 나의 시간은 어떠했는지 떠올려보는 시간도 마련해 주었다.
그렇게 타인의 인생 기록이 우리 마음속에 치유의 공간으로 둥지를 튼다. 그럼에도 나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부담감이 크다. 나의 이야기가 얼마나 효용성이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쓰기도 전에 겁을 낸다. 박완서 작가도 같은 고민을 한 것 같다. 책 머리말에 작가는 토로한다.
잘난 척하는 것처럼 아니꼽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지금 지쳐 있고 위안이 필요하다. 기껏 활자 공해나 가중시킬 일회용품을 위해서 이렇게나 진을 빼지 않았다는 위안이 필요해서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대작가의 고백은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망설이는 이에게 또 한 번의 위로를 건넨다. 너의 이야기도 충분히 소중하다, 부끄럽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낡은 필름도 되짚고 재생해 보라. 그도 자신의 이야기가 하찮은 일회용품으로 종이만 소비한 채 사라질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고민을 지치도록했다잖는가. 그러니 '책으로 쓴다면 열 권도 모자라'하는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고 생각이 날아가버리기 전에 얼른 쓰자.
20년 후 당신은 했던 일 보다 안 했던 일로 더 실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돛줄을 던져라. 안전한 항구를 떠나 항해하라. 당신의 돛에 무역풍을 가득 담아라. 탐험하라, 발견하라, 꿈꾸라, 발견하라. -마크트웨인
과거의 나와 격리되어 있지 않고 가까이 살면서 보고 싶을 때마다 어려움 없이 문득 문득 과거의 나를 보러 가고 싶다. 조금씩 써내려간 나의 기록이 과거의 나에게로 향하는 오솔길이 되어주리라 믿는다.